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좀비 좀 좋아하면 어때서! [문화 전반]

험난한 문화판에서 좀비 마니아로 살아남기
글 입력 2019.01.21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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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고어적인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장 으적, 팔다리 붕괴 등)

* 청소년이 관람 불가한 사진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좀비를 좋아한다고 하면 상대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다. 의외라는 얼굴로 “오…… 취향 독특하네.” 하는 사람과 “좀비? 사람 뜯어먹는 거? 그게 왜 좋아?” 하며 묻는 사람이 있다. 상대의 어조나 표정과는 상관없이, 두 질문 모두 좋아하는 편이다. 전자는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고, 후자는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데에 호기심을 갖는 거니까. 그럭저럭 나를 향한 호의로 이해하고 성심성의껏 답을 해준다. <새벽의 저주>, <워킹데드>, <부산행>, <창궐>, 그리고 좀비가 등장하는 웹툰까지 줄줄 읊다 보면 왜인지 기가 막히게 현타(현실자각타임)가 뒤통수를 때린다. 아니, 근데 나 좀비 왜 좋아하지?


 


좀비는 인간성(人間性)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최근 읽은 <크리틱지상주의>가 눈에 뜨인 것도 좀비 때문이다. 2016년에 쓰인 칼럼이라 언급된 작품이 2019년 기준으로 최신은 아니지만, 유명한 좀비물은 거진 등장했다고 보면 된다. 공유가 출연했던 영화 <부산행>부터 시작해서, 프리퀄 애니메이션 버전이었던 <서울역>, 세계 최초의 장편 좀비 영화 <화이트 좀비>, 그리고 좀비 장르의 시초인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까지. 좀비라는 장르의 발전 역사와 사회적 의의에 대해 간단히 적혀 있다. 알고 있는 걸 간결히 정리하는 의미로 읽었는데, 유독 눈에 박혔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좀비는 지성과 감정이 결여되고, 외부 상황에 둔감하며, 기계적으로 본능을 반복하기만 한다. 무리 지어 움직이고 게걸스레 먹기만 할 뿐이다. (중략) 좀비영화는 누구나 쉽게 좀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우리 자신이 곧 좀비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던진다.” <크리틱지상주의> 中

 


좀비는 늘 ‘살아있는 시체’ 정도로 여겨져 왔다. 유명한 해외 드라마 <뱀파이어 다이어리>의 흡혈귀나 <루시퍼>의 악마와 달리, 좀비가 호러와 고어의 한 종류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서 출발한다. 인간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지성과 감정이 없고, 식인(食人)을 하며, 다른 인간을 ‘열등한’ 좀비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비를 우리 스스로와 구분하고, 살을 파먹는 오컬트적 존재에 공포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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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웜바디스> 스틸컷



설사 좀비가 영화 <웜바디스>의 니콜라스 홀트처럼 멀쩡한 얼굴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가 뇌를 파먹는다는 것과 다른 인간을 좀비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니콜라스 홀트를 ‘역병 바이러스’ 정도로 취급하도록 만든다. 결국 좀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성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다. 즉,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것을 갖지 못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상도덕도 없이 마구잡이로 남을 공격하고(심지어 씹어 삼키기까지 하고), 뇌나 심장 같은 중요 장기가 뭉개지지 않는 이상 죽지도 않는다. 거기다 살아생전 소중히 여겼던 가족도 애인도 못 알아보기 일쑤다. 모양새만 반쯤 썩은 인간이지, 인간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존재가 바로 좀비다.




죽이는 재미만 있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좀비물이라는 마니아적 장르를 대중문화 언저리까지 발전시킨 일등공신은 <워킹데드>라고 본다. 사람들에게 <워킹데드>의 인기 요인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답이 비슷비슷하다. 좀비와 인간의 생존게임에 집중하기보다는, 좀비에 대항하는 인간군상을 잘 그려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좀비 같은 오컬트 소재가 대중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평범하고 현실적인 삶과 연결된 서사로 구성돼야 한다.

