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연극 '여전사의 섬'

여전사의 섬을 보기 전에
글 입력 2019.03.1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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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강해진 것인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해진 것인가?



인간은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이다. 오래된 논란 중 우리의 유전자가 우리를 결정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자란 환경이 우리를 결정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그 논란의 답을 알기 위해 나치 요제프 멩겔레가 쌍둥이 실험을 한 것도 결국은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함이었다. 실험을 통해 같은 유전형질을 가진 쌍둥이가 다른 환경에서 양육되면서 다른 자아를 가지게 된다는 결과를 발견했다. 결국, 환경이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 연극은 스스로 강해진 여전사의 이야기인가? 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진 여전사의 이야기인가?




고독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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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의 제목은 “여전사의 섬”이다. 섬은 고립된 공간이기 때문에 도와줄 사람도 없고, 열악하다. 그래서 고독한 공간이다. 그러한 이유로 섬에 대한 설화 중엔 고립으로부터 비롯되는 슬픔을 주제로 삼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 설화 속 섬사람들은 삶에 대한 열망이 처절하리만큼 강했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강인한 여성 역시 고독하다. 강인한 여성들은 자의든 타의든 강해져야 함을 느꼈기 때문에 강해졌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강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강한 여성을 꺼린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하다. 왠지 드세고 자기주장이 강할 거라고 인식되어 온 강한 여성의 이미지가 굳어져 그들이 어떤 역사를 가진 여성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왜 강한지, 어떻게 강해지게 되었는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누군가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는 혼자가 당연한 여자로 여기고, 강하기 때문에 내가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해버려서 조금 멀리하게 되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처음 이 연극의 이름을 듣고 고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나는 연극이 얼마나 고독한 이야기일지 생각하다가 극의 내용이 점점 궁금해져서 시놉시스를 찾아봤다.



[시놉시스]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자란 쌍둥이 지니와 하나. 만년 취업준비생 지니와 결혼을 앞둔 하나는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줄 알았던 엄마가 여전사 ‘아마조네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쌍둥이들은 엄마를 알기 위해 기억을 되짚어 나가기 시작한다.





신화 속의 여전사, ‘아마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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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자랐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적당히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어봤고, 적당히 무시를 당해봤고, 적당히 행복했던 사람을 평범하다고 칭하는 것일까? 그런 평범한 사람의 어머니가 아마조네스라는 신화 속 여전사라는 설정은 참으로 낯설다. 흔히 막장으로 불리는 작품들의 설정 속 출생의 비밀과는 다른 느낌이다. 분명 작가가 신화의 존재를 빌려 온 데는 수많은 시간 동안 굳어져 온 의미적 차원에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필 현대의 것에서 거리가 먼 아주 옛날 그리스 시대의 신화를 빌어 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신화의 성격은 상상을 부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전의 것을 새롭게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고 의미의 변용 가능성이 무한하다.


그래서 궁금했다. 작가가 여전사라는 신화 속 존재에게 부여하고자 한 의미는 무엇일지 말이다. 그래서 우선 아마조네스의 신화적 의미부터 찾아보았다. 신화 속 아마조네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전사로만 이루어진 전설적인 부족이다. 이들은 사냥과 전쟁을 좋아하였고, 활을 쏘거나 창을 던질 때 방해가 된다고 하여 한쪽 유방을 제거했다. 이런 이유로 아마조네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조금 더 알고 싶어서 아마조네스와 관련된 신화 이야기들을 찾아봤다. 대표적인 이야기로, 벨레로폰의 아마조네스 정벌과 헤라클레스와 히폴리테의 허리띠, 그리고 테세우스와 아마조네스의 전쟁 등이 있다. 세 가지 이야기의 요지는 강인한 여전사 집단 아마조네스를 영웅들이 정벌한다는 이야기이다.


정벌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마조네스라는 여전사들은 강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사냥과 전쟁을 즐기는 호전적인 집단이라는 정의는 그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강해진 것인지, 세상의 많은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만 했던 것일지 궁금증을 유발했다. 무엇이 됐든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영웅에게 있어 정벌의 대상이었다는 점은 그들이 늘 안전한 상황 속에서 살았다고 볼 수 없는 근거가 된다.


또한, 그들이 그런 상황을 즐겼는지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이 시놉시스 속 두 자매의 어머니로 나오는 여전사 아마조네스는 어떻게 그려질지 말이다. 과연 즐기는 모습일지, 살기 위해 싸우는 애처로운 모습일지 말이다. 그래서 연극이 더욱 궁금해졌다. 작가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시놉시스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와 결말을 상상해보다가 작가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인터뷰를 찾아봤다.




결국은 힘을 내고 살아간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각본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은, 작가가 그려낸 여전사의 이미지가 자의가 아닌 상황에 의해 강해져야만 했던 여전사의 모습임을 짐작하게 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여전사는 세상으로부터 힘을 잃고 사라진 여성들이 다시 강해지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강해지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 혹은, 평범하기 그지없어서 세상의 모진 풍파에 흔들리며 힘을 잃은 여성들을 위한 희망이자 삶의 의지를 주는 소망의 대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작가는 여전사라는 존재를 통해 이 세상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드는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특히 임 작가의 말 중 ‘여전사는 단순히 싸우는 전사가 아니며, 개인에 따라 고유한 모습을 가진다. 작품을 통해 폭력에 희생당하며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이 사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모진 풍파를 맞을 때 스스로 털고 일어날 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처가 너무 깊어 어떻게 일어나는지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약해서가 아니다. 사회의 잘못으로 상처를 받은 개인이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렇기에 깊은 상처를 갖게 된 것 자체를 개인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연극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고통을 받지만, 극복할 방법조차 몰라 주저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자기만의 여전사를 그려보게 함으로써 위로를 전하고 스스로 이겨낼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여전사



그렇게 그려진 여전사는 두 자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작가는 두 딸이 답을 구하고 희망을 얻기 위해 찾아가는 어머니를 여전사로 삼았다. 하필 어머니를 여전사로 설정한 이유에 관심이 간다. 지극히 평범해서 모진 풍파를 겪는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가족의 품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그런 가족 중에 가장 의지할법한 엄마라는 존재를 여전사로 그린 것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강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가 딸들을 두고 여전사의 섬으로 도망쳤다는 설정을 통해, 기존의 헌신적인 어머니의 역할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느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여전사인 어머니라는 설정은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이 아닌 그 사람 자체의 삶을 조망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가 떠났다는 설정은 관계로부터 누군가를 책임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꿋꿋이 책임지는 사람을 그려내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누구를 책임지는 일보다 내가 나를 지키고, 나로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결국,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기에 주체적인 사람이란 어쩌면 모든 역할을 다 해내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책임지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여전사의 모습



작가가 말하는 여전사라는 것은 나를 믿고 살아가게 하는 존재일 수도 있고, 내가 바라는 모습의 존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연극을 보려고 한다. 천천히 연극이 진행되는 대로 따라가면서 극 중 인물이 아닌 나 자체로 연극에 참여할 것이다. 그렇게 극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여전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여전사의 섬
-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 -


일자 : 2019.03.21 ~ 03.24

시간
목, 금 - 오후 8시
토 - 오후 3시 / 7시
일 - 오후 3시

장소 :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재)세종문화회관

주관
서울시극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80분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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