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자락에서 절망을 조우할 때, 당신에게 비추는 따사로운 햇빛

뮤지컬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 서울' 관람 후기
글 입력 2019.02.2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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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드디어, 관람

대망의 1월 27일이 밝았다. 아침부터 설렌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뮤지컬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를 보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같이 뮤지컬을 보러 가는 친구와 일주일 전부터 부산을 떨었다. 둘 다 뮤지컬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것이기에 더더욱 신이 났던 것이다. 기대감에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늦은 오후, 예술의 전당으로 출발했다. 난생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에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장엄하고 거대한 공간이어서 놀랐다. 어딘가 모르게 엄숙한 분위기도 느껴졌다. 안내에 따라 '라이온 킹'이 공연되는 층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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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뮤지컬 '라이온 킹'을 관람하고 난 뒤 후기 사진.
공연장 내부는 촬영이 완전히 불가능했다.



1. 극장에 입성하다 : 1막의 시작

나와 친구는 3층 극장으로 이동하였는데, 입장하자마자 수많은 좌석들과 공연장의 방대한 크기에 깜짝 놀랐다. 지금껏 가 보았던 그 어떤 뮤지컬 극장보다도 거대했고, 공연을 위한 시설도 최상의 수준으로 구비되어 있었다. 공연 무대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라이온 킹' 문구를 보며, 우리들은 공연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발을 동동 굴렀다. 오후 7시, 드디어 뮤지컬이 시작되었다. '라피키'의 'circle of life'가 공연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녀의 뒤로 힘차게 떠올랐던 붉은 태양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뮤지컬 '라이온 킹'의 위대한 서막이 열렸다. 이때부터 내 눈에 이미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라이온 킹'의 배경이 되는 프라이드 랜드가 내 애니메이션이 아닌 나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굉장한 높이의 조형물과 붉은 색 태양을 강조한 조명효과, 서막을 알리는 라피키의 노래, 그리고 그것을 마주하고 있던 나와 모든 관객들ㅡ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뮤지컬의 시작을 장식하고 있었다.



