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계 속 진실에 대하여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리뷰
글 입력 2019.01.2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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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4_강필석, 이창용.jpg
 

뮤지컬을 보며 우리는 현실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힘든 극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웅장한 무대장치나 화려한 음악은 관객이 뮤지컬이라는 환상으로 더 효과적으로 빠져들게끔 돕는 포장이다. 그리고 그런 황홀한 경험은 우리를 잠깐 일상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포장이 거의 없다. 등장인물은 배우 두 명이 전부고, 무대배경이 바뀌지도 않는다.  엘빈의 죽음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하긴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무대는 극단적인 갈등 상황보다는 평범하고 따뜻한 기억들로 채워진다. 물론 둘의 만남이나 공유하는 추억은 소설적이고 낭만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들의 관계는 매우 보편적이며 현실적이다. 토머스는 엘빈과 자신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지점을 찾고자 하지만 그들의 첫 만남부터 마지막 만남까지를 살펴도 뚜렷한 원인은 없다. 그저 사소한 몇 가지 일로 관계가 가까워짐과 멀어짐을 반복할 뿐이다.

그 '몇 가지 일'이란 엘빈이 선물해 준 책으로 토머스는 꿈을 꾸게 되었고, 둘이 지나가듯 나눈 이야기가 토머스가 대학입시에 제출한 소설의 모티프가 되었고, 토머스는 대학에 입학하고. 상황이 좋지 않아 도시로 오려던 엘빈에게 약속을 취소하는 등등. 어느 한쪽이 무조건 나쁘다고 이야기하기 힘들 만큼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1_정원영, 조성윤.jpg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극을 늘어지지 않게 하는 건 두 배우의 합이다. 인터미션이나 퇴장 없이 계속 무대에 서서 극을 이끌어가는 두 배우의 힘은 대단했다. 토머스가 작가라는 설정을 살려 각 장면이 '제 n 장 엘빈의 이야기' 또는 '제 n 장 토머스의 이야기'처럼 진행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배우들의 가사 전달력과 연기도 좋아서 잔잔한 이야기에도 쉽게 몰입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충분히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진 탓인지 나에게는 다소 심심한 극이었다.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노래로만 표현되다 보니 그 감정이 확 와닿기보다는 곱씹어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것을 둘러싼 섬세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소설이었다면 좀 더 이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물론 담백한 뮤지컬이 줄 수 있는 것도 있다. 무엇인지 묻는다면 여백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넘버와 넘버 사이, 장과 장 사이에서 관객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큰 비밀인 것처럼 보이던 둘 사이의 '진실'은 끝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엘빈은 죽었고, 토머스가 남겨졌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에 엘빈의 송덕문을 쓰느라 힘들어하던 토머스는 극의 마지막에서는 평온한 표정으로 송덕문을 완성한다. 이미 지나온 과거를 하나하나 되짚어봤을 뿐인데 무엇이 토머스의 문제를 해결한 것일까. 여백 속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3_정원영, 조성윤.jpg
 

우리는 언제나 변해가는 타인과의 관계, 또는 끝나버린 관계에서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품은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때 그 말은 무슨 의미였는지, 다른 행동을 했다면 관계의 양상도 달라졌을지 등등 답을 찾고자 하면 질문은 끝이 없다. 토머스가 엘빈의 송덕문을 쓰며 괴로워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엘빈의 감정과 마음을, 그의 죽음의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혼란스러워한다. 그를 가엽게 여기고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열등감을 느끼던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초반부의 토머스는 엘빈과의 관계의 진실,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것을 송덕문에 담고자 했기 때문에 고뇌한다.

그러나 송덕문을 쓰는 일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이 살아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일 수밖에 없다. 뮤지컬은 두 사람이 함께한 몇몇 장면을 보여주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할 뿐, 명확히 하지 않고 열린 이야기로 둔다. 그리고 애초에 두 사람의 관계,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관계에 진실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독립된 두 개인이 맺는 관계를 한가지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어떤 관계는 큰 고비를 넘고도 순탄하게 지속되는 반면 다른 관계는 큰 출렁임 없이도 갑자기 끊어진다.

토머스의 입장에서 보면 토머스가, 엘빈의 입장에서 보면 엘빈이 이해가 된다. 토머스가 과거를 돌아본 후 깨달은 것은 변해 온 관계의 모습에서 명확한 원인이나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었다는 사실이다. 엘빈이 '아는 것을 써'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5_송원근, 정동화.jpg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엘빈이기도 하고 토머스이기도 하다. 떠나가기도 남겨지기도 한다. 사실 많은 관계에서 그 구분은 명확하지 않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관계가 끝나면 그 관계는 결국 나의 입장에서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알 수 없다. 사실 진실의 존재도 모호하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는 관계의 끝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이별로 나타났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 관계의 양상은 극과 비슷하다. 관계가 끝나면 타인은 내 기억의 일부로 남는다. 그런 것들이 모여 나의 삶을 이룬다. 그래서 이 극의 제목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다. 송덕문을 쓴다는 것은 넓은 의미로  우리가 끝난 관계를 우리 나름대로 정리하고 자신의 이야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다른 말로는 '성숙한 이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수많은 송덕문을 써 내려가며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엘빈의 말이 맞다. 우리는 지나간 타인과의 관계를 논하며 그저 우리 입장에서 아는 것을 쓸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타인과 맺은 관계의 끄트머리에 섰을 때, 중요한 건 수많은 가정(假定)이나 후회가 아니라 함께해 온 시간 자체라고 이 뮤지컬은 이야기한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공연장소 백암아트홀

관람시간 100분

관람연령 8세 이상​

티켓가격 R 66000 S 44000

대본 Brian Hill (브라이언 힐)

작사/작곡 Neil Bartram (닐 바트램)

프로듀서/연출 신춘수

출연 강필석, 송원근, 조성윤, 정동화, 이창용, 정원영

제작 오디컴퍼니 주식회사,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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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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