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저 그림] 1. 바다

과정의 그림
글 입력 2019.03.08 10:0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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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

/ 과정의 그림



1. 바다.jpg



 


#006. 진짜 바다


바다를 다 그리고

아무도 보기 싫었다.

떠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곳에는 진짜 바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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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바뀌었다.

여길 먼저 왔어야 했다.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앞에 선 그림과 나 외에 다른 세계는 잘 열어지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이미 그림은 내 손을 떠났고

앞에는 진짜 바다만이 영원히 일렁이고 있었다.

 

 


#007. 꿈의 바다

 

“꿈을 꿨는데.

바다에 혼자 서 있고 저만치 손수건이 날아가더라고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풍등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팍! 터지더니

하얀색 꽃가루가 잔뜩 휘날리며 하늘을 뒤덮었어요.

무섭고 아름다웠어요.”


“그거, 그려줄 수 있어요?”

 

꿈 얘기가 화근, 아니 시작이었다. 영화 만드는 사람(지금부터 H라 한다.)이 영화에 들어갈 그림을 원했다.

 


 

#008. 바다 그림, 하나

 

당시 우리는 그림과 영화와는 상관없는 일을 같이하는 중이었다. 자주 얘기를 나눴다. 그림에 관하여, 영화에 관하여. 때론 바다가 아닌 다른 그림에 관하여, 현재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에 관하여. 기다림과 슬픔, 시간과 삶에 관해 어설픈 이야기를 멋대로 나누곤 했다. 우리의 언어는 닮은 부분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을 알고 있다. 자신의 작업에 관해 말을 듣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 말하기 꺼리는 사람들,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이며. 그래서 H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일에 관해서도, 듣는 일에 관해서도, 남의 작업에 의견을 건네는 면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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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네요. 아프로디테가 나올 것 같아요.”

 

그중에는 괜한 절망을 안겨주는 말도 있었다. ‘예쁘다’는 내 한계를 간단히 표현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H는 내 전 작업들을 보고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예쁘다… 나는 디자인 전공자라 어려운 것 같다는 머쓱한 변명을 했다. 디자인은 ‘예뻐야’ 한다. 물론 깊이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지금 그런 부분을 다 고려할 수는 없으니 아무튼 학부 과정 기준으로, 아니 지금껏 해온 작업 기준으로 디자인은 예쁜 것이었다. 빈틈이 없고, 잘 다듬어지고, 깨끗한.

 

박영택 미술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개념은 폭력적이다.” 예쁘다는 말조차 폭력적이라니? 가능성이 있다. H가 나에게 폭력을 저질렀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명확한 테두리 안에 무엇을 가두는 개념의 역할에서 나의 절망이란 감정이 비롯하지 않았나 하고. 그런가 하면 의견을 주고받는 자유로움이 절실할 때도 있다. 마음을 과녁으로 만들어 화살을 다 맞은 다음, 하나씩 빼며 그 말들을 곱씹는 게 필요할 때도, 있다.

 

“무서운 느낌이면 좋겠어요.”

 

나만의 관건은 ‘예쁨’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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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푸른색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아쉬운 이대로 끝내는 맛도 있을 것 같다는, 책임질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했다.



 

#009. 바다 그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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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좀 낭만적이네요. 그래도 좋아요.”

   

좋다는 말이 좋지 않았다. ‘낭만적’이라는 표현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H는 여기서 멈출 기미였지만 나는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아 꽤 오래 붙잡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박영택 평론가를 존경한다. 현대미술에 관해 많은 걸 알게 해준 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의 마음에 관해서. 이번에도 그분의 말을 빌리면 작가에게 ‘백지는 공포’다. 하얀 캔버스를 마주한다는 건 지금까지 이룩된 회화의 역사, 더 진행될 것 없이 이미 무거워질 대로 무거운 역사를 끌어안으면서도 그 지점에서 새로운 성취를 해내야 한다는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좋은 그림은 계속 나온다. 공포를 이긴 자들의 소산일지도 모르겠다.


회화의 역사를 끌어안을 만큼의 그림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포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뭘 하기 전에 결과를 예상하며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되게 보편적인 감정일지도. 두 가지 종류였다. ‘백지라는 공포’와 그리는 도중에 ‘아 망했다’는 자각에서 오는 공포. 후자의 걱정은 그림을 그리는 순간마다 치고 들어왔다. 공포에 맞서려는 담대함은 애초에 없었다. 잠식당하지만 않으면 다행이었으니.


