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다시, 햄릿

연극 '함익' 프리뷰
글 입력 2019.04.01 21:4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함익_2019.jpg
 

세상에는 수많은 햄릿이 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1601년 발표한 이후로 지금까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공연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배우가 햄릿을 연기했다. 햄릿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영화나 드라마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서울시극단의 <함익>도 그 수많은 햄릿 변주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에는 국적과 시대, 성별까지 바꾼 햄릿이다. 2016년,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기를 맞아 고전 '햄릿'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던 <함익>은 당시 햄릿이라는 인물의 섬세한 감정에 주목해 새로운 햄릿을 창조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 <함익>이 3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


[세종] 서울시극단_함익_1.jpg
 

<시놉시스>

재벌 2세 함익은 영국에서 비극을 전공하고 돌아온다. 마하그룹의 외동딸로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의 일상은 화려하다. 상류층 인사들과의 사교모임, 남자친구 필형과의 근사한 데이트 등 누가 봐도 완벽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고독한 복수심으로 병들어 있다. 자살한 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의심을 20년 가까이 버리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폭력적인 권위에 맞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가면을 쓴 인형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복수와 일탈을 꿈꾸면서 숨 막히는 온실 속에서 생기 없는 꽃으로 살아가던 그녀는 그룹 산하의 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그리고 《햄릿》 공연의 지도를 맡게 된 함익 앞에 복학생 연우가 나타난다. 파수꾼 '버나도‘ 역을 맡은 연극청년 연우와의 만남은 외형만 화려했던 함익의 고독한 내면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 다른 고전에 비해 특별히 '햄릿'만의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밝혀져야 할 파격적인 진실은 극의 초반부에 이미 관객에게 폭로되고, 나와야 할 복수는 5막 끝에 가서야 허무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함익>의 시놉시스를 보며 들었던 궁금증 역시 '왜 햄릿일까?' 였다. 그래서 <함익>을 감상하기 전 준비운동 삼아 '햄릿' 전문을 읽어 보았고, 어렴풋하게나마 오늘날까지 햄릿이 인기 있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햄릿'의 줄거리만 봐서는 햄릿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가 복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막상 전체를 읽어 보면 5막으로 이루어진 희곡에서 복수만큼이나 두드러지는 것은 햄릿의 고뇌다. 관객이 알아야 할 사실은 초반에 모두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레 햄릿의 고뇌에 더 집중하게 된다. 죽은 아버지 행세를 하는 유령이 나타나 그 죽음의 비밀을 알려준 것이 1막 초반부지만, 햄릿은 자신의 삼촌에게 쉽사리 복수하지 못하고 계속 고뇌한다.

고뇌의 명분은 더 완벽하고 확실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굳이 연극까지 만들어가며 유령이 한 말이 진짜인지 삼촌의 표정 변화를 통해 알아보려 하고, 복수의 기회가 왔을 때 삼촌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이유를 대며(기도 중에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되므로 완벽한 복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넘어간다.

모순적이게도 완벽한 복수를 위한 햄릿의 고뇌와 기다림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미친 행세를 너무 오래 하는 바람에 어머니인 왕비의 근심을 샀고, 이와 관련해 왕비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실수로 재상 폴로니어스를 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폴로니어스의 죽음은 그 딸이자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아까지 죽음으로 몰아간다. 오필리아의 죽음은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즈의 복수심에 불을 붙인다.

결국 삼촌 하나를 향하던 햄릿의 복수는 본 목적이 왜곡되어 삼촌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와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즈, 심지어는 자신까지 죽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종] 서울시극단_함익_첫리딩현장_배우 이지연 최나라.jpg
 

"그래, 그럼 자네들에겐 아니지, 왜냐하면 좋거나 나쁜 건 없는데,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니까. 내겐 이게 감옥이야."

<햄릿>, 민음사, 1998, 72-73


햄릿이 오늘날에도 많은 인기를 끄는 건 햄릿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이 우리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일 테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며 고민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수는 없다.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선택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합리적 사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가로막는 최초의 적은 우리 자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함익>에서 함익의 분신인 '익'의 존재는 함익의 복수 상대가 정말 자신의 아버지와 양어머니일 뿐일지 의심하게 한다.

함익이 정말로 싸우는 대상은 무엇이며, 그를 억압하는 것은 무엇일까. 갈등 끝에 함익은 결국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다른 고전이 아닌 '햄릿'을 재창조했기에 함익을 둘러싼 외부상황만이 아니라 그 내면에도 관심이 간다. 시대도 성별도 다르지만, 여전히 고뇌하는 함익을 400여년 전 덴마크의 왕자 햄릿과 겹쳐보며 따로 또 같이 살펴보는 일은 흥미로울 것 같다.

준비가 되었으면 들어가보자. 함익이라는 사람의 깊은 내면으로.



김소원.jpg
 

[김소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