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과 사랑, 죽음과 자유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1.3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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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엘리자벳>을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옥주현 배우는 엘리자벳 그 자체였고 박강현 배우의 익살스러운 루케니도 매력이 넘쳤다. 조연들도 하나하나 개성 있는 캐릭터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노래, 연기, 서사, 춤, 의상, 무대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았다.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뮤지컬이 뭐가 재밌냐고 묻는다면 엘리자벳을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넘버는 <지킬 앤 하이드>, 서사는 <맨 오브 라만차>를 먼저 꼽겠지만 뮤지컬로서의 재미로만 봤을 땐 <위키드>나 <엘리자벳>을 고를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인물은 역시 루케니다.  엘리자벳 황후를 암살한 그는 황후 스스로가 죽음을 원했다고 주장하며 공연의 막을 연다.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간과 장소의 빠른 전환도 그의 말 몇 마디에 자연스럽게 용납된다. 대체로 진중하고 무거운 인물들 사이에서 공연을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윤활유 같은 역할도 마다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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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케니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것은 의인화된 '죽음'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직접 죽음이라는 관념을 연기한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이내 인간이 긴 시간 동안 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관념을 의인화해왔음이 떠올랐다. 공연 속 죽음이라는 배역이 죽음의 신 타나토스로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자벳은 어린 시절 나무에서 떨어져 죽음을 처음 마주한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죽음은 끊임없이 그녀를 유혹한다. 그녀가 황제 요제프와 사랑에 빠졌을 때도, 황실의 제약에 숨 막혀 지낼 때도, 심지어 그녀의 아들에게까지도 어두운 손길을 내민다. 책임과 의무, 고민과 슬픔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죽음이라는 이름의 자유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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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목과 발표 시기, 저자의 이름도 없는 시 한 편을 나눠주고 십 분 동안 읽고 생각해보게 한 후, 우리의 감상을 물었다.

"핀, 자네부터 시작해볼까? 간단하게 말해보지. 이 시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에이드리언은 책상에서 고개를 들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요."

...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사랑과 죽음이라고 할까요. 경우를 막론하고, 죽음의 원칙과 충돌하는 에로스의 원칙이죠. 그리고 그 충돌의 결과로 뒤이어 나타나는 것들까지도요."

-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中>


이 뮤지컬의 가장 유명한 넘버 <나는 나만의 것>에서 엘리자벳은 자유를 노래한다. 사랑을 택함으로써 멀어져 버린 자유를. 사실 살아있기 위해선 수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쉬고만 싶어도 일은 해야 하고, 먹고 싶지 않더라도 언젠간 먹어야만 한다. 그리고 사랑만큼이나 자유를 억압하는 가장 큰 방해물은 없다. 시시때때로 생각을 점령하고 행동에 관여한다. 내 인생의 반을 줄 테니, 너의 인생의 반을 달라던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마지막 장면의 오글거리는 대사만 봐도, 결혼을 앞둔 주변 사람들만 봐도 사랑이 감내해야 하는 자유의 크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짐을 덜어버리고 완벽한 자유를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유도 다양할 것이고, 딱히 그것이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 자유로워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있다. 종교가 없어서인지 나는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생각하는 편이다. 無로 돌아가는 것과 자유로움은 간극이 있어 보인다. 오히려 남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그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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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도 내가 각 분야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빈센트 반고흐, 김광석, 로빈 윌리엄스 그리고 노무현까지... 그들의 그림, 노래, 영화, 철학 그리고 웃음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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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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