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의 축소판, 그 이름 ‘드라마’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2.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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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TV를 보기 시작했던 것은, 자그마치 네 다섯 살을 지날 무렵이었다. 스스로 떠올릴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첫 장면이 바로 할머니와 함께 안방에 앉아 ‘전원일기’를 보고 있었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할머니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은 모두 TV를 유난히 좋아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을 제외하고 언제나 켜져 있던 TV를 보며, 어린 나는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엄마의 드라마 사랑은 특별했다. 내 어린 시절 엄마의 유일한 취미가 바로 ‘드라마 보기’였기 때문이다. 극 중 주인공이 크게 기뻐하면 엄마는 따라서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주인공이 슬프게 울면 엄마는 곧 따라서 눈물을 훔쳤다. 마치 그 모든 극 중 사건들이 자신에게 일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엄마는 드라마 속 모든 감정들에 공감했고,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드라마에는 무슨 힘이 있길래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집 앞 슈퍼 이모도 모두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일까. 내 숱한 궁금증에도 그저 ‘재미있잖아’ 라고 대답할 뿐이었던 엄마의 대답은 어린 나의 물음표를 늘 지워주지 못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나서야 나는 ‘재미있어서’ 라는 엄마의 짧은 답변 안에 담긴 의미들을 알게 되었다.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수많은 인생의 공통분모를 함축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상상이 덧대어져 만들어진 가짜의 세계이지만,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당신의 인생과 극 중 주인공들의 결코 인생이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과 위로를 충실히 건네 오던 존재였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때로는 사회와 개인에 일침을 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꿈과 희망을 건네는 역할도 했다. 결국 드라마는 ‘타인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시청자에게는 ‘나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로 도착하는, 보이지 않는 소포상자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특히 모든 이들의 인생 한 가운데를 꿰뚫는 듯한 울림과 여운을 주는 좋은 드라마들이 있다. 오늘은 내가 지금까지 본 드라마들 중에서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볼 수 있게 해준 이야기 세 편을 추천해보고자 한다. 만약 아직 이 드라마들을 보지 않았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세 편의 이야기들을 통해 많은 위로와 공감, 삶을 돌이켜보는 계기를 얻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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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C)



1. 네 멋대로 해라(2002):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끝자락에 서게 된다면


경찰서 유치장을 밥 먹듯이 들락날락하는 전문 소매치기 복수는 마치 내일이 없는 듯이 쓸모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그래서 내일의 희망도 없는 그에게 세상을 가치 있게 살아갈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복수는 전경을 만나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결심과 동시에 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자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하루 아침에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복수는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삶의 끝자락에 선 순간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그에 눈에 비친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인식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더 나은 내일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이처럼 ‘네 멋대로 해라’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소재 ‘불치병’을 등장시키긴 하지만, 불치병으로 인한 한 개인의 비극에 초점을 맞춰 서사를 진행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 복수의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며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법,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잊지 않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주인공 외에도 무언가 결여된 것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우리 모두의 인생은 불완전의 연속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문득 나의 존재가 가치 없게 느껴지고, 눈 앞이 아득해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 날이 온다면 ‘네 멋대로 해라’를 정주행해보자. 성공과 실패, 부와 가난, 만남과 이별. 그 모든 것에 관계없이 나의 인생은 그 자체로 가치있고, 그래서 세상은 꽤 살만 하다는 걸 복수를 통해 알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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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C)



2. 고맙습니다(2007): 나를 알아줄 단 한 사람을 만나는 ‘기적’


‘고맙습니다’는 방영 당시 꽤 충격적인 소재로 두고두고 회자됐던 드라마였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조심스럽게 여겨졌던 미혼모와 에이즈라는 소재를 극 서사 상 중요한 문제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가 전개마저 충격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위로를 건네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의료사고로 잘못된 혈액을 수혈받아 에이즈에 감염된 딸 봄이,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미스터 리)와 함께 작은 섬에서 살아가고 있던 싱글맘 영신이 삶의 모든 의욕을 잃은 채 섬으로 흘러들어온 의사 기서를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주된 서사로 하고 있다. 드라마의 중심이 멜로로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고맙습니다’의 진짜 메시지는 바로, 나를 진심으로 알아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며 행복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소외받은 채 살아가는 영신, 봄이, 미스터 리가 서로를 보듬고, 기서가 이 세 사람을 다시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에서 드라마의 메시지는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금 당신의 옆에는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줄 그 단 한사람이 있는가? 만약 아직 그런 기적이 오지 않은 거라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어떨까. 봄이와 영신의 모습처럼, 당신이 누군가에게 기적이 되어 주기로 마음먹는다면 언젠가는 기서처럼 당신을 알아줄 또 다른 기적을 반드시 선물 받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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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J ENM)



3. 디어 마이 프렌즈(2016): 인생이 나에게 아직 알려주지 못한 것들


아직 젊은 우리는, 청춘이 영원할거란 아주 큰 착각에 가끔씩 사로 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노인이 되려면 우리는 아직 멀었고, 그래서 노인이라는 존재는 우리와 어떠한 접점도 가지지 못한 동떨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청춘은 가끔씩 자만해진다. 늙음도 저 멀리 있으니, 죽음 또한 마찬가지로 아직 생각할 필요가 없는 머나먼 것이라고 말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순간을 가끔씩 느끼고 있다면,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가장 먼저 이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기를 추천한다. 이 드라마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삶과 늙음, 죽음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궤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청춘과 노년, 삶의 시작과 죽음이 결코 동떨어지지 않은 것임을 시청자들에게 일깨운다.


이 드라마를 통해 나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청춘이 아름답듯, 앞으로 다가올 결코 아득하지 않은 노년도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답게 맞이할 수 있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살아낸 시간동안 인생이 아직 나에게 알려주지 못한 것들을 예습한 기분이랄까. 지금 내가 살아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찬란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를 꼭 보기를 다시 한 번 추천한다. 당신이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나이를 살아가고 있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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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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