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 : Design Magazine CA #243

천진난만한 열정가들
글 입력 2019.03.2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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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 곱고 세련된,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 열정, 감각적인, 섬세한​?



내가 생각하는, '디자이너'하면 연상됐던 것들이다. 왜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이너'냐고?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결국 디자이너잖아. 디자인을 대단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쯤으로 여겼던 내가 슬슬 사고가 바뀌었다는 걸 알려주는 서두다. 물론 대단한 능력을 지닌 디자이너도 많다. 그렇지만 디자인이 갖는 의미가, 능력쯤으로 국한돼서 생각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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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매거진>을 읽고 나서 바뀐 사고다. '디자인'이라는 어휘의 의미가 그보다 더 큰 것이라 체감하게 됐다. 글귀들은 내게 확신을 줬다. 어차피 디자인하는 건 사람들이니까,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다. 사람이 하니까 좀 더 인간적인 행위라는 걸 담고 싶었다. 때로는 치밀하고 계획적인, 때로는 단순하고 우연한 사고가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한다는 걸 말하고 싶기도 하고.

짧게 훑어서 얘기하자면 매거진은 디자인에 너무 겁먹지 말라고, 누구나 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들의 열정의 감복했다. 디자이너들은 매거진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온통 디자이너의 얘기로만 채워져 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사람들이 말하는 '디자인'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각자의 '디자인'을 살펴보다가 조금 특이한 코너를 발견했다. 기존 페이지보다 작은 속지의 코너, 독립출판 코너다.




고군분투를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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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고군분투, 독립출판. 33p


독립출판 코너에서는, 다른 그라데이션 배경과 다르게 온전한 분홍색으로만 배경색을 채우고 있다. 제목은 즐거운 고군분투, 독립출판. 필자도 최근에 친구의 독립출판에 후원한 적이 있기에 반가웠다. 딱 제목처럼, 친구는 힘들어했으면서도 하나하나 자신의 손이 닿은 결과물을 바라볼 때면 애정 어린 자부심이 나한테까지 전해져왔다. 순간 친구에게 마음 깊이 존경이 우러났다. 독립출판을 도전하며 출판해서 내게 책을 주기까지의 과정이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짧은 제목을 먼저 훔쳐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어지러이 스쳐 지나갔다.

인터뷰는 내게 정말 생경했다. 사실 나는 독립출판에 있어, 재정 문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그런 내용이 들어있었다. 신기한 건 그런 건 정말 문제 되지 않는 것처럼 여겼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는 당연한 거고 당연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여기는 것. 것보다 출판을 우선에 두는 것. 나였다면 출판의 가능성을 점쳐보면서 독립출판하기 망설였을 텐데 그들이 책을 냈다는 것보다 마인드가 더 멋졌다.

짧은 인터뷰 속에서 드러난 가치관은, 각각 다르면서도 저마다 특색 있었다. 과연 그들의 책이 어떨까?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책에 그들이 살아온 인생 조각과 흘린 땀, 사람들의 온기, 그리고 디자인이 담겼다. 뭔가 그냥 인생이 담긴 책이라고 보긴 아쉬웠다. 아 맞아, 현장이 담긴 책 같았다. 대형서점에서 쉬이 볼 수 없다는 사실도, 특정 시점 특정 공간에서만 판매한다는 사실도, 뭔가 우리네들 인생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형누나동생들 이야기 같았다. 브라운관에서 떠드는 저 사람들이 아니라 같이 밥 먹고 시시껄렁한 얘기 나누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빛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세상을 읽어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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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흐름. 49p



독립출판 코너 다음에는 올해의 트렌드가 나온다. 키워드로 요약하자면 간결함, 파스텔, 핑크, 그라데이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모션그래픽쯤으로 나열할 수 있다.  간결함, 파스텔, 핑크, 그라데이션은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는데 나머지는 조금 생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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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영상 선호. 60p



천천히 살펴보다 나온 결론은,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정보를 쏟아낸다. 그들 사이에서 오히려 단순 명료한 게, 피로를 덜고 눈에 띈다는 것이다. 영상보다 모션그래픽, 복잡보다 간결. 트렌드가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게 신기했다. 특히 그 흐름을 읊어주는 매거진 컨셉 또한 그렇게 적용했다는 게 재밌었다. 간결한 구성, 파스텔 핑크 그라데이션 배경, 심플하지만 가독성이 뛰어난 글씨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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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그래픽적으로 표현하는 사람. 55p



