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만들어진 작가 지망생을 마주하기까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도서]

나는야 만들어진 작가 지망생
글 입력 2019.02.1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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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만들어진 작가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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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좋아서, 글 쓰는 게 좋아서 국문과에 갔다. 같은 꿈을 꾸는 동기들과 친해졌다. 그들의 글을 읽어보니 나와는 달랐다. 텍스트에서 반짝이 가루가 묻어 나오는 듯했다. 기묘하게도 어줍잖은 열등감이라거나 경쟁의식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돼서 그들의 열정을 옆에서 곰곰이 지켜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과연 여기, 원해서 왔나. 평생 글 쓰면서 만족할 수 있을까? 이전까지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생각은 연어처럼 거슬러 초등학교 때까지 올라갔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아니 어떤 학교든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 개개의 능력 전부를 꿰뚫고 있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당장 글쓰기 대회를 보내야 하는데, 누굴 보내냐. 그나마 가시적인 증거는 성적이었고, 말마따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대회에 나갔다. 지루한 수업을 듣지 않고, 대회에 나간다는 일종의 우월감을 품고서.

어려서부터 책을 좀 읽어서, 상을 몇 개 탔다. 계속해서 대회에 나갔다. 당장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상을 몇 개 받았다고 재능 있는 줄 알았다. 주변 사람들도 그러히 여겼다. 문제는 어른들과 선생님이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재능 있다고, 그 작가하면 되지 않겠냐고, 나는 소중히 주워 담아 차곡차곡 쌓았다. 그게 첫 인연이었다. 만들어진 작가 지망생, 실력도 끈기도 없지만 자존심만 있었던 작가 지망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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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다 보니 어른들,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도 더 이상 쉽게 말하지 않게 되더라. 내가 성장해서 그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을 거라 생각한 건지. 이전과 다르게 작가가 되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 않았다. 반대로 우려의 말을 꺼냈다. 작가로 성공하기 되게 어렵다던데, 굶으면서 살아야 한다는데. 혼란스러웠다. 어느 분야든 성공하는 건 어렵고, 어떻게든 빌어먹고 살겠지. 왜 이제서야 평범을 강요하는 지도 몰랐다. 나름 소중히 만들었던 만들어진 작가 지망생은 견고할 줄 알았다. 여럿 생긴 틈으로 이런저런 말이 비집고 들어왔다.

당연히 자신감은 사라질 수밖에. 그런 말들과 시골 특유의 잔잔한 패배의식, 질풍노도 시기, 고입 따위를 겪으면서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나'란 정체성에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작가라는 꿈은 조금씩 깎이면서 나도 갉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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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꾸역꾸역 버텨냈다. 자존심으로 기워기워 붙이면서, 남는 건 반쯤 너덜거리는 작가 지망생. 아직까진 소중하게 주머니 속에 소설가를 품고 있었다. 사실 정확한 건, 어떻게 방향을 트는지 몰라서, 그대로 쥐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시야가 트였다.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고 들어온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반짝거리는 두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기가, 쪽팔렸다. 미안했다. 내 반쪽짜리 꿈이 뭔가 대학 통행증이 돼버린 것 같았다.


당장 필력이 못 미치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은 특유의 필체가 있고 그렇게 따지만 온 세상의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당장 눈앞의 사람들과 경쟁하고 속상해할까? 다른 문제였다. 열정이 없었다.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 잘 썼다기보단 무언가 반짝 가루 같은 게 묻어 나왔다. 더 이상한 건, 막 질척거리는 감정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감상만 했다. 그때 생각했지. 아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구나.

깨닫고 나니까 후련하거나, 막 영감이 솟아오르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우울했다. 아니 조금 많이. 안 그래도 다른 문제도 넘쳐났었는데ㅡ 압도적으로 큰 문제에 갑자기 직면한 것이다. 나를 지지하고 있던 꿈이 풀썩 무너지고 같이 무너졌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나? 막 힘은 이미 이곳저곳 다 써버렸고, 다시 쌓아올릴 수 없을 것 같아.' 이런저런 생각 다 들면서 나를 좀먹었다. 그래서 휩쓸리는 대로 학교를 막 다녔다.

