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확행 유목민 생활을 끝냈다. [기타]

글 입력 2019.04.0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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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이 있긴 있나요?


고백하자면, 나는 ‘소확행 유목민’ 이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찾고 싶긴 한데, 도대체 어떤 것이 날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소확행’ 이든 ‘대확행’ 이든 내 것은 아니구나 싶었는데,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게 됐다.


작년 어느 휴일이었다. 아침 겸 점심을 대충 먹으며 TV 채널을 돌리다 정말 우연히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봤다. 영화 리뷰에 ‘힐링 영화’, ‘인생 영화’ 등의 키워드가 잔뜩 붙어 있어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영화가 끝날 때쯤 나는 사람들이 이 영화에 그런 별명을 붙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영상, 소리, 소소한 행복과 걱정 같은 감정들이 녹아 있는 스토리… 평화로운 휴일에 여유롭게 보기 좋은 영화였다.


어정쩡한 로맨스도 아니고, 지나치게 관객을 웃기려 한다거나, 지나치게 슬프게 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영화광도 아니고, 인생 영화도 없으며, 한 번 본 영화를 다운 받아 소장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는 다섯 번 이상 다시 봤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영화 속에서 사계절이 지나가고 100분의 러닝타임이 끝나면, 항상 아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즌 2를 기다리는 건 의미 없는 행동인 것 같았다. 감독도 배우도 심지어는 관객들도… 시즌 2를 기다리는 사람은 오직 나뿐인 것 같은 슬픈 느낌이 들었다. 나는 또다시, 비슷한 영상물을 찾아 다니는 유목민이 됐다. 그러다 얼마 전, 드디어 유목민 생활을 끝냈다.


유튜브 연관 동영상 파도타기를 하던 중, 정말 정말 우연히 ‘滇西小哥’라는 채널을 만났다. 중국 윈난성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여성이 그곳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음식을 만드는 콘텐츠가 업로드되는 채널이었다. 마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로, 플라스틱이나 인공 감미료 등을 사용하지 않고 윈난식 음식을 만드는 보물 같은 영상들이었다.


요리에는 지식도 관심도 없는 난 그가 영상 속에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맛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 요리를 우리 집 부엌에서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해 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채널의 모든 것들이 보물처럼 완벽하게 느껴졌다. 번역이 없는 영상에서는 그가 하는 말이나 영상 속 자막을 단 한 줄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저 재료를 구하고,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과 둘러앉아 즐기는 평범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I can’t understand Chinese… but I luv u.’


‘滇西小哥’의 영상을 통해 힐링을 얻는 사람은 나 하나만이 아니었다. 유튜브에서는 175만명의 구독자들이, 웨이보에서는 약 200만명이, 그를 구독하지 않더라도 영상을 챙겨 보는 월 평균 6000만 조회수의 주인공들이 그의 콘텐츠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댓글 창은 영어, 베트남어, 독일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등의 다양한 언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I can’t understand Chinese but I luv u.’  어떤 시청자가 남긴 댓글이다.


요즘엔 ASMR처럼 조리 과정을 소리로 들려주는 요리 유튜버들도 많고, 자신의 일상을 감성 듬뿍 담은 브이로그 영상으로 업로드하는 유튜버들도 많다. 요리 영상을 원한다면, 혹은 브이로그 영상을 원한다면 이들의 콘텐츠를 찾아보면 된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왜 ‘滇西小哥’의 영상과 사랑에 빠진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滇西小哥’ 채널이 주는 힐링의 결이 다른 채널과는 다르기 때문일 것 같다. ‘윈난성’이라는 지역만이 가지는 특징을 활용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때로는 조용하고, 때로는 복작거리는 작은 시골 마을의 생기와 마을 도처에서 자라는, 오직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식재료, 기계의 도움이 아니라 자연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지는 음식들. 도시에서 촬영되는 요리 영상이나 브이로그 영상들이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 듬뿍 들어 있다. 음식에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들, 고 퀄리티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무방한 아름다운 영상미와 생생한 소리들은 덤이다.


디지털 영상을 통해 전달하더라도,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보는 사람에게 온전히 가 닿을 수 있도록 신경 쓴 부분들이 돋보인다. 이런 모든 요소들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족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이미 자연의 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감과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영상을 보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


유튜브 채널 ‘滇西小哥’은 나에게,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싶은 보석함 같은 존재다. 나 같은 소확행 유목민에게 이 영상을 권해 주고 싶다. 분명 그들도 이 영상들과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왜 영상을 만들게 되었을까?

‘滇西小哥’ 의 이야기



‘滇西小哥’ 의 최신 동영상 보기





[김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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