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걷는 사람, 하정우 [도서]

배우 하정우의 걷는 인생 들여다보기
글 입력 2019.03.1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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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배우 하정우의 걷는 인생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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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하정우

출판 (주)문학동네



근래에 읽은 유명인 에세이 중에 가장 술술 읽히면서도 읽는 동안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유일한 책이다. 본래 하정우라는 배우가 내게 친근한 이미지여서 그런 걸까. 문장을 읽으면서 그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기분이 들어 묘했다. 나는 배우 하정우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가 출연한다는 영화는 내심 기대하게 된다. 그만큼 영화계에 있어서 배우 하정우의 입지는 견고하다. 설사, 최근 몇 편의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늘 그의 다음 영화를 기대한다. 영화배우로서 이 정도 대중의 신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의미한 자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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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네스프레소



그런 그가 책을 낸다고 하니 영화배우 하정우 이외의 그의 삶에는 관심도 없던 내가 뜬금없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그는 그림도 그린다. 연기를 하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심지어 최근 10년간 10회 정도 꾸준히 전시회를 열었다.) 책을 쓰는 사람이라니. 내가 알던 배우 하정우의 너무 다양한 면을 한 번에 마주하게 되어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다채로운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인간 하정우는 내가 생각했던 그의 모습과 일관되기 때문이다. 영화 시사회 토크 현장에서 시답지 않은 개그를 던지는 하정우, 배우 김태리에게 태리야끼, 김향기에게는 김냄새라는 어이없는 별명을 붙여 부르는 하정우, 수상 공약으로 생각 없이 막 내뱉은 것 같은 국토대장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하정우.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여러 갈래의 길이지만 그가 남긴 발자국은 늘 하정우가 하정우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책의 3분의 2 가량은 '걷는 하정우'에 대한 이야기이고 나머지는 '사람 하정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가 책에서 주야장천 외치는 걷기는 평소 나에게 그냥 하릴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걸었다는 뜻이다. 자가용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너무 가까워서, 밥 먹고 소화시키려고, 체중을 감량하려고 등등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그래야만 할 때 나는 걸었다. 그의 책에서 그가 하루에 최소 3만 보 이상을 꾸준히 걷기 위해 본인의 집인 강남에서 사무실이 있는 마포까지 걸어간다는 것을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진짜 시간이 남아도나 봐'였다.


솔직히 다들 내 생각에 공감할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들은 9 to 6를 맞추기 위해 졸면서 아등바등 출근을 하니까. 회사까지 걷기 위해 아침 6시에 집을 나선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럴 바에 1시간이라도 더 자는 것을 택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걷기 위해 무엇을 하지 않는다. 어떤 목적을 위해 걷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하정우가 책 속에서 내내 권하는 걷는 삶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예 적용될 수 없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를 포함해 걷기에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들, 걷는 것보다 빨리 가서 시간을 아껴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하정우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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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을 때 거창한 무언가를 기대한다. '이 사람은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나도 이렇게 하면 되겠지'하는 생각. 하지만 한 사람의 에세이를 읽는 것은 갑자기 뭔가 깨달아서 내 삶에 엄청난 터닝포인트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약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면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같은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무기력함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자기 계발서를 읽고 한순간에 생활패턴과 가치관을 모두 바꿨다는 것은 대부분 거짓말이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특히 그 사람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그의 인생 한구석에 난 창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당장은 이 책을 읽고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한번 읽고 나면 290페이지로 응축된 한 사람의 삶을 당신의 머릿속에 저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고 당신을 일으켜 세울 힘이 되어줄 수 있고 당신의 새로운 도전의 원동력이 되어줄 수도 있다.


내가 하정우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얻은 것을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저 부지런하게 갈 뿐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 中』



어쩌면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인간의 한계를 결정짓고 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내 앞에 뚜렷하게 그어진 한계선을 보면 나는 무모한 도전정신이 생긴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은 무슨 일이든 더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하정우의 인생을 보고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볼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걷기의 가치에 대해 전보다 호기심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살다 보면 한 번쯤 고단함에 지친 나를 일으키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봤던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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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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