기실 내가 불안정하고 뭔가 두려워했던 게 당연했다. 그런 것들을 몰랐다기보단 그냥 외면했던 것 같다. 와중에 발가벗겨지니 당장 수치스러웠을 테고. 그만한 열정도 없으면서 소설가가 된다고 대책 없이 외친 것도 지금 보면 너무 순수하고 미련했다. 생각해보면 대학 잘 가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나 보다. 생기부와 자소서에 죄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징징거린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내 예술적 허영심을 만족할 분야가 단지 문학이었을 뿐이다. 호호 사실 글뿐만 아니라 어느 형태로든 예술적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나갔던 그림 대회에서 걸출한 상을 탔으면 미대를 갔을 것이다. 단지 가시적인 수상 경력으로, 이 길이 내 길이다 어렴풋이 생각하게 됐을 뿐이지만.

방황의 결과, 내가 예술적 허영심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글 쓰는 것, 글쓰기를 친구처럼 여기게 됐다. 단지 문학으로 국한해서 생각하지 않게 됐다. 글쓰기를 숭배했던 나머지 건들기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편하게 글 쓰게 됐달까? 가끔은 사이가 멀어져 글쓰기 싫을 때도 있지만, 곧 돌아올 게 아니까. 글쓰기를 통해서 예술적 허영심을 충족하게 됐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딱 내 경험과 지나온 길들을 집약한 글귀였다. 당연히 눈에 들어올 수밖에.



되새김질하면서 읽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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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작가 위화가 매 강연마다 했던 얘기들을 묶은 책이다. 신기한 건, 강연 이야기를 묶었던 얘기를 서두에서 밝히면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대단히 뛰어난 작가다. 별거 없는 강연 구성에서도 서사를 만들어낸다. 진정한 스토리텔러가 아니냐, 첫인상이 대단했다.

결국 위화는 작가다. 책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출판 과정, 출판사, 사람들 얘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설 창작 과정을 얘기한다. 총체적인 경험을 나열했다. 읽는 사람으로부터 글 쓰고 싶어 하게 만든다. 강연 모음집, 낯설었던 구성과 다르게 점점 스며드는 책이다. 아끼고 아껴서 다음에도 읽고 계속 읽고 싶다. 회독이 거듭날 때마다, 내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느끼고 싶다.

읽으면서 감탄한 건, 성공한 작가 특유의 거만 따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어휘로 적당히 멋들어진 강의를 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경험을 풀어낸다. 당연히 그 생생하게 빠질 수밖에.

경험에 대한 시각조차 남다르다. 경험담을 들어보면, 한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그렇게 대단한 작가임에도, 많은 경험에도 계속해서 성장한다. 젊은이의 순수를 아직 지키며 배워나가는 자세를 지니고 있달까? 사람은 쉰 이후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굉장히 힘들다는데, 이 위인이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다.

특히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루신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고, 다른 건 마무리 짓지 못한 장편소설에 대한 에피소드다.




위화가 루신에 대해서


나라마다 위대한 작가가 있고, 중국에는 루신이 있다. 문화혁명 시대, 초중고 문학 교과서에서는 죄다 루신의 소설이었다. 위화는 그래서 읽기 싫었다더라. 불가피하게 교과서라서 읽기야 읽었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문득 다시 보니까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었다고.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고. 흥미로운 건, 초청받으면서 만난 다른 작가들도 처음엔 자국의 작가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루쉰은 아이들의 작가가 아니라 어른 독자를 위한 작가였습니다. 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에게 억지로 루쉰을 읽게 하는 것은 사실 루쉰에 대한 존중이 아닙니다. 제가 진정으로 루쉰을 발견한 것은 이미 서른여섯 살이 되어 《허삼관 매혈기》를 출간한 뒤였습니다. 그 무렵엔 글쓰기의 기교와 스타일 면에서 루쉰은 이미 제게 영향을 미칠 수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저를 고무시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2005년에 저는 노르웨이에 갔었습니다. 오슬로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면서 저는 저와 루쉰의 관계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오슬로대학교에서 중국 역사를 연구하는 마크만 교수는 제 강연을 다 듣고 나서는 제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루쉰을 싫어했던 것이 자신이 입센을 싫어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뉴욕에서 저는 한 인도 작가와 함께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저와 루쉰의 관계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이 인도 작가도 제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제가 어렸을 때 루쉰을 싫어했던 것이 자신이 타고르를 싫어했던 것과 너무나 똑같다고 말하더군요.


