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영화 보러 갈래?] #2. 매일 매일 좋은 날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Every Day a Good Day
글 입력 2019.02.22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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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영화 보러 갈래?
내일 당신의 영화 선택지가 더 다양해지길 바랍니다.




#2. 매일 매일 좋은 날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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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외에 마주친 적도 없는데 한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린 적 있다. 다음 날엔 그가 나온 영화를 틀어놓고 나만의 애도를 했다. 아직 보지 못한 출연작들을 아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언젠가 그가 나온 마지막 신작이 스크린에 오르면,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리라 스스로 약속했었다. 벌써 그 날이 왔다. ‘배우 키키 키린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 <일일시호일>을 보고 왔다.


시놉시스를 통해 영화 <일일시호일>이 다도를 다룬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 다도라. 여러 번 들어본 적 있지만 관련된 지식이 거의 전무한 분야였다. 다도라는 소재가 내게 어떻게 닿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무의미한 의심은 거둬버리고, 다만 쿠로키 하루와 키키 키린이라는 배우를 믿기로 했다. 믿음이란 지금까지 그들의 연기를 봐온 나만의 무기였다. 두 배우에게 좋은 에너지와 깊은 메시지를 얻어갈 수 있으리라, 극장을 들어서며 그런 기대를 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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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드라마틱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담담했고, 새삼 단순했으며, 많은 반복과 많은 생략을 일삼았다. 그러면서도 돌려 말하거나 간접적으로 굴진 않았다. 때때로 그러한 전개 방식과 표현이 관객의 현재와 맞아떨어져 마음 깊은 위로를 안겨주기도 했다. 이런 영화는 이런 영화대로 우리에게 더 스며들게 하는 메시지가 있는 모양이다.

 

영화는 노리코의 삶을 따라간다. 주인공 노리코는 '서 있을 곳 없는 사람‘같다. 갈 곳 없고, 애매하고, 때론 무너지는 사람. 노리코의 삶이 극단적으로 불행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해보였다. 우리는 살면서 언제고 절망을 맛보니까. 노리코는 그런 '평범함'을 지닌 인물이었다. 유별난 구석이 있다면 20살 무렵, 다도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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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도라는 것이 그의 삶을 극단적으로 바꾸진 않는다. 다도는 삶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무언가가 아니니까. 다만, 다도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숨이 벅차오를 때, 마음이 답답할 때, 후회될 때, 이따금 쓰러질 때. 노리코가 차 한 잔 마시며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도를 하며, 차 한 잔의 가벼움은 무겁게, 인생의 무거움은 가볍게 할 수 있도록. 다도의 마법이 이루어지는 첫 단계였다.


다도는 매우 형식적이고 반복된 무언가다. 다다미 한 칸에 여섯 발걸음, 방에 발을 딛을 때는 왼발부터, 솔은 히라가나 'ゆ'의 모양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형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다도다. 형식 안에 마음을 담고, 순간의 차이를 찾다보면, 다도는 반복된 작업 속에서 무언의 위로와 뼛속 깊은 삶의 방식을 내어준다. 노리코가 방문할 그 자리를 지키며, 조금씩 변화를 안겨준다. 그 변화는 한 번, 두 번 시도해보고 찾아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래 두고 봐야 한다.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바로는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한 번 지나가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바로 알 수 없는 것은 몇 번을 오간 뒤에야 서서히 이해하게 되고,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간다. 그리고 하나씩 이해할 때마다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차’라는 건 그런 존재다.


- <일일시호일> 中 노리코



보면 볼수록 다르고, 끝에서 시작을 보는 것.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신비. 다도의 마법이다. 영화는 이 다도의 마법을 노리코의 삶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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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코의 모습에서 난 수많은 내 모습을 찾아냈다. 대학에 올라와 나는 많은 것을 찾고 싶었고 또 얻고 싶었다. 그러나 가끔은 어느 곳에도 똑바로 서 있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노리코의 상황이 나랑 비슷해 자주 울다 웃었다. 내게도 노리코의 다도와 같은 무언가가 필요했고, 여전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너무 조급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가끔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이 영화가 내게 준 또 다른 위로다. 언젠가, 변화를 이끌어줄만한 나만의 반복을 만날 수 있겠지.


영화마다 어울리는 계절이 있다고 생각한다. 꺼내보기 좋은 계절이란 게 존재한다. 그런데 <일일시호일>은 어느 때 꺼내보아도 좋을 영화다.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그리고 지금이면 지금대로. 우리는 살면서 언제고 차분한 위로를 필요로 하니까. 찰랑거리고 곧 넘칠 것 같은 마음을 조금 경건히 하기에 좋을 것이다.



포스터 및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일일시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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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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