디자인은 어떻게 흐를지 아무도 모른다. 단언하거나 확신할 수는 없다. 그걸 함의한 게 이 코너 같다. 여기서는 전혀 객관적으로 단정 짓지 않는다. 디자이너들의 얘기를 취합해서 풀어낼 뿐이다. 트렌드에 대한, 각자 저명한 디자이너들의 시각을 풀어주는 게 재밌었다. 한 트렌드에 있어서도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공통의 트렌드에 대한 같기도 다르기도 한 시각은 '디자이너'는 세상의 흐름을 앞장서서 읽어내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알려줬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간결함과 당당함, 243호의 주제였다. 간결함. 책의 구성이나 큼직큼직하고 가독성이 좋은 글씨체, 복잡하지 않은 배경색, 배치에서 실컷 얘기를 끝냈다. 63페이지에서는 '당당'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현재처럼 자기주장을 뜨겁게 펼치는 시기가 없다고 한다. 저마다 굳은 신념을 갖고 죽 주장해나가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내가 글의 서두를 '디자인'보다 '디자이너'에 초점을 맞춘 이유가 이 파트고 이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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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연대하며,

뚜렷하고도 분명한 목소리로. 69p


당당한 코너. 세상을 바꾸는 디자이너 이야기들을 모아놨다. 코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주제 (인종차별, 미투 운동, 페미니즘, 디자인 예술 주체로서의 시각 장애인, 개척 정신, 워라밸, 생리, 우울증, 구독) 에 대해서 얘기한다. 디자이너들은 당당하게,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각자 자리에서 연대하며, 뚜렷하고도 분명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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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숨기지 않아도 돼요. 108p



마음에 들었던 토픽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집에서 '생리'는 그냥 생리였다. 마법도 아니고 숨겨야 할 것, 상징적인 것, 여자가 된 것. 다 아니었다. 그냥 생리였다. 생리대를 달라는 말도 그냥 했고 생리통도 대형도 날개도 다 달랐다. 그저 속옷처럼 필수품이었다. 나가서 보니, '생리'는 조심스러운 것이었고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왜 감추는 걸까? 혹은 특별하게 여기는 걸까? '생리'는 말 그대로 생리현상이다. 당하게 직관적으로 표현한 디자인이 우리집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고 공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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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으로 표현한 생리. 111p



분명한 목소리로 외치는 디자이너들은 누군가 잔뜩 어그러뜨린 물건들을 다시 정리했다. 마치 심란한 창고의 물건들처럼, 어디서부터 인지 언제부턴지 짐작도 안 갈 만큼 누군가 어질러놓은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정리해나가고 있다. 꾸미거나 망가뜨리지 않고 원래부터 존재했던 자리에 원위치 시키는 것 같다.




점점 바뀌는 사람



유익한 토픽, 간결한, 복잡한 디자인에서 드러나는 사상이나 가치관. 시각이 다채롭다. 그들의 결과물을 지켜보며 '디자이너'하면 머릿속에서 세련됐으며 뭔가 개성이 강하며 기가 센 사람들이 연상됐던 낡은 각질이 떨어져 나갔다. 인터뷰를 보면서 문득 '디자이너'들이 순진무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을 갖고 자기가 원하는 걸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오롯이 몰두하는 사람. 그렇게 인식이 바뀌었달까.


디자이너는 세상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니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관심 있는 것도 많았다. 마치 아이들이 이것저것 질문하는 것처럼,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동심이 그들에게 엿보였다. 동시에 왜 사람들이 많이 경험해보라는지 말하는 이유를 이 사람들에게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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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들지 말 것. 124p



너무나도 다양한 주제에서 각자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고 있다는 건, 작은 방에서 읽고 있던 내가 갑자기 복받쳐서, 울컥하게 만들었다. 작은 방, 폐쇄적 공간에서 혼자 있다가, 갑자기 세상의 구성원 모두와 연결된 느낌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문제를 인식하고 대면할 때 나는 일단 화낸 다음 무력감에 수용했다.


격하지만 단발적인 감정은 이내 탈력감 무력감에 휩싸였고, 나중에는 점점 익숙해져서 달아오르는 발화점이 좀 더 더 더 높아졌지만 금방 식었다. 우리네 사회 인간들이 자주 말하는 냄비형 인간이 돼버린 것 같다. 과정 속에서도 느껴지는 자기혐오는 '덤'이었다.

물론 지금도,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주 들지만, 뭐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니고. 세상을 디자인한다는 건 우연한 사고, 선택일 수도 있고 작은 노력이 될 수도 있다. 사진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부터다.




CA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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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1998. 우리의 관심은 딱 한 가지. 한 사람의 좋은 디자이너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것을 돕고, 지켜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잡지와 단행본과 컨퍼런스를 퍼블리싱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모든 일이 창조적인 작업(Creative Artworks)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삶의 외연을 넓히는 이야기.

*

디자인 매거진 CA #243

- 2019년 3~4월호 -

발행 : CABOOKS

분야

미술/디자인

그래픽

규격

220 * 300mm

무선제본

쪽 수 : 160쪽

발행일

2019년 02월 27일

정가 : 16,000원

ISBN

977-23-8418-200-9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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