- P 34-35



생생한 이야기다. 이런 경험 하나쯤은 다 해봤을 것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같은 것을 봐도 생각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와닿게 말해줬다. 부러 마음가짐의 중요성이라고 의의를 만들 수 있지만, 경험을 오롯이 말하면서 그냥 실감 나는 이야기로 그쳤다. 마음에 든다. 오히려 더 나가지 않아서, 고루한 교훈쯤으로 비칠 수 있던 이야기를 잘 마무리했다. 편하게 느껴지는 건, 어린 시절 우리가 부렸던 투정의 모습이 조금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무리 못한 장편소설들


 

위화는 마무리 짓지 못한 장편소설들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을 들어 자신의 경험을 비유했다. 집필하고 있는 원고하다가 피치 못할 사정에 따라 그 소설의 온전한 분위기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다른 소설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남의 떡은, 기존의 소설이 아니라 새롭게 들어가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게 반복돼서 쓰지 못한 장편소설이 몇 편이 넘는다고.


방마다 네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비교적 큰 방에는 침대가 여섯 개 놓여 있었지요. 여름이라 여관의 방은 기본적으로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방 한 칸을 기준으로 요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침대 하나를 기준으로 요금을 받았습니다. 막 시골에 내려갔을 때 저는 침대 하나를  사용했고 나머지 침대들은 다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침대에 벼룩이 있어 물리면 몹시 가려웠지요. 저는 다른 침대로 옮겨 잠을 자다가 또 벼룩에게 물리면 또 다른 침대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하룻밤에 서너 개의 침대를 옮겨 다니면서 모든 벼룩을 배불리 먹여주었지요.


마침내 저는 제가 얼마나 멍청한지 의식했습니다. 침대를 바꾸지 않고 한 침대에서 잤다면 한 침대의 벼룩들만 배불리 먹었을 것이고, 다른 침대의 벼룩은 먹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저는 그때 벼룩에 대처하던 방식으로 완성하지 못한 저의 장편소설들을 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구상에 유혹되지 않을 것이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현상도 더는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한 침대에 누워 한 침대의 벼룩들만 먹이는 방식으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의 장편소설들에게 인공호흡을 해서 하나하나 다 살려낼 생각입니다. 하룻밤에 네 개의 침대를 돌면서 벼룩의 배를 불려서는 안 되는 것처럼 네 편의 장편 소설에 한꺼번에 인공호흡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 P 120~121



네 침대와 벼룩 하나의 이야기, 되게 소탈하고 생생한 경험을 들어 장편소설에 대해 얘기해줬다.




감옥이 감옥인지도 모르고



위화는 여행 갔다 온 친구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전해줬다. 귀여운 감정이 느껴진다. 이렇게 읽는 것만으로도 위화의, 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잘 느껴진다. 듣는 것만으로도 글 쓰고 싶어 두근두근거렸다. 글쓰기와 감옥이라는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은 두 단어를 하나로 묶은 것에서, 아니 글쓰기를 감옥으로 일컬은 것에서부터 위로받았다. 지나온 날들에서 내게 글쓰기는 감옥이었다.


진정으로 즐거워서 할 수 없었던 것, 이제 겨우 글쓰기를 편하게 여기게 됐다. 글에 대한 부담감, 모두나 지니고 있는 것이고 나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니까. 읽으면서도 감탄했다. 글을 계속 곁에 두면서 노력하고 계속 증진하는 사람이다.


내가 비로소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건, 이미 글쓰기를 감옥이라 여길 정도로 극복했다는 것이다. 다 알고 나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글쓰기가 감옥 같다고 생각했다. 과거, 감옥 안에서는 안에서는 감옥인지도 몰랐을 테다. 오히려 감옥을 만들어서 나오고 나서야 수월하게, 글을 편하게 여길 수 있었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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