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성의 상실 : 빛이 도사리지 않는 그곳에서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 리뷰
글 입력 2019.03.22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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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인생에서 1/3 가까이를
함께한 친구와 연극을 관람하였다.

친구는 오랜만에 연극을 본다며 기뻐했다.
그러다가 연극이 끝난 후에,
충격을 받은 그 표정은 잊기 힘들 것 같다.

*


그 좁은 집에 ‘사람’이 숨 쉴 곳은 없었다. 집에 살고 있었던 그들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인간의 형상을 빌려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에 기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두 아들의 아버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들의 공간은 연극 그 자체였다. 집 안의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컸다고 생각한다.

 

이미 연극임을 전제로 삼는 무대 위에서, 역할을 바꾸어가며 또 다른 연극을 펼치는 배우들이 경이로웠다. 쉼 없이 극이 진행되었다. 2시간 정도 길이의 연극이면 중간에 쉬는 시간을 한 번 가질 법 한데도 말이다. 그러나 배우들은 극이 막을 내릴 때까지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연극을 본지 며칠이 지난 지금도 ‘환철’의 역할을 연기한 배우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가면을 여러 개 바꿔 써가며 아버지의 연극에 필요한 역할들을 완벽히 연기했지만, 그렇게 연기하는 와중에도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던 슬픔. 자괴감. 고통. 절망.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공간에 빛은 없었다. 빛이 없는 결말에 반전 또한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으로 얼룩졌던 연극이었다.

 



1. 두 아들과 아버지의 ‘사실적인’ 연극


 

극중에서 두철과 한철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김대식은 쉴 틈 없이 ‘연극’을 주도한다. 그의 연극은 살인사건을 미화하며 호의호식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그렇다, 무대 위에서 그들은 또 다른 연극을 펼친다. 대식의 주도 아래 한철과 두철은 자신들의 몸으로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아버지가 요구하는 대로 연기한다. 때때로 연기가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연기를 하는 도중 실수가 생길 때 그들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린다.


대식은 두 아들에게 “사실적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모든 것들이 “사실적이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뇐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연극을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사실이라는 단어가 서 있는 곳과는 반대로 움직여야 할 텐데도. 어쨌거나 두 아들은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최대한 열연하여 연극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끌어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두철이가 마트에 나가 연극에 필요한 재료를 잘못 사오면서, 겉보기에 완벽했던 연극에는 잡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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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가슴이 저린 사진이다.

한철은 연기에 완전히 몰입한 상태이나,

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드리웠다.

그는 분명히 마음 속으로,

소리 없이 울고 있었을 것이다.




2. 인간이 아닌 ‘역할’들로 가득 채워졌던 집


 

아버지와 두 아들은 연변에서 온 중국 동포들이다. 대식은 연변에 있었을 적 일가친척을 죽인 적이 있다. 그 장면을 목도한 아내는 대식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말한다. 연변을 떠나 대식은 서울의 어두운 지하 연립, 굴레방다리의 지하로 도망쳤다. 한철과 두철은 곧 아버지를 찾아 그곳으로 따라왔다. 두 아들을 집으로 들이며 대식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두 아들과 함께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무대를 만들어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대식은 안전망을 만들어 자기 자신, 그리고 두 아들을 바깥세상으로부터 격리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안전망 속에서 대식은 자신을 위한 플롯을 써내려간다. 자신의 살인을 미화할,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외칠 수 있도록 해 줄, 순전히 자기변호에 불과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이야기에 두 아들은 단지 훌륭한 연극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었다.

 

사람은 셋뿐이지만 연극에 동원되는 역할들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한철과 두철은 마치 인격이 여러 개라도 되는 듯 자유자재로 등장인물들을 연기한다. 이 가면을 쓰다가도 곧바로 저 가면을 쓰며 다른 인물이 되어버린다. 후반부에 갈수록 초 단위로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두 사람을 보며 필자는 광기를 체험했다. 두 사람이 역할이 아닌 두 사람 그 자체로 존재했던 순간은 아주 짧았다. 그들은 좁은 굴레방다리의 지하에서 인간으로 있지 않았다.


단지 역할들에 불과했다. 대식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운 얼굴과 목소리로 아들에게 호통을 칠 때와, 극에 몰입하여 ‘유쾌한 성격을 지닌’ 주인공을 연기할 때의 그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렇게 역할들이 판을 치는 공간에서, 사람의 냄새를 맡긴 어려웠다.

 


  

3. 불완전한 ‘완전함’에 금이 그어진 순간


 

그들의 연극에 필요한 재료 중 하나는 닭이다. 극중에서 닭볶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트에 간 두철이는, 매일같이 마트에 재료를 사러 오는 자신을 기억한 한 여자 종업원이 말을 걸자 굉장히 당황한다. 그녀의 이름은 ‘김 리’였고, 몽골인이었다. 무대에서 벗어나 ‘진짜 사람’을 마주하며 사람의 말을 들은 순간 그는 얼어버렸다. 김대식이 ‘사실됨’이라는 말로 쌓아 올린 그들만의 성에, 정확히 말하면 김대식의 세계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


두철은 연극 바깥의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과 처음으로, 대사가 아닌 대화를 나눴다. 처음으로 말과 말 사이에 온기가 오갔다. 그 온기에 당황한 두철은 연극에 필요한 재료를 잘못 사가는 실수를 저지른다. 아버지에 의해 사실적인 연극을 펼쳐야 한다고 평생을 세뇌를 받았음에도 그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는 완전함으로 포장된 불완전한 연극에 균열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한다.

