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편리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위해 [공연]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대학로 유니플렉스
글 입력 2019.03.3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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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세심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그 어떤 공연에서도 이런 사전 해설지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뜻밖의 배려에 기분이 좋아진 채 공연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깨달았다. 이 작품은 해설지가 없었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공연이었다.

SF뮤지컬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는 과일마저 썩지 않는 최첨단 미래도시, 밀양림을 배경으로 한다. 더럽다고 여겨지는 ‘바깥 세상’에 다녀온 주인공 유울모가 밀양림에 다시 입성하면서 극은 시작된다. 거칠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바깥 세상을 잊고 밀양림에 다시금 적응하려는 유울모. 그의 모습을 따라가며 사람은 늙지 않고 과일은 썩지 않는, 숲과 초원을 비롯한 모든 자연환경이 최적의 조건으로 유지되는 그 곳. 밀양림이 그려진다.

이토록 언제나 최고인 상태에 익숙해진 밀양림 사람들은 그들이 불결하다고 여기는 바깥 세상의 사람들마저 동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태도는 헐리우드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로이스 로리의 소설 [기억전달자]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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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늘 같음(Sameness) 상태’를 고수하는 마을에서는 철저하게 감정과 사유가 통제된다. 이 메커니즘 속에서 주민들은 아무런 고민도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는 현 상태가 행복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기억 전달자’라는 독특한 직함 하에 인류의 모든 불행과 고통을 기억하는 역할을 갖게 된 주인공만은 이 체제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사실 편리함을 누리려다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인류의 모습은 SF 이야기의 단골 손님이다.  [기억전달자] 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머지않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도 만나볼 수 있는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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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울리는]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들어오면 울리는 어플, ‘좋알람’이 출시된 이후의 세상을 그린다. 남몰래 짝사랑을 앓던 이들은 상대의 반경 10m 안으로 슬쩍 걸어 들어감으로써 비교적 쉽게 고백을 해내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을 가늠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이들은 좋알람을 통해 사랑을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간다. 과거였다면 밤새워 고민했을 달달한 고백과 수줍은 쭈뼛거림의 자리는 어느새 ‘지금 좋알람 켜봐’라는 멘트가 대신하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연인들도 ‘오빠, 나 사랑해?’를 연거푸 물을 필요도 없이 그저 말없이 좋알람을 켜보면 된다. 좋알람 앞에서 사람들은 표현하는 방법을 잊었고, 좋아하는 마음은 너무나 손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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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또 다른 이야기는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시리즈 중 하나인 [아크앤젤]이다.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엄마는 과거 딸을 잃어버릴 뻔한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다. 해서 아이의 위치, 감정상태 뿐만 아니라 시야까지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기술 ‘아크앤젤’을 아이의 몸 속에 심지만. 점차 성인이 되어가는 딸의 알지 말아야할 것조차 감시하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결국 [좋아하면 울리는]과 [아크앤젤], 그리고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는 서로 전혀 다른 매체와 분위기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하나의 지점을 공유한다. ‘편리하면 안 될 것조차 편리하게 만들어버려 벌어진 파국.’ 이것이 바로 세 이야기의 공통분모이다.





박서준 배우가 나왔던 모 카드회사의 CF이다. 핸드폰과 카드를 활용해 앉은 자리에서도 손쉽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CF의 요지인 듯하며, ‘쉽게 사는거야.’라는 배우의 멘트가 광고를 한 마디로 정리해준다. 당시 나는 이 CF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계속 쉬워지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아예 안 마주치면서 살 수도 있겠다.’

이미 왠만한 프랜차이즈 매장에는 키오스크가 들어와 있다. 종업원에게 카드 내밀며 주문하던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이다. 얼마 전에는 IoT 기술을 대형마트에서 활용해 카트에 상품을 넣으면 그 즉시 결제가 되는, 해서 계산대가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 절약되고 귀찮음이 해소되는 편리한 세상이다.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는 슬픈 세상이다.

이토록 빠른 기술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인간다운 복닥복닥한 애정들을 잃지 않기 위해선, 보다 편리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를 만들어야 될 것이다. SF 뮤지컬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는 위와 같은 사회의 흐름 속에서, 비록 모호한 탈을 썼을 지라도, 그 알맹이 만큼은 가장 동시대적이고 일상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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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 창작 SF뮤지컬 -


일자 : 2019.03.16 ~ 03.31

시간
화, 수, 목, 금 8시
토, 일 4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티켓가격
R석 60,000원
S석 40,000원

제작
극단 듀공아

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과학창의재단

관람연령
중학생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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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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