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우정아, 그의 노트 속으로 [음악]

글 입력 2019.04.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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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감상은 나에게 죽어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문화생활이다. 그간 제법 여러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다녔다고 자부한다. 공연을 보고 날 때마다 정말 행복했지만, 사실 나는 그 감흥이 며칠 가지 않는다. 심지어 예습을 한답시고 너무 많이 돌려 듣는 바람에 막상 공연이 끝나면 지겨워져 그 아티스트의 노래를 한동안 멀리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 선우정아의 공연을 본 지 한 주가 조금 더 되었는데도 아직 그 날의 기억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일주일 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셋리스트를 엄청나게 돌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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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부터가 운명적이었다. 사실 ‘취켓팅’으로 급하게 잡은 좌석인 만큼 시야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맨 뒷자리임에도 운 좋게도 단차가 있는 구역이었고, 교묘하게 내 좌석 쪽 열만 살짝 옆으로 빗겨 있어 내 앞쪽으로는 시야가 확 트여 있었다. 게다가 정확히 정중앙에 자리잡는 덕분에 무대가 한 눈에 들어와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두 시간 내내 아티스트와 나와의 1:1인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공연의 주제는 <Note>, 말 그대로 선우정아라는 아티스트가 노트에 곡을 써 나가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곡이 끝나면 이 곡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나 창작과정을 들려주곤 했다. 예를 들어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이라는 곡은 연인에게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이야기해야 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곡인데, 뒷얘기를 알고 나서 노래를 감상하니 당시에 그가 겪었을 상황과 감정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초반부에는 내가 수도 없이 반복해 들었던 <삐뚤어졌어>부터 <Purple Daddy>, <남> 등 대체로 무게감이 있는 곡들이 주를 이루었다. 사실 나의 경험상 신나게 ‘떼창’하며 즐길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 보다 섬세한 감성을 필요로 하는 음악의 경우에는 라이브의 감흥이 음원을 능가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내가 삶의 이러저러한 순간에 그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흥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지금까지 음원으로만 접했던 음악이 내 눈앞에 살아 숨쉬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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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부터는 유쾌한 깜짝 이벤트들도 있었다. 회차마다 선우정아의 즉석 선곡으로 진행되는 랜덤송 플레이라던지(그 날은 무슨 복이었는지 스티비 원더의 <Lately> 커버를 들을 수 있었다), <고양이> 무대에서 관객들을 지목해 즉석 애드리브를 시키는 등의 소소한 즐거움에서 센스와 노련미가 돋보였다.

특히나 랜덤송 플레이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선곡에도 능숙한 연주를 선보이시는 키보드 세션분의 역량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연 하나 하나를 대하는 프로 뮤지션들의 성숙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구성이었다.

또 <구애>와 <그러려니>는 세션 없이 선우정아의 피아노 연주와 보컬만으로 진행되어 곡의 매력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고, <츤데레>나 <천국은 나의 것>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로워 또 색다르게 들렸다. 선우정아의 이야기를 듣다가 웃고, 음악을 듣다가 눈물을 글썽이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가장 최고의 순간은 역시 <백년해로>였다. 편곡 과정 영상을 보면서 곡 하나가 탄생되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겪는지, 정말 뮤지션들에게 경외감이 들 지경이었다. 작곡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해냈다 하더라도 그걸 실제 음원으로 만들어내는 편곡 과정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한 곡 한 곡에 그런 각자의 역사가 담겨있을 것이다.

<백년해로>의 밝은 버전(?)을 연주하며 관객 모두를 한 명씩 지목하면서 눈을 맞춰주는 것으로 선우정아의 소극장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백년해로>를 듣고 있는 걸 보면 아마 한동안 나의 선우정아 홀릭은 쉽게 끝나지 않을 듯싶다. 아무쪼록 다음 공연 일정을 빨리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다.


너와의 모든 걸 기록하고 싶어
내 몸에 새기고 싶어
조금도 잊지 않고 싶어
우리의 모든 걸 남겨놓고 싶어
나눠 가지고 싶어
조금도 틈이 없고 싶어


- 선우정아 <백년해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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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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