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변영주,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를 읽고 [도서]

다시 뭐라도 해보자고 다짐했다
글 입력 2019.02.0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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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언젠가 jtbc <방구석 1열>에서 하나의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것을 두고 ‘그저 영화와 사랑에 빠진 것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좋아하는 것이라면 음식이든 책이든 영화든 질릴 때까지 곁에 두고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말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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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당연히 책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책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는 천천히, 스며들 듯이, 나도 모르게 빠진 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순간 폭발적인 힘으로 마음에 벌컥 밀려들어온 책이었다. 말하자면 덕통사고(?)를 당한 셈이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담은 두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취향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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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호수를 만들라는 말에 무릎을 탁 쳤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편식을 해왔는가. 일관성 있는 나 혹은 나의 고유한 취향을 찾겠다는 변명 아래 익숙한 동시에 좋아하는 것들만 탐식해왔던 것 아닌가. 좋아하는 건 분명히 좋아하는 게 맞겠지만, 그 선호를 강화시키려 했을 뿐 선호의 바운더리를 넓혀보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종종 주변 친구들이 내 입술 바로 앞까지 떠먹여주고 들이밀어 주었던 좋은 콘텐츠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마다 나는 마법의 단어 ‘그냥’을 남발하며 떼를 썼다. ‘아~ 난 그런 것들 안 좋아해. 그냥 별로 마음에 안 들어. 그냥 싫어. 이유는 그냥! 내가 안 좋아하는 거라서 그냥 안 보고 싶어!’

 

뜬금 맞지만 음식으로 예를 들자면 나에게 ‘똠얌꿍’이 그렇다. 친구와 태국 음식점에 갔을 때 친구가 이 집 똠얌꿍이 맛있다며 주문하자고 했다. 싫다고 먹어본 적 없다고 하는 내 말에 자길 믿어보라며 장담하면서 결국 주문했다. 속으로는 탐탁지 않았다. 태국 음식도 처음이라 낯선데 특히나 더 낯선 이름에 낯선 비주얼을 가진 똠얌꿍은 오죽하랴.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똠얌꿍에서는 특히나 더 상큼하고도 야릇한 향기(?)가 났다. 아니, 왜 탕에 토마토가 라임이 들어가 있는 건지? 친구가 먹는 걸 보고 한 입을 먹어보고서 ‘맛 엄청 특이하다. 내 취향 아니야’ 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자꾸만 똠얌꿍에 손이 갔다. 식사를 마치고 친구가 똠얌꿍에 대한 후기를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잘 모르겠던데! 별로던데! 그냥 별로야!

 

잘만 먹어 놓고서 나는 그렇게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대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새콤하면서도 시원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자꾸만 생각나더라. 똠얌꿍을 처음 추천한 친구와 다시 그 가게에 방문했다. 사실 저 때에는 똠얌꿍 입덕 부정기였던 것 같다. 나는 똠얌꿍이 좋다. 애초에 똠얌꿍을 싫어했던 적도 없다!

 


(20대에 꼭 봤으면 하는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에)

 

감히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의 20대들이 '먹는' 종류가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먹는 책의 종류가 적습니다. 가끔 작가를 꿈꾸는 사람을 보면서 ‘왜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왜 저렇게 소설을 안 읽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대본을 쓰거나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건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데 ‘왜 이야기들을 안 읽지’라고요. 영화를 만들고 싶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거나, 작곡을 하고 싶거나 모두 그 배경이 되는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해서 먹었던 작품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너무 적으면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20대의 가장 큰 장점이 뭔가요? 무분별한 체력이잖아요.(웃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버틸 수 있는 거죠. 그것에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권해드리고 싶은 영화보다는 예술문화를 향유하는 취향을 넓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젊었을 때 자신의 취향이 넓어야 점점 좁아지면서도 계속 즐길 수 있는 것이 남아있게 됩니다. 결론은 무엇을 하든지 ‘발품을 많이 팔아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대한민국 여성감독의 대표주자, 변영주동문(법학·89년 졸)을 만나다 (이화여대 블로그)



