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냉장고 속 프랑켄슈타인 [공연예술]

NT Live 연극 <프랑켄슈타인>
글 입력 2019.03.21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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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공연 사업이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영국 국립극단처럼 나라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고, 다양한 예술적 공간이나 교류 같은 것들이 보장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NT Live(National Theatre Live)는 영국 국립극단 프로그램 중 하나로, 우수한 연극을 선정해 세계 극장에 생중계/상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국립극장에서 많이 상영 하고, 'NT Live 프랑켄슈타인‘역시 그동안 국립극장에서 상영되었으나, 14일부터 메가박스에서 재개봉되어 감상할 수 있다.




01. 프랑켄슈타인?



아무리 문학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초록색 피부에 머리에 큰 나사를 끼우고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큰 괴물을 생각했다면 이제부터 그 이미지는 머릿속에서 지우도록 하자. 메리 셸리가 쓴 원작 소설에는 그런 내용이 없을뿐더러, 그런 이미지는 원작을 단순히 공포 이야기로 곡해하는 것이다. 소설은 단순한 공포 이야기로 읽힐 법한 내용을 과학기술과 생명의 창조, 루소와 존 로크의 이론 등 여러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또한, 원작자는 어린 나이의 여성 작가로,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에서 단순한 초록 괴물이 아닌 여성 해방과 여성 인권을 읽을 수 있다.


소설 속 ‘괴물’은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학습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배운 것을 응용하여 본인의 생각을 구축해나간다.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며 그 지식으로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회는 그를 배제하고 추방한다. 사회에서 그는 ‘인간’이 아닌 공포스러운 인간 외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프랑켄슈타인은 어찌 보면 주류에 서 있지 못한, 작가로서의 메리 셸리를 가리키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남성이 주류에 서 있는 인간 사회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복수심을 가진 피조물이 창조주의 주변인을 해하며 비극의 연쇄를 이어나가다 자멸한다. 이 서사에서 우리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맑시즘, 정신분석, SF 등 여러 생각을 엮어나갈 수 있다. 그만큼 입체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02. NT Live, 잘 만든 만큼 아쉽다.





그러나 NT Live 프랑켄슈타인은 이 거대한 서사를 ‘남성’ ‘괴물’의 서사로 단순하게 만들어버렸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극 자체가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처음 보다 보면 ‘와, 이게 자본의 힘이구나.’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일단 영국 국립극단은 지원을 많이 받으니까. 부럽다!)


천장의 전구 모양 조명에 불이 깜빡깜빡 들어오고 심장 속에서 피조물이 탄생한다. 동물이 처음 태어나면 네 발로 기는 것부터 시작하듯이 이 피조물 역시 네 발로 기다가 두 발로 걷게 되고, 점점 감정과 느낌을 배워나간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큰 키에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괴물’로 인식한다. 돌을 맞고, 매를 맞고, 온갖 욕을 들으면서 그는 계속 도망치다가 눈이 먼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는 눈이 안 보여 다른 사람들처럼 괴물을 피하지 않고, 그에게 글과 언어, 지식을 가르친다. 책과 이야기를 통해 빠르게 지식을 습득해 나가는데, 그 탄생과 성장, 내면 묘사에 대한 연출이 정말 기발하고 입체적이어서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감탄의 깊이만큼 후반부의 서사에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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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냉장고 속에 갇힌 서사.



‘냉장고 속 여자’라는 관용구가 있다. 남성 캐릭터의 각성과 동기를 위해 살해, 강간, 부상당하는 여성 캐릭터를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 캐릭터는 주체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단순히 누군가를 위한 도구로서 소비된다.


NT Live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이러한 냉장고 속 여자가 둘 등장한다. 첫 번째는 여자 피조물이다. 괴물은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자신도 사회에 속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과 같은 여성 피조물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그 소원만 들어준다면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프랑켄슈타인은 그 조건을 수락하지만, 이내 새로운 피조물이 자신의 대본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여성 피조물은 (심지어 자신의 의지도 아니었는데)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게 된다.


두 번째로 프랑켄슈타인의 약혼녀 엘리자베스가 있다. 여성 피조물의 죽음 이후 더욱 복수심에 불타게 된 괴물은 결혼식 밤 그들을 찾아간다. 우리의 똑똑한 프랑켄슈타인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온갖 방안은 마련해두었으나 그 잘난 두뇌로 자신의 신부를 위한 예방 조치는 아무것도 해두지 않았고, 결국 엘리자베스는 괴물에게 강간, 살해당한다. 여성 캐릭터가 둘이나 어이없이 희생되었으면 끝에 무언가 대단한 결말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은 사실 서로의 사랑과 인정을 원했다며 크나큰 깨달음을 얻고 빛 속으로 하하 호호 걸어 들어간다.


앞의 두 여자는 각성과 깨달음을 위한 도구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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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제 원작 소설에 관련 내용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원작 소설을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여성이 썼지만, 여성 혐오적이다, 아니다, 이런 논란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NT Live 프랑켄슈타인은 입체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원작의 서사를 단순한 남성 괴물의 서사로 압축시켜버렸고, 그 과정에서 냉장고 속 여자들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순서였다. 조금만 더 예민하고 부지런하게 각색을 했으면 좋았으련만, 필자가 메리 셸리였다면 이걸 보고 당장 무덤에서 뛰쳐나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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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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