 

닭이 아닌 소시지가 냄비에 들어가 있는 걸 보며 대식은 분노에 휩싸인다.


“이건 사실적이지 않아, 사실적이지 않아.”

“사실적으로! 사실적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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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균열이 일어난 틈으로 찾아온 바깥 세상의 방문객, 김 리


 

김 리는 두철이 잘못 들고 온 봉지를 다시 전달해주러 그의 집으로 방문한다. 급작스러운 방문객에 세 사람은 모두 놀란다. 특히 대식은 매우 분노한다. 바깥세상과의 교류를 온전히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두철이 ‘진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바깥세상으로 탈출하려 한다고 생각하며 득달같이 두철을 몰아세운다. 더욱 사실적인 연기를 하라고,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연극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 리를 바깥으로 보내지 않으려 한다. 외부의 불청객을 살려둘 순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순전히 두철에게 관심과 호감이 있어서 그를 찾아왔던 김 리는, 추악한 굴레방다리의 지하를 지켜보며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철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았냐고, 왜 이렇게 사냐고.

 

그녀는 관중의 대변인이자, 어쩌면 이 슬픈 연극을 끝내줄 수도 있었을 희망이었기도 하다. 이렇게 과거형으로 기술하는 이유는 그녀가 끝내 두 아들을 바깥으로 인도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실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절망스러운 상황을 단순히 구원자를 통해 극복할 수는 없다. 김 리는 방문객인 동시에 엄연한 ‘외부인’이다. 그녀는 연극을 관람할 순 있겠지만 연극에 참여할 순 없는 것이다.

 

한철은 그녀라면 두철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이 방에서 나갈 수 없지만, 동생만은 집을 나가 보다 넓은 세상을 만끽하길 바라며 그는 이 연극을 끝내겠다는 각오를 내비춘다.

 

“내가 이 연극을 끝내겠어.”

 


  

5. ‘날래 가시라우.’


 

한철의 계획은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었다. 칼을 꺼내들고, 겉으로는 연기를 하며 아버지가 시선을 돌릴 때마다 칼을 휘둘러보며 시범을 계속한다. 김 리에게는 빨리 짐을 챙기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몇 번이고, 칼을 휘두르고 또 휘두른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예행연습을 하지 않아도 곧바로 아버지에게로 다가가 칼을 꽂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망설였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과연 아버지를 죽일 수 있을지ㅡ아버지를 죽여도 될지,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이 연극이 막을 내리면 자신은 어떻게 될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인간성이 가장 돋보인 대목이기도 하다. 마냥 그가 ‘칼을 내리꽂도록’ 역할을 부여받았으면 어떠했을까. 그는 과연 지금처럼 망설였을까?

 

하지만 끝내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았고, 붉은 피가 그의 손을 흥건히 적셨다. 김 리는 충격에 빠져 집 밖으로 도망친다. 한철은 화장실 문을 연다. 화장실에는 동생이 갇혀 있었다. 동생 두철이가 자신을 막을까봐, 일부러 화장실에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화장실 안에서 내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려움에 떨었던 두철은, 뛰쳐나오자마자 온갖 괴성을 지르며 한철 앞에 선다. 정신을 차린 순간 한철은 이미 심장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채로 동생을 마주보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필자도 기억이 희미하다. 두철이가 엉겁결에 한철을 칼로 찔렀는지, 아니면 한철이 스스로를 칼로 찔렀는지. 이보다 한철이 피를 흘리는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 깊어서, 아무래도 이전의 과정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듯하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 한철은 두철에게 말한다. ‘날래 가시라우.’ 그의 아버지 대식이 사람을 죽였을 때, 그 현장을 본 아내가 그에게 그리 말했던 것과 똑같이. 그리고 숨을 거둔다. 두철은 집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집안으로 돌아온다. 연극은 끝난다.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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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만남' 시간을 준비하는 모습.


  


6. 연극은 막이 내렸지만, 현실은 막을 내리지 않았다


    

연극은 막을 내렸다. 네 사람은 무대를 떠났다. 하지만 우리의 눈앞에는 여전히 무대가 남아있다. 그 무대는 우리의 현실이다. 현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세 사람이 그랬듯 우리도 연극 대본의 한 역할, 아니 어쩌면 하나 이상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대본에 적혀 있는 대로 충실히 연기한다. 내가 아닌 나 자신을 가면으로 쓰고 살아가며, 보다 더 완벽한 연기를 하려고. 보다 사실적인 연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역할이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기에 이 사회는 너무나도 각박하다. 지켜야 할 것도, 조심해야 할 것도, 생각해야 할 것도 많다.

 

우리는 이러한 지긋지긋한 일상을 탈출하고자 하지만ㅡ무대를 떠나고자 하지만 끝내 떠나지 못한다. 만약에 떠난다면 그것은 한철이나 대식이 그랬듯 죽음에 다다를 가능성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의 무대라는 이 한정적인 공간이, 일상의 전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평생 연극 속에서 일생을 보낸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현실 세계라는 연극의 구성원이라는 역할로 살아간다. 만약 무대에서 도망친다 하더라도, 결국 두철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사회를 벗어나 도달할 수 있는 장소는 적어도 이 지구상엔 없기에.

 

연극이 끝난 후에 한동안 자리에서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침 ‘관중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하였기에, 같이 공연을 관람하러 간 친구와 자리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켰다. 쉼 없이 흘러넘쳤던 감정들로 인해 머리가 조금 어지럽기도 했다. 일종의 피로를 느꼈던 것 같다. 부정적인 의미의 피로가 아닌, 감정이 복받쳐 주체할 수 없는 의미의 피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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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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