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움직임의 향연 <보이첵>

글 입력 2019.02.10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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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리히 요한 프란츠 보이첵. 육군 일등병 제 2연대 2대대 4중대 소총수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마리'가 있었다. 보이첵은 군대에서는 상사의 면도를 해주며, 의사의 명령에 따라 매일 완두콩만 먹고, 소변량이나 감정의 상태를 점검 당한다.

 

가난하기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는, 시키는 대로 밖에 할 수 없는, 삶의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나약한 인간 보이첵.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신착란증세를 보인다. 어느 날, 한 가설무대에서 악대장은 보이첵과 함께 온 '마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의사들과 중대장은 나약하기만 한 보이첵을 향해 인간으로서 가치 없음을 놀리기만 한다.돈 때문에 악대장과 놀아날 수밖에 없는 '마리'. 결국 보이첵은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 '마리'를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택하게 된다.

 

 

      

의자의 의미_‘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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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포스터의 첫 인상은 ‘기괴하다’였다. 과장되게 웃고 있는 표정과 몸짓,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의자. 도대체 이 공연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기괴함이 나를 이 공연으로 이끌었다.

 

공연을 보기 전 가장 궁금했던 점은 바로 의자의 의미였다. 비워졌다 채워졌다 사람들끼리 주고받았다 돌려졌다 하면서 무대를 채우는 이 의자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했다. 그리고 공연을 보며 이 의자가 의미하는 것은 ‘권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첫 장면부터 보이첵은 이 낡은 의자를 배치하고 정리한다. 그는 사람들의 명령에 따라 이리 저리 정신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의 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을 위해 의자를 정리하고 배치할 뿐이다. 그가 의자와 함께하는 시간은 의자를 정리하거나, 실험대 위의 동물처럼 의자 위에 누워있거나, 또는 생체실험을 당하는 동물처럼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만 함께였다. 보이첵의 여인 마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그녀만의 의자를 소유하고 있지 않는다. 그녀가 의자와 함께하는 시간은 오직 권력을 가진 장교와 시간을 보낼 때 뿐이었다.

 

이렇듯 공연은 의자를 통하여 권력의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보이첵과 마리와 같은 하위계층 모습을 그려냈다. 또한 권력을 나타내는 이 의자는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과 의자로만 구성되는 연극에서 의자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다. 앉기 위해 사용하는 의자가 저렇게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많은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자를 통한 공간의 분할과 통합이 이어지며 이에 배우들의 몸짓이 합쳐져 매 장면마다 새로움과 절제됨, 풍성함을 모두 보여주었다.

 

이런 의자의 이용을 통한 공연의 연출은 아주 신선하고도 흥미로웠다. 배우들의 몸짓을 보며 이 무대를 이뤄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을까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무대는 11개의 의자와 11명의 신체가 만들어지는 움직임의 향연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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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이첵은 오로지 마리에게만 저러한 기분이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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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계속하여 머릿속에 맴돌았던 질문이다. 마리가 창녀로 등장하는 것을 보며 ‘왜 당시 극에는 여자가 창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실화로부터 200년 가까이 지난 현 시점이 아닌 과거의 일이니 당시에는 그랬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었다. 21세기인 지금도 여성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데 200년 전엔 어땠을지 상상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첵의 행동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보이첵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장교의 기분에 의해 인생의 희로애락이 좌우되는 수동적 인간이며 세상이 그의 적인 사람이다. 군대에서 상사의 면도를 해주며, 의사의 명령에 따라 매일 완두콩만 먹고, 소변량이나 감정의 상태를 점검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인간처럼 대하지 않고 “사람을 흉내내는 원숭이!”,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개!”, “지금 소변을 봐”와 같이 모욕적인 언사를 지속적으로 행해온 사람들에게는 복수의 감정이라든지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최대한 납작 엎드려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한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마리가 배신했을 때 그녀를 살해하려는 마음을 먹을 정도로 분노를 내비친다. 배신을 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보이첵의 소유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그는 마리를 그의 연인임과 동시에 자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소유물말이다. 은연중에 마리가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가 그를 배신하고 자신의 장교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여태까지 억눌러 왔던 감정이 터진 것이다.


항상 수동적이고 하위계층으로 살아오면서 그는 사회적인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한 삶 속에서 그가 감정을 표출해내는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러한 장치가 항상 여자와 배신이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으로 인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소유물이자 아래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한 분노였을까.

 

이 작품이 쓰이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기에 원작에 대한 내용을 지금의 관점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자와 남자가 동등하게 등장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남자 주인공의 감정을 표출시키는 장치가 아닌, 분풀이의 상대가 아닌, 여자와 남자, 동등한 위치의 사람과 사람으로 등장하는 작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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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러한 아쉬움들이 남기는 하였으나 그럼에도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이 훌륭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기존의 연극적 틀을 깨는 독특하고 독창적인 작업방식과 해석을 통해 전혀 새로운 무대로 창조한 <보이첵>.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을 마주하는 순간 끝없이 이어지는 11개의 의자와 11명의 신체의 움직임의 향연이 사람들의 70분을 가져갈 것이다.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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