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패터슨으로 배우는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방법

글 입력 2019.03.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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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막 잠에서 눈을 떠서 시계를 보고 출근준비를 한다. 무기력하게 회사로 출근해서 매일 보는 동료들과 별 감흥 없는 대화를 한다. 일을 마치고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는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남는 시간을 보내고 내일 출근을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눕는다.

 

직장인의 삶이란 늘 이렇게 비슷하다. 별다른 자극도 재미도 없다. 삶에 점점 무기력해짐을 느낀다. 이럴수록 어디론가 현실을 떠나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자극적인 환경을 꿈꾸게 된다. 그 곳에 가면 환상적인 아이디어나 가슴 설레는 일이 발생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현실을 산다. 매일 매일의 일상을 이렇게 무기력하게만 보낼 것인가? 영화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페터슨’의 일주일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사는 그저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예술로 바꿔내는 마술을 보여준다.

   


패터슨3.jpg
 


영화 패터슨은 잠들기 전 침대 곁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보면서 잠들었던 영화였다. 나긋나긋 패터슨의 목소리로 그의 시를 듣고 있노라면 잠이 잘 왔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크게 극적인 장면 없어 조용히 시를 읊는 부분이 많아서 처음에는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큰 줄거리도 없다. 패터슨은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 아침에는 출근하여 버스를 운전하고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먹는다. 그 후에는 애완견 산책 겸 동네를 산책하다가 동네의 조그마한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내가 말한 일반 직장인들의 생활과 비슷한 모습이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는 패터슨 시에서 나고 자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를 매우 사랑하며 자신도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시를 쓴다는 것이다.

 

그의 일상은 말했듯이 변화가 거의 없다.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이 영화의 특별한 힘은 거기에 있었다. 단조로운 일상을 예술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패터슨은 일상을 예술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일까?



 

1) 관찰한다.


 

패터슩.jpg
 

 

영화는 패터슨의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갑으로부터 시작한다. 성냥이라는 소재도 꽤나 아날로그적이다. 그는 성냥갑을 보고 또 보고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먼지 시로 등장한다.

 


사랑 시

 

우리 집에는 성냥이 많다

요즘 우리가 좋아하는 제품은

오하이오 블루 팁

전에는 다이아몬드 제품을 좋아했지만

그건 우리가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을

발견하기 전 이었다

훌륭하게 꾸민, 견고한, 작은 상자에

짙고 옅은 푸른색과 흰색 로고는

확성기 모양으로 쓰여 있어

마치 세상에 더 크게 외치려는 것 같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냥이 있어요.

4센티미터의 매끈한 소나무 막대는

머리에 거친 포도색 모자를 쓰고

차분하고도 격렬하게 오래도록

불꽃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줄지도 몰라요.

난생처음이자 다시없을 불꽃을

이 모든 걸 당신께 드립니다.”

그 불꽃은 당신이 내게 주었던 것

나 담배 되고 당신 성냥 되어

아니면

나 성냥 되고 당신 담배 되어

키스로 함께 타올라

천국을 향해 피어오르리라


 

4cm 작은 성냥갑은 이제 더 이상 그냥 성냥갑이 아니다. 그의 관찰에 의해서 이토록 특별한 소재가 되고야 만다.



 

2) 잘 듣는다.


 

그는 매일 버스 운전을 한다. 동료 직원의 매일 같은 불평에도 귀를 기울인다. 매일 같은 노선을 운전하며 맞이하는 승객들의 대화도 주위 깊게 듣는다. 아내의 하루 일과 수다도 귀를 기울여 듣는다. 별거 아닌 이야기도 중요한 것처럼 집중해서 듣더니 이를 소재로 삼아서 또 시를 써내려간다.


심지어 그는 어린 아이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퇴근길 골목 뒤에 혼자 앉아있는 소녀에게 옆에 앉아도 괜찮은지를 묻는다. 그녀의 노트에도 글자가 빼곡하다. 질문도 멋지다. ‘너 시인이구나.’ 그리고 그 아이의 시에 반하는 그의 태도도 너무 멋있다.


 

 

3) 단순한 일상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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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것이 다양하고 자극적인 요소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야 할 것 같지만 패터슨의 일상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잠을 잔다. 복잡한 정보를 멀리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도 않을 정도로 삶을 단순화시켰다. 요즘같이 새로운 정보가 하루같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그는 최대한 모든 것을 절제했다. 얽매이고 구속받는 대신에 스스로 자유를 선택한 것으로 보여 진다.


심지어 버스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회사에 급하게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마트폰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경험을 겪고도 그는 결코 스마트폰을 사지 않는다. 패터슨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이 단순할수록 영감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안도감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스마트폰 대신 공책에 글을 쓴다.



 

4) 감동한다.


 

영화의 후반부 나름 심난한 마음으로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패터슨이 집 근처의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강아지 마빈이 자신의 습작 노트를 다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히 낯선 일본인과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끝내고 일본인은 악수를 하고 떠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아하’라고 소리 낸다. 매일 같은 시간, 풍경 속에서도 사소한 대화 하나를 놓치지 않고 그것을 깨달음으로 소리 내는 장면이다. ‘아하’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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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그는 이 말에 다시 ‘아하’ 깨달음의 감동을 얻고 늘 그렇듯이 삶을 시로 가득 채운다. 삶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주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귀 기울이고, 사소한 일에도 감동하는 태도로 그는 예술가가 되었다. 아 거기에 자신을 늘 응원해주는 팬, 사랑스러운 아내 로라도 있다. 별거 아닌 일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아니 그의 일상에 별거 아닌 일이란 없다.


우리도 패터슨처럼 충실하게 생업을 이어나가면서도 예술적 감수성을 놓치지 않은 채 계속 빈 페이지를 채워 나가보자. 우리의 매일 매일도 꽉 찬 아름다움이 가득할 것이다.



[최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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