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해'와 '오해' [영화]

<목소리의 형태>를 보고
글 입력 2019.02.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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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목소리의 형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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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신조차도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아닌 타인을 대할 때라면 오죽할까. 상처의 강도와 감수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조화로울 수 있도록 노력하며,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조절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상처의 강도'와 '감수할 수 있는 정도'가 불균형한 상태에 놓일 때 생긴다. 상처의 강도가 지나치게 심하면, 나 때문에 타인은 괴로워진다. 마찬가지로 감수할 수 있는 정도를 넘으면, 타인 때문에 내가 힘들어진다. 특히나 이러한 불균형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은 트라우마로 심화하여 피해자에게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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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목소리의 형태(2016)』는 학교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시간이 흐른 후 서로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성장 스토리를 담았다. 청력장애를 앓고 있는 여학생 니시야마 쇼코는 필담과 수화라는 독특한 형태로 목소리를 표현한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왕따와 이지메는 그녀와 어울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전염될뿐더러, 쇼코 또한 비장애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게 한다.

이후 폭력의 가해자였던 이시다 쇼야가 오히려 이지메와 왕따를 당하는 피해자 입장으로 바뀌어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모습은 꽤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흥미롭다. 그러면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자기혐오에 빠진 채 삶을 포기하려는 시도 또한 단순히 애니메이션으로 치부하기에는 제법 주제가 무겁다. 영화는 그러한 자칫 폭력의 가해자를 미화한다는 질책을 받을 수도 있는 스토리를 쇼야와 쇼코가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행동과 생각으로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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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해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상황과 감정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그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아무리 타인을 이해하려 해도 우리는 그저 최대한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지레짐작밖에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제대로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쇼쿄는 '이해'는 되려 더욱 '오해'로 변질하여버리는 경우가 잦다.

'이해'는 쇼야와 쇼코가 자신을 마주할 때에도 중요한 맥락으로 이어진다. 쇼야는 자신이 벌인 학교 폭력으로 인한 반응과 두고, 쇼코는 자신의 장애 탓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져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마음을 줄곧 염두에 두면서도, 속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쇼야와 쇼코가 각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은 그리 쉽지는 않다. 오히려 두 사람을 둘러싼 그때 당시 사람들과 지금 어울리고 있는 사람들이 개입하게 되면서 복잡한 전개가 이어진다. 깨진 유리 그릇을 다시 원래 상태로 복원해내는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걸린다. 게다가 조각을 맞추었더라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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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러한 사실에도, 두 사람은 서로 이해하며 자신에게 솔직해지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둘이 함께 나란히 잉어에게 빵을 줄 때마다, 그들은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눈다. 쇼야는 이전과는 달리 공부한 수화로 쇼코의 목소리를 듣는다. 단순히 목으로 소리를 내는 걸 넘어 그들은 수화를 통해 새로운 '목소리의 형태'를 담아낸다. 서로가 서로에게 트라우마일지도 모르는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역설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바뀌어간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쇼야가 친구들과 학교 문화제 축제를 구경하며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이해'라는 측면에서 많은 의미를 담는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X를 달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타인을 대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지 언제나 의문을 품고 있던 소야는 그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한 쇼코를 비롯한 친구들 덕분에 마침내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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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목소리의 형태'라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등장하는 여러 인물은 각자의 다른 목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때, '목소리'가 아니라 그걸 담아내는 '목소리의 형태'에 방점을 둔 건 어쩌면 형태에 따라 '오해'를 할 수도, '이해'를 할 수도 있는 목소리를 그려내고자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현종의 시 「섬」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 아래 실은 '오해'라는 그릇을 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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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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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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