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이첵>

글 입력 2019.02.1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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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이첵이 마리를 죽이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를 단죄하는 심판의 목소리가 성경 구절을 빌려 쩡쩡 울려 퍼진다. 수많은 코러스들은 보이첵에게 그녀를 죽이라고 부추긴다.


보이첵의 삶이 산산히 조각나고, 덩달아 마리의 삶이 파괴되는 현장을 보는 일은 마치 데자뷰를 보는 것만 같았다. 가난하고 힘 없는 남자, 여자의 외도와 그녀를 죽이는 남자. 여자의 죄의식, 남자의 정신분열과 히스테릭. 삶을 포기하고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는 비련한 주인공의 남자. 그리고 그의 캐릭터를 보다 비극적으로 심화시키기 위해 희생되는 대상화된 여자.


마리라는 인물에 주어진 정보는 턱없이 부족한데 그녀는 너무 쉽게 죽었다. 한 편의 극이 그녀를 죽이고 보이첵의 삶의 비극을 외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맥이 풀렸다. 서사의 진부한 조합, 뻔한 캐릭터와 딱히 공감되지 않는 삶의 신파를 피하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뻔하디 뻔한 텍스트를 봐서인지 다소 생소하게까지 느껴졌다. 마음속에서 ‘또??’라는 외마디 비명이 울려퍼졌다.


<보이첵>은 1821년, 전직 군인이자 이발사인 J.C 보이첵이 동거하던 연인을 칼로 찔러 살해한 후 공개처형 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9세기 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 어떤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에서 훌륭한 연출(형식)과 난잡하고 비루한 이야기(내용), 두 가지 요소가 서로 조화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시간이 흐르고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더 이상 소비되는 여성 서사를 용납하고 싶지 않았고, 사실 누군가의 처절한 삶의 비극이랄 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된 탓도 있었다. 누군가 <보이첵>을 보고싶다고 한다면,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추천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워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보이첵>에 대해 그 내용의 진부함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의 처사일 것이다. <보이첵>은 뷔히너의 표현주의적 희곡으로, 이번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독창적 작업방식과 해석을 통해 완전히 감각적인 무대로 구현된다. 11명의 배우와 의자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식은 기존의 연극적 틀을 깨는 데 성공했으며, 조명과 음악이 더해져 극적이고 섬세한 연출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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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탁월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아, 탁월하다’라고 되뇌었다. 의자는 배우의 한 요소처럼 작동했다. 배우들은 의자를 높이 던져 주고받거나 그 위에 올라섰다. 대열을 맞추고 서 의자의 모퉁이를 잡고 능숙하고 노련하게 의자를 빙글빙글 돌렸다. 의자는 연극의 모든 무대 장치이자 소품이었다. 의자는 높은 탑이 되기도 하고 술잔이 되기도 했다가 침대가 되기도 하며 갖은 역할을 걸출하게 수행해냈다.


의자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의자의 가장 기본형을 충실히 따른 모양새였다. 각진 모서리와 단단한 이음새. 곧은 등받이와 네 개의 다리. 그러나 더 이상 그것을 단지 의자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아는 본래의 용도를 비껴가도 한참을 비껴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연극을 다 보고 나서는 길에 '의자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배우들의 몸은 민첩하고 노련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움직임과 소리를 따라가기 위해 집중해야만 했다. 소리들이 터져 나왔고 유연하게 이어졌다. 바람에 풀이 눕고 일어서듯 배우들 모두 같은 결로 걷고 뛰었다. 11명의 배우들이 하나의 호흡을 주고받았다. 몸의 움직임을 보는 일은 매우 주의를 요하는 일이었다. 작은 소음도 내선 안 될 거 같았다. 나는 한 번도 그들과 같이 내 몸을 움직여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단련된 몸은 그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유용하고 매끄럽게 움직였다. 새삼스럽게도 그런 사실을 보고 듣는 것이 아주 탄탄한 비밀을 알게 된 것만 같았다. 연극을 보기 전, 몸의 움직임을 보고 싶다던 작은 소망은 기대 이상의 큰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충족됐다.


'표현주의'가 무엇인지 설명한 능력은 없지만, 나에게 '표현주의'는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나란히 떠오른다. <보이첵>의 연출 중 특히 빛의 역할은 표현주의 영화인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닮아 있다. 조명은 극적이다. 선명한 흑과 백의 대비와 조명을 통해 연출된 공간의 구조화는 극이 펼쳐지는 공간을 비현실적인 공간, 즉 실재하는 어떤 객관의 공간이 아닌 현상학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빛을 통해 공간은 활기가 넘치는 공간과 에로틱한 공간, 그리고 음산하고 섬뜩한 공간을 넘나든다. <보이첵>의 연출은 관객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3.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보이첵이 마리를 죽이는 것으로 끝이 난다. 70분의 시간은 순식간에 흐른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 나는 이걸 보고 무엇을 떠올려야 하는가 하는 괜한 생각들이 일어설 때마다 강렬한 것과 어떤 탁월함이 펼쳐졌고, 괜한 생각들은 집어넣고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극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더욱 벼른 감각을 가지고 포착하고 싶은 마음으로, 어떤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는 자세로, 70분은 금방 흘렀다. 아쉬운 점이 분명했지만 놀랍고 대단한 것들 또한 가득했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해낼 수 있는 또 다른 탁월함이 궁금해지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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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첵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


일자 : 2019.01.30 ~ 02.10

시간
평일 오후 8시
토, 일, 휴일 오후 5시

*
02.04 / 02.05 쉼

장소 : CKL스테이지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사다리움직임연구소

후원
한국콘텐츠진흥원

관람연령
만 12세 이상

공연시간
70분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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