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피카소와 큐비즘 전

글 입력 2019.01.2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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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최근의 일이다. 누군가에게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본 후, 나는 믿음이라고 답했다. 믿음이란 지식을 체화한 상태로, 지식 그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때로는 알고 있다는 믿음에 눈이 가려 또렷이 보이는 것을 외면할 때도 있다. 혹은 알지 못해도 믿어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결국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만드는 것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일 것이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진다. 세계에 대한 믿음, 신에 대한 믿음, 사람에 대한 믿음, 나에 대한 믿음... 이런 것들이 모여 우주 속에서 나의 고유한 세계를 만든다.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중대한 인생의 목표는 세계 속에서 하나뿐인 '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닐까. 오롯이 나로서만 존재하는 일은 힘겨운 만큼 가치있는 일이다.


그리고 대체로, 작고도 큰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예술활동은 매우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 작품이라는, 자신이 쌓아올린 왕국 안에서 예술가들은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작품이란 그들에게 산소호흡기와도 같은 것일 테다. '나'로서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

 

요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눈이 가는 전시가 있다. 바로 작년 12월 28일에 개관한 <피카소와 큐비즘> 전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감상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실 입체주의는 꽤 오랫동안 내 관심 밖이었다. 어릴 때부터 미술 교과서에 실린 피카소의 작품을 보면 솔직한 말로, 영 와닿지 않았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왜 사람을 삐뚤게 묘사하고, 도대체 이건 책상인지, 책인지, 과일인지, 왜 형태는 조각 조각 내어놨는지, 어린 애 그림같은 이것들이 왜 명작일까 싶기도 했더랬다.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기를 거부하고 색채나 형태를 왜곡하거나, 때로는 형태 자체를 거부하는 작품들도 있다. 검색만 하면 나올 입체주의의 역사와 의의를 줄줄이 읊을 필요는 없겠다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입체주의는 전통 회화의 형식을 과감히 파괴하고, 대상에 대한 보이는 그대로의 묘사가 아닌 작가의 자유로운 사물 인지 능력을 화폭에 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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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피카소, <무용> (1975)


정해진 형태의 수행이 아닌, 세상 단 하나뿐인 '나'의 시선으로 대상을 재창조하게 한 것이다. 나의 믿음, 나의 시선으로 완전히 새롭게 구성되는 세계. 입체주의 미술은 형태와 색채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의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추상미술의 탄생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20세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창작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형식을 거부하며 온전한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방식에서, 그들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는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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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르주 브라크, <여인의 두상> (1999)
 

 

가치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면서 입체주의 미술에 흥미가 생기긴 했지만, 사실 고백하자면 여전히 입체주의 작품들이 내게 어떤 미적 충격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수백년동안 지속되어 오던 전통 회화의 규범을 깨어버린 과감함, 창의성, 그리고 그 과감한 결단을 가능하게 만든 작가 자신의 세계에 대한 확고하고 강력한 믿음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더군다나 파리 시립 미술관의 중요 소장품이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입체주의 작가들이 남긴 90여점의 진품 명화들로 구성된 순수 회화 전시로, 놓치기에는 상당히 아쉬울 것이다. 서양 미술사의 가장 위대한 미술 혁명이었던 입체 주의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미술 역사 교육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니 나와 같이 입체파 미술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접하기에 꽤 괜찮을 것이라는 기대도 든다.


어릴 때 미술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피카소와 브라크, 그리고 다른 입체파 작품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다. 세상을 부수고 조각 내어 새롭게 조립하고 덧칠한 그들의 작품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게 될까. 막연한 기대와 설렘을 담아 이만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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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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