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잊고 사는 것들을 추억하며 [공연]
백암아트홀,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글 입력 2019.01.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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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에게 한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친구 ‘앨빈’의 죽음이 닥쳐온다. 어린 시절의 약속대로 ‘앨빈’의 송덕문을 써내려가기 시작하는 ‘토마스’. 그의 앞에 잊고 살았던 소중한 기억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아이였습니다.(그러나 그들 가운데 그것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생택쥐베리가 레옹 베르트에게 보내는 헌사 中 -작품을 보는 내내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현실에 짓눌려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계산 없는 즐거움을 잊어가는 모습이 <어린 왕자> 서술자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나와도 비슷했다.“앨빈이 도시로 온다고...? 안돼, 나 바쁜데. 나 할 거 엄청 많은데.”기억력이 좋지 않고 덤벙대는 편이라 To do 리스트를 꽤 꼼꼼하게 작성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Netflix 보기’같은 일정까지도 추가할 정도이다. 전공이 전공(문화콘텐츠)인지라. 헌데 전날 저녁에 리스트를 작성해놓고 다음 날 아침 살펴보면 한숨부터 나올 때가 종종 있다. 할 게 너-무 많아서 말이다. 노는 게 제일 좋아서 전생에 뽀로로였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지금은 동물원에 갇힌 뽀로로 신세가 되어 버렸다.노는 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놀아도 마음이 마냥 편치만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사진가 사울 레이터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존경한다.’라고 말했던데, 난 그 마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는 것(취미)을 업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케이스라 이제는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있다.여러 모로 할 것이 너무 많고, 너무 복잡하다. ‘토마스’처럼 말이다.‘토마스’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성공과 명성을 노리고, 글감이 나오지 않으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에게는 항상 할 일이, 신경 쓸 일이 너무나 많다.반면 ‘앨빈’은 심플하다. 그는 항상 해맑고, 여유롭다. 막연히 흘러가는 시간 따위에 괘념치 않고 가만히 앉아 나비를 한참 동안이나 지켜볼 줄 알고, 친구가 도시를 향해 떠나갈 때도 작은 동네 책방을 묵묵하게 지켜낼 줄 안다.이토록 두 인물은 극과 극임에도 불구하고 ‘토마스’가 써 내리는 소설의 전부가 ‘앨빈’과 함께 했던 시간을 기반으로 창작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역시 가장 좋은 성과물은 강박을 던져버리는 순간에서부터 출발하는 법이다.공연은 전반적으로 잔잔했다.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바쁘게 터지는 서사도, 일반인은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화려한 기교의 넘버도 아니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MSG 팍팍 들어간 김밥천국 김치찌개가 아닌 이른 아침 떠먹는 할머니 표 콩나물국이랄까(?). 해서 호불호는 분명 갈릴 듯하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코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굉장히 좋게 보실 듯하다.놀라웠던 점은 두 배우의 연기였다. 통상 뮤지컬이라 하면 최소 5명 이상의 배우들이 나와 배역을 바꿔가며 극을 끌어가건만, 이 작품은 오직 두 명의 배우가 극을 끌어갔다. 그것도 2시간의 러닝 타임동안 단 한 번도 무대에서 내려가지 않은 채 말이다. 두 배우의 귀여우면서도 친밀한 케미가 상당히 볼 만했다.극을 보는 내내 현재 잊고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진심일까. 순수함일까.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용기일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스러움과 순수하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스러움. 이 두 가지를 모두 품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박민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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