2. 원작에 충실한 플롯, 그러나 신선함 : 훌륭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

뮤지컬의 전반적인 플롯은 원작 애니메이션을 충실하게 따랐다. 어린 사자인 '심바'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주요한 이야깃거리로 삼고 있었는데, '라이온 킹'의 영화 버전을 감상했던 필자로서 영화의 내용과 크게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원작 내용을 변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뮤지컬로 재현해낸 시나리오 담당자께 존경을 표하고 싶다. 사실 원작을 '충실히' 따른다는 것은 양면의 날과 같기 때문이다. 이미 원작의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함만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신선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모두를 시청한 필자의 소견으로는, 뮤지컬 버전은 후자에 가까웠다. 똑같은 플롯을 뮤지컬로 감상하며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가 연출진의 능력과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적인 플롯을 있는 그대로 뮤지컬로 구현할 때,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ㅡ 조명, 소품, 음향, 배우들의 의상, 각종 조형물과 같이 외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라이온 킹'의 경우 이를 강조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단 주인공들이 전부 동물이기에 이들을 사람의 형상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그리고 작중 배경인 프라이드 랜드, 즉 아프리카가 모티브인 장소와ㅡ 사막과 절벽, 수풀이 우거진 정글 등 현실로 구현하기 힘든 장소들을 '무대 위에' 구현해야 한다. 연출진들은 성공했다. 귀여운 가면들과 소품들을 이용하여 각각의 동물들의 특징을 적절히 잡아내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동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배우들의 분장이 자연스러웠다는 뜻이다. 또한 무대 배경의 연출도 훌륭하였다. 특히 물소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는 장면을 마치 3D로 보여주듯 생생하게, 무대의 벽면에 마리오네트식 방법을 이용하여 표현한 것은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그리고 주인공 심바가 물에 비치는 자신의 아버지의 얼굴을 볼 때, 아버지 '무파사'의 얼굴이 무대의 벽면에서 영상이 아닌 보조 스텝들의 도구들로 구현되는 장면을 보며 전율이 돋았다. 보조 스텝들 한 명 한 명의 손에 매달린 전구들이, 무파사의 얼굴이 되어 환하게 빛났다. 또한 사바나 초원의 반짝거리는 밤하늘도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재현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보는 눈을 즐겁게 만들었고, 뮤지컬에 더욱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두 번째로ㅡ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과 상황에 알맞은 플롯들이 결합할 때 관객들은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은 두 가지 모두가 완벽했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는 누구 하나 흠 잡을 것 없이 좋았다. 특히 주인공의 삼촌으로 등장하는 '스카' 역할을 맡은 배우가, 원작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초월할 정도로 스카의 사악함을 연기하였다. 후반부에서 심바에게 무파사를 죽인 사람은 사실 자신이라고 나지막하게 고백하는 장면은, 악마 그 자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에 걸맞게 플롯들이 상황마다 적절하게 주어져, 그 시너지가 엄청났다. 서사가 전개되며 갈등이 고조되고, 그 갈등이 해소되는 순간들 모두가 너무 빠르다거나 혹은 너무 느리다는 느낌 없이 자연스러웠다. 긴장이 되어야 할 순간에 긴장이 되었고, 웃어야 할 순간에 웃음이 나왔다. 특히 배우들의 대사에 가끔씩 한국어가 들어갈 때, 관객들 모두가 즐거워했다. 마지막에 심바가 왕위를 계승하고 프라이드 랜드의 꼭대기로 올라가 포효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영화의 마지막과 동일하면서도ㅡ 빨강, 주황, 노랑 계열의 조명들과 활기찬 음악들, 그리고 아프리카의 사바나를 표현한 다양한 조형물들의 조화로 완벽하게 뮤지컬의 마지막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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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뮤지컬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트레브의 방랑)



3.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 하지만 당연하기에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다

본 뮤지컬의 서사는 아주 전형적인 '성장물'에 해당한다. 가족을 잃고 타지로 추방된 주인공이, 조력자의 도움으로 성장하여 결국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루며, 영광을 누린다는 이야기를 따르고 있다. 그야말로 '노력과 인내 끝에 좋은 결과가 온다'는 전형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승전결 구조에 익숙하고, '뻔하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라이온 킹' 역시 그러할 것이다. 사실 뮤지컬의 초반부부터 많은 사람들은 결국에 심바가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와 부정하게 왕위를 계승한 삼촌을 무찌르고, 본인의 영예를 되찾는 동시에 왕국을 재건할 것라 예상할 것이다. 그러한 '전형적인'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반드시 관람해야만 한다. 그러한 당연함이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선물로 건네주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 ㅡ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 '당연한' 것들을 가벼이 여기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기에 우리는 이를 중요히 여겨야 한다. 그렇게 당연한 것들을 가볍게 여기다가는 끝내 결여가 발생하기 때문이며ㅡ 사실 인생에서 조우하는 많은 문제들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이렇듯 당연한 것들에 있기 때문이다. 시련을 극복하고 끝내 결실을 맺는다는 흔하디 흔한 성장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일들에 종사한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일들이 '나쁘게' 끝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련을 마주할 때, 어려운 점들이 생길 때 우리들은 쉽게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러고서는 마치 나쁘게 끝나길 바라는 사람인마냥 절망적으로 매사를 일관하기 시작한다. 당연한 것을 잊어버린 결과이다. 필자 역시 '라이온 킹'을 관람하며, 절망적인 기분으로 계절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마음을 고쳐 먹었다. 결국에 심바가 자신의 왕국을 되찾았듯이, 나 역시도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찾은 것이다. 이렇듯 희망은 당연한 것으로부터ㅡ 우리의 절망은 뻔하고 흔한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뻔하지만, 뻔하기 때문에 따뜻한 위로를 본 작품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길 바란다.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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