[Opinion] 당신이 내 이름에 심어둔 것 [기타]

글 입력 2019.04.03 01: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무튼,스웨터.jpg


제법 쌀쌀한 날 포근한 곳에서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시인 김현의 산문집 < 아무튼, 스웨터 >가 그렇다. 아무래도 활자 자체만으로 따뜻함을 풍기는 단어가 제목에 쓰였기에 더욱 그리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내겐 소규모 모임이 하나 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구성원이 달에 두 번 릴레이로 주제를 내고 그에 맞춰 자유로운 형식으로 글을 써서 함께 본다. 나는 조금 특별한 소재로 글을 쓰고 싶을 때 어느 사물에 생명을 부여해 상상해보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사물의 보이지 않는 물성이 보이는 듯하다. 이를테면 '스웨터의 발성'이라던지 '스웨터의 인간성'이라던지 '스웨터의 이름'처럼 말이다.

이는 모두 < 아무튼, 스웨터 >에 쓰인 소제목이다. 저자 김현의 말을 빌리자면 일명 '스웨터 성애자'인 그는 스웨터를 의인화한 엉뚱한 상상이나, 스웨터가 지닌 물성과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에 섞어보는 등 여러 방면으로 본인만의 고찰을 스웨터에 빗대어 흥미롭게 풀어냈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언제나 사고를 전환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4월의 꽃샘추위가 이는 요즘은 포근한 이부자리 안에서 < 아무튼, 스웨터 >를 연신 손에 든다. 며칠 전엔 이 구절을 긴 시간 곱씹었다.


당신을 당신의 이름으로 부르고자 처음으로 마음먹은 사람은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심어놓고 싶었던 건지, 오늘 밤에는 곰곰 궁리해볼 일이다.

< 아무튼,스웨터 > 스웨터의 이름 중



이름,,

착할 선, 꽃부리 영. 게다가 김 씨 성이 붙은 내 이름은 세 자 모두 한자 키로 변환하면 첫 번째로 나오는 한자들로 조합되었다. 이럴 때면 '한자 이름 찾기 쉬워서 좋네' 하다가도 항상 '딸내미 이름 너무 대충 지은 거 아냐?'하는 생각이 바로 따라붙었다.

어린 시절엔 누군가 내게 '아줌마 이름 같아'라고 한 말을 듣고선 언젠가 꼭 예쁜 한글 이름으로 개명하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이때 지어뒀던 이름 중 하나는 '하임'. 별 뜻은 없다. 그저 둥글하고 귀여운 아이가 떠오를만한 이름을 지니고 싶었을 뿐. 이 포부는 최근까지도 잔열이 남아있었고 어찌 됐든 나는 아직 선영이로 살고 있다. 지금의 선영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린아이 그리고 할머니가 될 때 까지 어느 나이에서도 이상하지 않고 유행도 타지 않을 담백한 이름.

그 담백함 덕분인지 '선영'이라는 명사는 참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려온다. 나의 엄마 종예 씨의 고향에서는 등 위에 '선영 택시'라 적힌 택시들이 시내에서 줄곧 보이고 교복 시절에는 여러 도서와 교과서에서 인물을 예로 드는 글이라면 줄곧 선영이가 지명되곤 했다. (자매품으로 '민영이' 와 '민수' 가 있다. 실제 나의 형제들이 지닌 이름이다.) 또, 내게 사랑한다 외치던 광고 문구는 내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에게까지 일종의 친근감을 선사했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내게 이름의 뜻을 물어보면 나름 호기롭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내 이름에 '착하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서 그 이름을 지닌 나는 괜스레 착한 아이가 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마다 목소리에 세상 나긋함을 싣고 허리를 세우며 자세를 바로잡게 되기도 했다.


27년 전, 나를 선영이라 부르기로 마음먹은 나의 어른들은 어쩌면, 이렇듯 뭉근한 자긍심과 담백함을 내게 오래도록 심어두고 싶었던 걸까.




에디터 김선영_네임택.png
 
 
[김선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