이미 망한 줄 알면서도 의미 없는 붓질을 했다. 희한하게도 마냥 헤매기만 하는 것 같은 이 때에 하늘을 더 높이, 바다를 더 아래로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천천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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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늘 하늘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은 더 나중에야 깨달았다. 무서운 느낌은 바다가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건가? 무섭고 아름다웠던 어느 날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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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다.


가장 먼저 시작해 가장 나중에 완성된 그림.

 


 

#010. 바다 그림, 셋


“저 바다 끝에 뭐가 있는지 호기심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섬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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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빨리 완성된 그림.


 


#011. 말과 그림

 

“그동안 어땠어요?”

 

“H의 말에 갇힌 느낌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내내 H의 말이 자꾸 생각났거든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에요.”


언제는 H가 하는 말에 집중하다가 "H의 말대로 그림이 그려지진 않을 거예요."라는 말을 했다. 의견이 필요 없단 뜻이 아니라, 아쉽지만 정말로 그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글과 그림은 서로 완벽히 환원되는 관계가 아니어서. H도 물론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상황이 조금 재미있었다. 아무튼 그런데도 그림을 그리는 내내 그의 말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 그림들이 잘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생각과 말은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것. 말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만이 그림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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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대해 완전히 알려고 하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할 거예요. 라는 뜻이기도 했다.

 

 

 

#012. 그림책 하나 <잃어버린 영혼> / 올가 토가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사계절

 

[그런 그저 그림] 말미에 그림책을 한 권씩 소개하려고 한다. 책 내용과 구조와 감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설명 없이 작품을 온전히 느끼길 원하는 분들은 아래 내용을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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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움직이는 속도가 육체보다 아주 느리기 때문이에요. … 환자분은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 … 제가 드릴 다른 약은 없습니다."

  


육체와 영혼에 주어진 속도가 운명이라면, 육체는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육체를 따라잡을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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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과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관한 예고는 한 페이지에서 마무리된다. 그다음부터는 다른 설명이나 글이 없이, 이미지만 나열된다. 잃어버린 영혼과 그 영혼을 기다리는 한 사람의 모습이 좌우 페이지에 대조되는 식이다.


못내 가슴 아프다.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의 육체는 안온한 실내에 가만히 앉아 차를 마시고 화분에 물을 주며 한가로이 있을 뿐이지만, 영혼만은 사력을 다해 먼 길을 헤쳐 돌아오는 여정이. 육체는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몰랐지만, 영혼은 육체를 찾으려고 애쓰는 시간의 대비가. 이 오묘한 슬픔은 가장 극적인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일지도, 바로 이 둘의 만남.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이 순간이 정말로 오니까, 무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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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주인공은 의사의 진단으로 영혼과 멀어진 자신의 상태를 단번에 깨닫지만, 나는 그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가 ‘정말 그렇구나!’라고 깨닫는 데만도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다. 현실 도피처럼 보이는 누군가의 행동이 사실은 자신에게로 힘껏 달려오는 영혼을 진득이 기다리는 시간이었음을. 심지어 깨닫고 나서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육체의 속도로 살았다. 그러다가 본능처럼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을 준비하고 꿈꾸고. 그렇게 어렵게 마련한 시간은 다시 육체가 살 시간으로 야금야금 빼앗겼다. 그런 반복이 벌써 여러 차례 일어나고 있다.

지금 나는, 영혼을 기다릴 시간을 어떻게든 사수하려는 파수꾼인가.

적어도 바다를 보고 있는 시간만큼은 내가 영혼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를 보며 가만히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꽤 궁금했다. 나를 찾아올까. 한 달 아니면 그보다도 오래.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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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장재이
    • 회화 앞에서 '예쁘다'란 말은 양날의 검 같아요. 그런 감상을 내놓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요.
      그림에서 어떤 스타일이 읽혀서 재미있어요. 다음 작업도 기대할게요 :)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artable
    • 2019.03.10 02: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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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이양날의 검.. 그런 것 같아요. 공감해요. 재이님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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