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글 입력 2019.02.2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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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공식품일까?’



너무 많은 경쟁, 너무 많은 관계에서 선택되고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마치 하나의 식품처럼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때로는 냉동되고 건조되며 발효된다. 찾기 쉽고 먹기 쉽게, 오랜 시간 지나도 변형되지 않게 말이다.



대입을 위해 고3 때 매일같이 썼던 자소서(자기소개서), 아니 자‘소설’은 여러모로 괴로운 일이었다. 기획자로서의 꿈을 품고 있었고, ‘세상을 바꾸는 전시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넘치던 때였지만 그럴듯한 사연도, 그럴듯한 동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잘 기획된 전시가, 나에게 울림을 줬던 작품들이 너무 좋아서 그 일을 경험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선택받기 위해 나의 사연은 좀 더 ‘남들과는 다르고’, ‘남들보다 새롭고 신선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정글 같은 사회에서 나를 끊임없이 가공하는 일이 곧 생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가 보는 진짜 나보다 남들이 보는 ‘유효한’ 내가 더 익숙해진 것이.

 

그러다 가끔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남몰래 나의 숨겨둔 모습에 대해 끄적이는 것이 소소한 낙이 되어버렸다. 가장 사적인 나의 일기는 가끔 나를 너무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을 환기해주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 나만 볼 수 있는 나의 일기장은 가장 나다운,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담고 있다. 그렇게 꾸준히 나만의 ‘흔적’을 남겨왔다.

 

그리고 여기, 시장에서 팔리기 위해 자극적인 요소만 난무하고 핵심은 없는 그저 가공된 노래들과 달리 작지만 꾸준한 목소리로 ‘나’의 날 것을 진솔하게 담은 노래들이 있다. 잘 다듬어진 완벽하고 깨끗한 곡이라기보다는 서툴게 감정을 배설하는 일기장과 더 흡사한 곡들이다. 그래서 어딘가 더 훔쳐보고 싶은, 날 것 그대로의 냄새를 풍기는 매력적인 가사의 노래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방황을 바라보는 솔직한 시선, <김사월-세상에게>





있잖아, 여기서 일 년 전 이때쯤에

우린 세계 일주에 대해 말했고

캣파워를 듣고 있었지

지금은 그때도 우리도 남지 않고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발자국만이

세차게 울리고 있어

 

이제야 깨달았지

세상에게 난 견뎌내거나 파멸하거나 할 수밖에

불확실한 나에게

이미 정해진 것은 방황 하나뿐이라는 걸

 

세상에 잘했어 괜찮니 힘들었지

말해줄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누구를 찾아 헤맨 걸까

눈 뜨면 내 목을 조르는 영수증에

네가 건네준 1달러도

그저 돈이 돼버리는 게 너무 싫어

 

이제야 깨달았지

세상에게 난 견뎌내거나 파멸하거나 할 수밖에

불확실한 나에게


이미 정해진 것은 방황 하나뿐이라는 걸


*


화자는 ‘방황해도 괜찮아.’ 혹은 ‘이 시기가 지나면 성공 할거야.’ 식의 듣기 좋은 희망찬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달픈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방황뿐이다.’라며 ‘나’의 방황은 단순히 청춘의 상징이자 지나가는 시기가 아니라 끝없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짐이라고 덤덤히 내뱉는다. 화자는 이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멜로디는 따뜻하고 포근하게 전개된다. 마치 ‘세상에 견뎌내고 파멸하는 건 너 혼자만이 아니다, 힘들어도 외로워는 말라.’라며 듣는 이에게 쓸쓸하지만 담백한 위로를 전해주는 것만 같다.




2. 예술가의 딜레마, <검정치마 - 난 아니에요>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꺼진 불 속 조용한 관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주세요

 

옛 친구와는 가벼운 이별,

다음 주면 까먹을 2절

믿지 않겠지만 별이 되긴 싫어요

 

난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기 싫은걸요

그대 알잖아요 우린 저들과는 너무 다른 것을

 

난 배고프고 절박한 그런 예술가 아니에요

내 시대는 아직 나를 위한 준비조차 안 된 걸요

 

마마, oh 마마 나의 맨발을 봐요

마마, oh 마마 저들은 나에게 어서 뛰래요

 

국화 향이 물씬 나는 날,

해랑사 을신당는 나

처음엔 안 넘어가는 게 아마 맞아요

 

나는 별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


검정치마의 노래는 항상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지만, 필자가 받아들이기에 <난 아니에요>는 예술가인 화자의 딜레마를 너무도 솔직하게 드러낸 곡이다.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예술과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을 요령껏 활용하면 하루아침에 누구나 화려한 인기 반열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은연중에 드러나는 이 사실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치와 향락의 삶을 욕망한다. 어쩌면 예술계에 몸담고 있을 곡의 화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지조 있는 예술을 하고 싶으면서도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따위에 유혹을 도무지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화자가 어떤 삶을 택했느냐에 따라 곡의 마무리는 화자의 굳은 신념이거나 지난날의 후회, 혹은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는 변명으로 들리기도 한다.




3. 진정으로 원하는 ‘나’의 삶, <루시드폴 - 연두>





연두색 꽃처럼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지

'노을처럼 빨간

보름달처럼 노란 꽃으로

살아야 한다’고

 

세상이라는 숲에서 내 모습이

잘 보이진 않겠지만

난 연두색으로 피고 질 거야

수많은 나무 잎사귀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그렇게

 

연두색 꽃처럼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고개를 저었지

'루비처럼 빨간

진주처럼 하얀 꽃으로

살아야 한다'고

 

세상이라는 숲에서 내 모습이

잘 보이진 않겠지만

난 연두색으로 피고 질 거야

수많은 나무 잎사귀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그렇게


*


루시드폴의 노래는 어떤 곡을 틀어도 모난 구석이 없다. 처음에는 밋밋하고 어딘가 2% 부족해 보이는 그들의 노래가 왜 이만큼이나 사랑받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분명 강렬한 중독성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루시드폴의 노래에는 어쩐지 계속 찾아 듣게 되는 마력(?)이 있다. 그중에서는 <연두>는 필자가 특히나 사랑하는 곡이다. ‘루비처럼 빨간, 진주처럼 하얀 꽃’처럼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을 고치며 선택받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화자는 ‘세상이라는 숲에서 내 모습이 잘 보이진 않겠지만 난 연두색으로 피고 질 거야.’라고 당당하고 또 당연하게 말한다. 맞는 말이다. 연두색이든 빨간색이든 노란색이든, 내가 세상에 칠하고 싶은 색깔을 고르면 된다. 이 세상에서 다른 색깔은 많지만, 결코 틀린 색깔은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의 색을 정해주고 강조하는 세상에 우리는 당연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난 연두색으로 피고 질 거야.’





[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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