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크로키] 어나더 어스 : 또 다른 지구, 또 다른 나

나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글 입력 2019.03.0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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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크로키


국내 미개봉 영화 중 의미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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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어스

(Another Earth)


연도: 2011년

감독: 마이크 카힐

수상: 2011년 선댄스 영화제 대상 외 다수



키워드: SF, 우주, 자아, 용서, 철학적인, 어두운, 아름다운, 몽환적인



어떤 영화는, 보기 전과 후를 경계로,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낯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하고, 다른 차원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불완전함과 직면한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진다. 이 영화 어나더 어스 (Another Earth, 2011)가 바로 그런 영화다.


어떤 말로 이 영화를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SF 영화라기엔 지나치게 인간의 내면에 관심이 많고, 성장 영화라기엔 뚜렷한 변화가 보이질 않으며, 로맨스 영화라기엔 너무 삭막하다. 이 영화가 관심 있는 건 오직 "용서" 그 하나뿐인 것처럼 보인다. 참 알 수 없는 영화다. 하지만 참 마음이 가는, 마음을 뒤흔드는 영화다. 그리고 아름답다.




푸른빛의 점 하나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주인공 로다를 감옥에 보낸다. 로다는 MIT 입학을 앞두고 있는 영특한 고등학생이다. 파티가 끝나고 운전해서 집에 가는 중, 그녀는 우연히 라디오를 듣는다. 경쾌하고 힙합스러운 말투의 남자. 그는 지구와 거의 유사한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지금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푸른 점으로 그 행성을 볼 수 있단다.


로다는 고개를 든다. 까만 하늘 속 보석처럼 박힌 푸른 점 하나. 밤하늘에 시선을 빼앗긴 로다는 그 순간, 끔찍한 사고를 내고 만다. 다른 차를 들이받아버린 것. 그 사고로 차에 타고 있던 세 식구 중 아내와 아들은 사망하고 남편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렇게 로다는 4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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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 속 또 다른 지구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출소한 로다는 한 고등학교에 청소부로 취직을 한다. 그사이 다른 친구들은 대학원에 가고, 좋은 곳에 취직을 했다. 모두 번듯하게 살고 있지만 로다는 홀로 비좁은 다락방에 웅크리고 앉아있다. 손에는 볼펜 대신 빗자루가 들려있고, 그녀의 머릿속엔 여전히 4년 전 그날의 죄뿐이다. 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남자, 존 버로스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선뜻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어떻게 빌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로다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한편 제2의 지구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완벽한 복사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곳엔 지구 1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고스란히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같은 연도에 태어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같은 경험을 하며 살아온, 또 다른 나... 로다는 알 수 없는 끌림으로 '또 다른 지구 탐사대 선발'에 지원한다. 원래 우주에 관심이 많았고, 또 그곳엔 뭔가 새로운 게 있으리라는 막연한 공상도 지원 이유 중 하나다. 로다는 궁금하다. 그곳에 살고 있는 로다는 여전히 청소를 하고 있을까?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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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지구를 바라보는 로다


영화는 푸르게 바랜 빛으로 계속해서 나아간다. 천천히 우직하게 한곳을 향해 나아간다. 그건 바로 '용서'다.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구하고, 또 내가 나를 용서하는 것. 그러기 위해 로다는 버로스를 찾아간다. 하지만 선뜻 말이 나오진 않는다. 결국 그녀는 무료로 청소를 해주는 서비스를 해주러 왔다며 둘러대고, 그의 집을 청소해주며 버로스와 가까워진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있는 로다. 버로스가 그런 로다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며 이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사실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이후에 있다. 버로스에게 용서받고, 또 스스로를 용서하기 위해 박차고 일어선 로다, 새로운 지구, 또 다른 나, 또 다른 우리. 아름답고 벅차오르는 마지막 10분은 절대 놓치지 마시라.



현재의 나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


영화 [어나더 어스 (Another Earth)]는 2011년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다. 저예산으로 이런 아름다운 SF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하늘에 마치 해와 달처럼 떠있는 또 다른 지구. 그 속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나. 그 밑을 걷고 있는 로라의 모습이나 줄을 지어 또 다른 지구를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왠지 슬프고 처연하게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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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지구에 몰두한 사람들


같은 크기의 고민과 고통을 껴안은 나와 똑닮은 누군가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풍경으로 자신의 지구를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 애가 걱정되기도 하고, 응원하고 싶고, 또 함께 있지 않음에도 든든한 기분이 든다. 떠올리면 안심이 된다. 넌 잘 해내고 있을까? 이 버거운 생이 두 개라니. 그 애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까. 이 무수한 선택과 고민의 순간순간 그 애는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아마 로다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너도 4년 전 나와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니. 그래서 너도 청소를 하며 살아가니. 이 낡은 옷을 입고 비좁은 다락방에서 과거의 일을 들춰내며 죄책감에 콱 죽어버리고 싶단 생각을 하지는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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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다와 버로스


우리는 수많은 'IF'를 품으며 산다. 전공이 달랐더라면, 그 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말을 했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부모님이 아주 부자라면, 나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의 이런 막연한 공상은, 영화 속 또 다른 지구를 올려다보는 사람들과 닮아 보인다. 또 다른 지구 속의 또 다른 나, 또 다른 삶.


또 다른 지구를 떠올려보는 우리는, 어쩌면 현재의 나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닐까. 과거의 내가 했던 행동, 그 결과로서의 현재의 삶, 그리고 현재의 나. 이 모든 것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진정한 나 자신과의 화해는 아닐까. 먼 우주 속 또 다른 지구가 아닌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것.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해야만 하는 말을 아는 것 말이다.

영화에선 이와 관련해 아주 멋진 말이 나온다.



인생을 살다 보면 경이로운 일들을 겪는다. 생물학자들은 더욱 작은 존재를 찾고, 천체물리학자들은 어두운 밤하늘의 멀고 먼 우주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중 가장 신비한 것은, 작거나 큰 것이 아니다. 가까이 있는 우리 자신이다. 스스로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뭐라고 할까? 우리 자신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 자신을 밖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말이다.


- 영화 [어나더 어스] 中



*


공상과학적인 소재를 통해 철학적 사유를 하는 영화, 어나더 어스. <인터스텔라> 같은 거대한 우주의 모습이나, <마션> 같은 빠른 속도감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황폐하고 푸르른 영상미를 곁들여, 현재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영화는 완벽한 작품이 될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우리는 나 자신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고민이 깊어지는 불면의 밤.  당신을 달래줄 영화, <어나더 어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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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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