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화의 이야기에서 발견한 것 [도서]

위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글 입력 2019.02.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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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의로 들어야 할 때를 제외하고 자발적으로 강연을 들었던 때를 떠올려봤다. 먼저 평소에 관심 있던 무언가를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을 때, 그리고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연사를 맡을 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전자였다. 중국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 운 좋게도 위화의 산문집을 추천받게 됐다. 중국에 대해 공부하는 것보다 그의 산문집 한 편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고 하더라. 그의 산문집을 읽다 보니 작가 위화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강연은 연사가 특정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있으니 아무래도 이 책에서는 위화의 가치관이 더 두드러지게 보일 거라 생각했다.


강연을 재미있게 들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주제에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연사가 재미있게 강연을 끌어가거나 하는 경우에 나는 강연을 재미있게 듣는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 수록된 위화의 강연 원고들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그 이유는 아마 연사가 재미있게 말을 술술 하는 분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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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서 만난 위화가 딱 이랬다. 개구쟁이이면서도 노인! 그리하여 이렇게 개구쟁이 같기도 하고 또 노인 같기도 한 작가 위화에게서 내가 전달받은 이야기들은 무엇인가?




1.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는가



종종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다 보면 ‘이 글을 누구 보라고 쓰는 건가?’ 하는 때가 있다.



1) 글을 보여줄 누군가가 있다고 미리 정한 상황에서, 특히나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쓸 것인지 고민하는 경우


2) 쓰다가 남을 의식해서 하고 싶은 말은 하지도 못하고 계속 겉돌거나, 아예 내 것이 아닌 글을 써버리는 경우



첫 번째 상황은 나의 마음을 다잡는 데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집중하게 해주고, 글이 산만해지는 걸 막아준다. 하지만 두 번째 상황은 쓰는 나에게도, 읽는 남에게도, 다시 언젠가 다 읽게 될 나에게도 좋지 않다. 나에게는 이런 상황이 꽤 자주 발생하는 것 같다. 이 경우엔 ‘나의 이야기’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솔직함이 부족해지고 나답지 않은 글을 쓰게 된다.


솔직함이 없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나 할 수 있는 말도 하지 않는 거다. ‘이래도 되나?’ 혼자 검열을 하고 괜히 숨기려고 든다. 겁쟁이처럼 빙 돌아간다.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딱 떠올린 문장 그것 하나 글에 넣고야 말겠다며 글 전체를 망가뜨린다. 쓰면서도 알고 다시 보면서도 더 확실하게 안다. 맞지 않은 톤으로 억지로 목소리를 낸 것 같은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 글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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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읽힐 글을 쓰면 책임감을 가지게 되고, 더 잘 쓰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 동기부여가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읽힐 글을 쓸 때 그 누군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딱히 정해져있지 않은 누군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면 최대한 무난하게 안전하게만 글을 쓰려고 한다. 아니면 억지로 꾸며내서 내 능력 이상으로 멋지게 쓰려고 바둥거린다던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려다 보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이 밍밍한 글이 나오거나 과한 글이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네 맛’을 내려는 시도보다는 ‘내 맛’을 찾아내고자 정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내 글을 나라도 다시 읽고 싶어지는 글, 내가 다시 찾을 만큼 좋아하는 ‘내 맛의 글’이어야 할 것이다. 싱싱한 최근의 생각들을 잘 조리해서 생생한 ‘내 맛’의 글을 남겨두고 싶다.




2. 이야기를 위한 경험, 경험을 위한 이야기



나중에 내 기억 속에 이 책과 함께 떠올랐으면 하는 키워드는 바로 ‘경험’이다. 오래오래 생생한 글을 쓰고 남기고 싶다면, 무엇보다 말과 행동과 생각이 함께하는 경험이 중요하겠구나 생각했다.


나에게는 만날 때마다 아주 자기 이야기로 혼을 쏙 빼놓는 지인이 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다. 언젠가 그 지인이 타지 생활을 하며 이래저래 고생했던 이야기를 탈탈 털어놓은 적이 있다. 오랜에 만나 터놓는 근황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다. 참 힘들었겠다고 내가 말하자, 지인은 쿨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그 고생을 하고 나니까 그때 일을 글로도 쓰고, 너랑 만나서 횟감처럼 쓸 수 있게 됐잖아. 그럼 됐지 뭐.”


이 책 전체를 통틀어 내가 알게 된 것은 ‘경험의 힘’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위화가 엄청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재미있게 말을 술술 해나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의 이야기가 재밌다고 생각했을까? 위화는 수많은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담백함을 베이스로 그러나 작게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의 산뜻한 센스를 얹어 그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물론 그 경험에는 재미있는 것만 있는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의 산뜻한 센스는 책의 어디에서나 묻어 나왔다. 물론 글쓴이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입말을 살린 번역도 한몫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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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가 말하는 경험은 직접과 간접 경험을 모두 포함한다. 그것이 직접 내가 몸으로 부딪혀 얻은 것이든,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이든, 멀찍이 떨어져서 본 것이든, 픽션이나 논픽션을 통한 것이든.


경험은 기억으로 남고, 기억은 또다시 경험을 거치며 수정 작업을 반복한다. 마치 그의 말마따나 문학이 ‘영원히 완성을 기다리는 것’처럼. 차곡차곡 나를 채우는 경험들은 그들끼리 상호작용을 하면서 점점 더 풍성한 내면을 만든다. 위화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풍부한 경험들은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도록 했다. 책에 수록된 강연 원고들이 똑같지 않고 조금씩 다르게 또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3. 그 외의 짧은 단상들



─ 어떤 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무엇보다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을 많이 보자. 선입견도 꾸밈도 없이, 마음을 비운 독서.


─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글을 쓰기 전에 훌륭한 독자가 되자. 비난을 위한 비판보다, 비판적으로 보더라도 작가의 장점을 찾아 나만의 것으로 녹여내자.


─ '우리'와 '그들'의 관계는 대립하기도 상호보완하기도 하고, 오히려 서로 뒤바뀔 수도 있다.


─ 모든 것은 주관적이라는 사실만이 객관적이고 상대적이라는 사실만이 절대적이다. (바로 위의 항목, 그리고 기억의 수정 작업과도 연관되어)


*


앞서 위화에 대한 평가, ‘개구쟁이 혹은 노인’이라고 언급했다. 강연 원고를 엮은 책이라면 오히려 딱딱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심각하게 보다가도 때때로 미소를 머금고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잘 알지도 못했던 작가의 책을. 어쩌면 위화의 말처럼 책과 나는 서로를 마음에 들어했나보다. 이 부분을 떠올리며 따듯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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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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