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불빛’을 잃지 않기를; 영화 <23 아이덴티티> [영화]

영화 <23 아이덴티티> 리뷰
글 입력 2019.02.2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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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번쯤 꼭 보고 싶은데, 차마 혼자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미뤄왔던 영화 한 편이 있었다. 바로 한 사람이 23개의 인격을 가졌다는 독특한 소재의 <23 아이덴티티>.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도, 그렇다고 <곡성> 같은 오컬트 영화도 아니다. 그런데도 혼자 보기는 무서워서 친구와 함께 봤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귀신, 유령보다는 ‘사람’이 무서운 영화를 가장 무서워한다는 것을(그래서 어릴 적 본 가장 무서운 영화는 <그놈 목소리>였다.).

 

한 마디로 요악하자면, 걱정했던 것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깜짝깜짝 놀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을 내뱉는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한 사람은 그저 ‘그 사람’일 뿐인데, 한 사람이 한두 개도 아닌 수십 개의 인격을 가지는 게 정말 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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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지닌 인격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정확히는 직접 본 적이 없으니 가능한 것 같다고 말해야 할 테지만, 어쨌든 실존 인물이 존재하니 가능하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23 아이덴티티>에서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한 ‘케빈 웬들 크럼’은 실제로 24개의 인격을 가졌던 ‘빌리 밀리건’을 본 따 만들어졌다고 한다. 각각의 인격은 영화처럼 모두 이름이 있었고, 국적, 나이, 사용하는 언어 등도 모두 달랐으며 그중 마지막 24번째 인격은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인격을 총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그저 ‘인격 장애’라는 병명 아래 규정한 채 구속하는 것만이 과연 정답일까? 만약 그들 스스로 각 인격의 재능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정말 ‘초능력자’가 탄생할 수도 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현실의 ‘빌리 밀리건’과 영화 속 ‘케빈 웬들 크럼’은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 같다. 빌리는 인격 장애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래도 강도, 강간 등을 저지른 범죄자였으며, 케빈 또한 ‘패거리’라 불리는 데니스, 패트리샤 등의 인격이 나올 때는 ‘비스트’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소녀들을 납치한 납치범이었으니까 말이다.



 

‘불빛’을 잃은 본체


 

다른 사례는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반인들에게 두려움을 준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플레처 박사처럼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노력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국 깨어난 24번째 인격 ‘비스트’는 압도적인 힘과 속도로 자신을 위했던 단 한 사람인 플레처 박사와 두 소녀를 순식간에 죽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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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거리’가 비스트를 깨운 이유는 간단하다. 본체인 케빈을 위해서이다. 케빈이 더 이상 나약하지 않은,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 다만 그들이 간과한 점이 있다면, 이 모든 건 케빈이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다른 인격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지 깨달은 케빈은 케이시에게 총의 위치를 알려주며 ‘날 죽이라’고 한다. 이미 ‘불빛’을 잃은 본체는 힘이 없었다.


 

끝나지 않는 고통


 

유일한 생존자 케이시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비스트가 그녀를 놓아준 이유는(‘네 심장은 순결하구나.’) 그녀의 몸에 남아 있는 학대의 흔적 때문이었다. 케빈이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인격이 분리되었고, 결국 비스트까지 깨어났듯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상처’였고, 동기는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인간은 고통을 받아야만 진화하는 걸까. 의문스럽지만 씁쓸한 물음이다.

 

케이시는 살아남았지만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네 삼촌이 오셨어.’). 훗날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까지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아니, 상황에 따라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가 될지도 모른다. 생존자라는 이유로 끝나지 않는 고통은 어쩌면 이전보다 더욱 극심하게 괴롭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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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제는 <Split>으로, <언브레이커블>, <23 아이덴티티(Split)>에 이어 올해 개봉한 <글래스>까지 총 3부작 시리즈물이다. 호불호는 많이 갈리는 편이지만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과(맥어보이에게 24명분 출연료를 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로 유명하다) 인격 장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한 번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인격을 가졌든 ‘불빛’, 즉 나의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은 모두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 마음을 품으면서.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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