역시 내가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다. 친구의 말이든, 리뷰든, 평론가의 글이든 그것들은 참고 역할만 되어줄 뿐이지 내 취향의 바이블이 될 순 없다. 적어도 이것저것 ‘먹어’보면 내 취향이 뭔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명확하게 알아간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것저것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그렇게 경험하다보면 삶이 보다 다채로워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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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기 연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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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자기 연민은 스스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힘이 된다. 자신을 딱하게 여기고 가엾게 여기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할 수 있게 해준다. 그 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들부터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야 나를 괴롭게, 딱하게, 가엾게 만드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균형을 잃는 순간 그건 나를 좀먹고 파괴하는 힘으로 돌아온다. 자기 연민이 거대해지는 순간 그 연민에 매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세상에 불쌍한 나만 남는다. 나 말고 다른 사람에 대한 작은 마음조차 떠올릴 수 없게 된다. 다른 사람의 걱정 어린 말도 사랑 담긴 말도 전혀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다시 세상에 나만 남게 된다. 자기 연민이라는 괴물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상처를 준다.

 


자기 연민이야말로 독약이다. 스스로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걔보다 불행한 사람 서른 명을 5분 안에 데려다 줄 수 있다. 자기가 얼마만큼 불행한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얘하고 나하고는 어떤 불행함 안에 놓여 있는가'를 상상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88만 원 세대'라는 것이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개념으로써는 중요한 말이지만, 이것이 당신의 핑계거리와 자기연민의 도구로써 존재한다면 당신은 우리 세대에게 끝까지 이용당하다 죽을 것이다. 자기 연민을 벗어던지고 세상을 친구들과 손을 잡고 만들어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 중


 

물론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서, 건강한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기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불쌍한 채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를 내가 만든 연민 속에 가만히 고여 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스스로에게 꾸준히 질문하고 행동으로 조금씩 옮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안부터 찾아야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자기 연민은 잠깐의 위로에만 필요할 뿐이다. 그 이상으로 일상을 뒤덮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다시 뭐라도 해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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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것들이 무용한 것처럼 느껴질 때, 내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을 때,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지레 짐작하고 배척하려들 때, 지독한 자기 연민에 빠졌을 때, 내실을 기하기도 바쁜 와중에 홀로 가만히 정체되어 있을 때, 이 책이 활력이자 영감이 되어줄 것 같다. 책의 내용을 빌려오자면 ‘불편한 소파’ 같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너 그래도 되는 거야? 너 요새 조금 이상해졌어.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우리’를 볼 수 있고, ‘우리’를 봐야 사랑에 빠지는 무언가와 만날 수 있다. 그것이 글이건 영화건 무엇이건 모든 창작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마치 풍선처럼 자기 멋대로 움직이며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그 모든 말의 목적은 결국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숨지 못하고 또 내가 먼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얌전히 듣고자 한다.


(책머리에)



누군들 안 그렇겠냐마는 사실 몸이든 마음이든 내게 익숙하고 편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내 의견과 비슷한 것, 해봐서 익숙하거나 잘 할 수 있는 것, 내 신념에 반하지 않는 것 등등이 당연하게도 거부감이 덜하다. 하지만 그 당연함을 깰 때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세상도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질 때, 자신만의 편협한 세상에 갇히지 않을 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아무래도 ‘취향의 호수’ 그리고 ‘자기 연민’에 대한 파트를 인상 깊게 본 터라 나는 이렇게 의견을 내봤다.

 

이 책과 사랑에 빠졌다고 로맨틱하게 선언하긴 했지만, 이 글을 통해서 책 속의 모든 말을 맹목적으로 추앙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왜, 때때로 그런 것들이 있지 않나? 당장 뭐라도 하고 싶게 만드는 것들, 내가 그동안 내지 못한 순간의 용기를 내게 만드는 것들, 계속 나를 다잡게 만드는 것들……. 다 읽은 후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내 생각을 꼭 말하고 싶어서 결국 노트북을 켰다. 무기력하게 고여 있던 나도 지금 이렇게 뭐라도 쓰고 있다. 책머리에 적혀있던 변 감독님의 말처럼, 나도 내 생각을 이야기해봤다. 이제 이 글을 보는 당신의 이야기를 나도 얌전히 기다려보고 싶다.

 


[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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