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리다 칼로 <짧은 머리의 자화상>를 보며

나를 향한 분노를 느끼다
글 입력 2019.02.08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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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짧은 머리의 자화상>과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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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장길에 뉴욕 모마 미술관에 들렀다. 두 번째다. 5년 전 처음 모마에 방문했을 당시 봤던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그녀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그림 속 그녀는 뭔가 화가 많이 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찐한 눈썹이 인상적인 그녀는 아빠 옷이라도 입은 양 어울리지 않는 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째려보는 듯 옆으로 흘기는 눈빛은 차갑게만 느껴졌다.


무엇이 이 여자를 이토록 화가 나게 만들었을까? 단호하고 굳은 표정을 한 채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고 주위에는 긴 머리카락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손에 든 가위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마구 자른 듯하다.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고 남자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갑자기 박지윤의 '난 남자야'란 옛날 가요가 스치듯 떠올랐다.


이 그림을 보며 ‘남자한테 차이고 나서의 배신감, 증오감을 표현한 거 같다.’ 여기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답답한 마음에 오래 보지 못하고 다른 그림을 보러 갔었지만 꽤나 오래 이 그림이 마음에 남았었다.



 

프리다 칼로 그녀의 삶에 대해


 

이번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프리다 칼로에 대한 책을 여러 번 접하고 난 후였다. 책을 보며 놀라웠던 건 내가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의 예감이 맞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 그림을 보면서 떠올렸던 한 때 가수 박지윤씨가 까만 양복과 중절모를 쓰고 불렀던 '난 남자야'란 노래가 이 그림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게 맞았다. 아니 반대로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로 가사를 쓴 건가 싶었다. 가사를 보자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고 앞으로 또 다시 남자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남자처럼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난 남자야 이제 난 남자야 아무런 기대도 바람도 없이 즐길 거야. 너희처럼 그럴꺼야 나 혼자 상처받는 일 더 이상은 없을 거야. 난 남자야 쓰레기 같은 남자야 내가 하는 말 모두 그때뿐야 잊는 거야. 기억은 없는거야 서로 즐거우면 된거야 쓸데없는 약속이나 감정 따윈 없는 거야.


- 박지윤 난 남자야 가사 中



얼마나 분노감 넘치는 가사인가. 프리다 칼로 역시 남편 디에고의 바람으로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녀의 삶은 이 가사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18살에 교통사고로 온 몸이 망가졌다. 9개월을 전신 깁스를 해야 했고 평생에 걸쳐 30번이 넘는 수술을 하며 여러 번의 죽음을 넘기고 살아냈다. 죽음의 문턱에서 선택한 그림으로 그녀는 디에고 리베라라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지만 하필이면 여성 편력이 심한 자신보다 무려 21살이나 많은 이혼남이었다. 결혼 후에도 계속적으로 바람을 피웠고 심지어 믿었던 그녀의 여동생과 불륜을 지르기에 이른다. 아픈 몸으로 아이를 원했던 프라다 칼로는 3번이나 유산을 하고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지게 된다. 그러니깐 이 그림은 프리다 칼로의 지난 삶의 어마어마한 분노가 내재되 있는 그림인 셈이다.



 

나를 향하는 분노


 

“이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건 머리카락 때문이야. 이제 당신은 머리카락이 없으니 난 당신을 더는 사랑하지 않아”

 

다만 이번에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개인적으로 새로 느낀 게 있다면 타인(남편)에 대한 분노감을 넘어서 자신에 대한 분노감까지 강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얼마나 많이 질투하고 화가 났었을까. 얼마나 공허하고 고독했을까. 그러나 나의 분노만으로 상대방을 망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내 자신이 무력해질 뿐이다. 오히려 너무 안타깝게도 타인으로 인해 내 삶이 무너져버린 것을 스스로를 자책하며 머리를 잘라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은 함부로 머리를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 당신이 나를 싫어하도록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마음에 나도 나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 내가 이 그림을 제대로 마주하기 힘들었던 것은 나도 이별을 겪어내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끝내 내려놓기 힘든 건 그와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 그게 좌절되었을 때 마음의 요동은 상당했다. 나를 떠나버린 상대방처럼 나도 나를 버리고 싶은 마음도 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미 떠나버린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내 마음조차 놓을 수 없을 때 나에 대한 분노가 일어났다. 아픈 프리다 칼로에게 디베로는 그녀와 그녀작품세계를 사랑해주고 인정해주는 지지대였기에 그를 놓기도 쉽지 않고 그럴수록 자신에 대한 분노감도 커졌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다시 본 그림 속 프리다 칼로는 이전보다 훨씬 안쓰럽게 느껴졌다.


 

 

프리다 칼로, 그녀가 대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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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대단한 건 건강하지 못한 몸과 마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 분노 그 모든 감정을 마주하고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에 있다고 본다. 내 자신이 너무 싫고 초라해보여서 거울조차 보기 싫은 그런 날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삶을 살아가지만 그녀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피범벅인 자신, 화살을 맞고, 가시에 찔린 그녀 자신을 그리면서 자신의 감정을 하나씩 마주하고 타자화하며 풀어냈다.

 

그녀의 자화상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울 순간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너 자신을 사랑해야해.’라는 긍정의 말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프리다 칼로처럼 부정하고 싶은, 정말 싫은 나를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가장 빠르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그녀는 결국 분노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가치를 드러냈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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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의아했던 건 그 둘이 다시 재혼을 하게 되는 것인데 그 조건이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서로 예술적으로 의지는 하되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인데 이게 칼로의 최선의 방법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이성애자로 다양한 사람들과 사귀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자화상을 더 많이 그려낸다. 심지어 디에고를 자신의 아들로 형상화하고 자신이 마치 마리아인 것처럼 그리기도 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정당화한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인생의 불행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불행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녀의 노력은 어쨌든 대단하다.


[최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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