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랑스의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에서의 만난 생소한 인물 [여행]

'니콜라스 스탈'의 마지막 작품, 그의 우울 그리고 삶
글 입력 2019.03.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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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프랑스 지역 한적한 마을

'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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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스러운 이곳 앙티브에는 '피카소 미술관'이 자리한다.

그리고, 피카소 미술관 건물 앞에는 처음 보는 물빛 색감의 바다가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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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앙티브 마을,
'피카소 미술관' 내부 창문에서 내려다본 지붕

그리고

'니콜라스 스탈' - '콘서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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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티브에 자리한 피카소 미술관에서 가장 눈에 밟혔던 작품은 피카소의 작품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니콜라스 스탈’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작가의 ‘콘서트’라는 작품이다. 그 작품은 한 벽면을 꽉 채울 정도 크기의 거대한 캔버스로,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형태와 같은 것이 무심하게 그려진 작품이었다. 주된 색은 빨간색이라 말할 수 있었는데, 섬세한 명도와 채도를 지닌 붉은색이 아닌 말 그대로 ‘새빨간 색’이라 칭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선명한 색으로 작품을 그려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가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배경 지식이 전무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인터넷을 켜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것은 그가 사망하기 몇 시간 직전까지 그려낸 작업으로, 마지막으로 관람한 콘서트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제작한 것이라 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다. ‘나는 내 그림을 완성할 힘이 없다’ 혹은 ‘가야 할 길을 잃었다’와 같은 말들과 함께 그 작품 앞에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생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그러한 생각을 실제로 실행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 자신의 마지막 유작이 될 캔버스를 온통 적색으로 적셔내는 마음은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먹먹한 마음이 우선적으로 들었다.
 

구상화와 추상화의 경계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내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프랑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로 등단한 그는 부와 명예를 당연시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명인들이 그렇듯, 인기와 찬사를 동반한 비판과 비평 또한 피할 수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 이성적인 평론을 가장한 비난과 힐난은 그의 작업과 그의 자존감을 동시에 위축시켜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세상의 이목을 받으며 끊임없이 부딪혀야만 했던 삶은 참으로 버거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섬세하고 여린 성격을 가졌던 그는 그러한 무차별적 공격들로 인하여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그는 천재였을 것이다. 아니, 천재였음에 틀림없다. 그의 작업은 주위의 것들을 단순히 그려는 것에 멈춘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를 캐내고 표현해내려 노력했으니까. 분명 그는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 끊임없는 해체와 분석의 과정을 겪으며 지냈을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반응들 또한 관점들로서 수용해보며 자신을 괴롭혔던 것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의 깊은 생각과 성향은 재능을 펼치기에 그 누구보다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였었지만, 한편으로는 독으로서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자기검열과 자기 탐구를 본업인 듯 살아가는 이들은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 쉬우므로. 누구보다 세밀한 심성을 갖고 있던 그에게, 진정한 해방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이지 않았을까. 살육전과도 같았을 타인들의 견지에 지나치게 마음을 소비했을 그의 생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존재의 필멸성 앞에서 몇 번이고 꺾이고 일어서기를 반복해보았을 그의 정신을 헤아려본다. 그토록 남부럽지 않은 재주를 갖고 있던 그가 안타까운 선택을 결심한 것이 애통하다.
 

흔히 들려오는 말처럼, 인생은 덧없는 것이기에 더욱 즐겁게 살아가야 하나보다. 꾸준히 자신의 존재가 의미 없다고 생각이 들면 위태로워 지나보다. 캄캄한 곳에서 보석을 채광하는 광부들의 얼굴에 당연히 검은빛이 드리우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채굴해내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괴로움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신경 쓰는 것보다는, 때로는 어느 정도 모르는 척 흘려보내는 것 또한 미덕이 되나 보다.
 

한때 우울을 겪었던, 여전히 우울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내가. 그리고 주변인들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이들의 레이어가 스크린에 영사되듯 캔버스에 겹쳐져 보여서. 유난히 오랫동안 눈을 뗄 수 없었던, 자꾸만 서성이게 되며 쉬이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던 작품 앞에서 겨우 시선을 옮겨본다.


[류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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