 

<워킹데드> 시즌1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로 변했을 때 그를 죽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고뇌가 깊게 오랫동안 묘사된다. 좀비물의 초기 작품들처럼, 매번 좀비를 죽이다가 물리고 씹히고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좀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변화한 것이다. 잡아 먹히기 전에 때려 죽여야 하던 존재에서, ‘과연 저들이 우리와 완전히 구별되는 존재일까?’ 의구심을 갖게 하는 존재로 승격됐다. 거기서 파생된 인간의 회의는 이윽고 <워킹데드>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낳는다. 만약 <워킹데드>가 좀비를 죽여야만 하는 존재로 단순화시켰다면 그렇게 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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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시즌 1, 사진=공식 사이트

 


물론 엑스트라를 활용하여 좀비를 생생하게 재현한 연출도 <워킹데드>의 장르적 재미로 꼽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험난한 좀비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아포칼립스(멸망하는 세계를 묘사하는 작품군, 장르의 한 종류)와 좀비의 인기에 편승하려다 실패한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2018년 하반기에 개봉한 김성훈 감독의 <창궐>을 보면 알 수 있다. 나처럼 아주 재미있게 본 사람도 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시들하기만 했다. <부산행>의 성공과 비교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해외는 둘째치고, 일단 한국에서 먹히는 좀비물은 대체 어떤 좀비물이어야 한단 말인가?



 

좀비는 얼굴로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닙니다



좀비를 리얼하게 묘사하는 분장은 관객에게 ‘이 작품은 좀비 얘기랍니다’라는 인상을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는 중요한 소재다. 그런데 분장은 아무리 리얼해도 한계가 있다. 관객의 좀비에 대한 상상이 비슷비슷한 이상, 그걸 시각화하는 작업은 끝없이 발전할 수 없는 분야란 뜻이다. 다른 작품과 차별화하기 힘든 요소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한국 좀비물은 자본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할리우드 스케일의 좀비 군상에 비벼보기도 힘들다.

 

<부산행>의 좀비와 <창궐>의 좀비를 비교해보면, 사실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다. 얼굴을 장식하는 푸른 핏줄과 쏟아져 나오는 내장, 오X즈나 렌X미에서 협찬하는 컬러렌즈, 잘리거나 꿈틀대는 팔다리. 구현될 만큼 구현됐고 소비될 만큼 소비된 소재다. 좀비가 아무리 사람을 리얼하게 잡아먹어도, 좀비 나오는 작품을 고작 두엇 본 사람에게조차 거기서 거기처럼 보인다. 목 좀 잘리고, 피 좀 터지고, 눈알 튀어나오고. 그럼 끝인데, 대체 차별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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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월드워Z>의 한 장면

 


좀비의 외형에 특이점을 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좀비의 속도나 양으로 밀어붙이는 작품이 늘어났다. <워킹데드>, <월드워Z>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느린 줄로만 알았던 좀비가 사람보다 빨리 달려서 턱밑까지 쫓아오니 안 무서울 수가 없다. 게다가 서로 밟고 밟아서 자기들끼리 탑을 쌓는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월드워Z>의 좀비군상탑은 <부산행>에서 비슷하게 연출되기도 했다. 일본의 좀비영화인 <아이 엠 어 히어로>에서는 다 죽은 근육과 뼈를 희생해서 멀리뛰기하는 좀비까지 등장한다.

 

좀비의 내면에 특이점을 줘서 그럭저럭 성공한 작품이 <웜바디스>다. 이 작품의 좀비는 사고력과 감정을 가졌고 타인의 뇌를 먹으면 데자뷰처럼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이 작품과 비슷하게, 좀비에 나름의 인간성을 부여한 해외 드라마가 <아이좀비>. 여기서는 심지어 좀비가 인간 사회에 숨어들어서 살인사건도 해결하고 사람 목숨도 구하고 대기업의 악행도 알아내고…….


 


그러니 부디 마니아를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보니 좀비는 끊임없는 변화의 역사를 거쳐왔다. 이렇듯 길게 사랑을 받은 오컬트 소재가 또 있을까 싶다. 영화 <곡성> 같은 미스터리물에 가볍게 갖다 쓰기도 좋고, 네이버 웹툰 <데드라이프>처럼 아예 좀비를 주인공으로 삼아도 좋고, 무궁무진하게 쓰일 수 있는 소재다. 그런데 마냥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이유는 마니아층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마니아층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고, 마니아층 사이에서 그럭저럭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지 않으면 대중에게 가 닿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좀비뿐만 아니라 엑소시스트, 악령, 크리처(creature) 등 판타지나 오컬트 소재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관련 작품이 대중에 닿기 전에 마니아층을 거치게 된다. 예를 들어 <창궐> 개봉에 가장 먼저 머리 풀고 달려간 건 좀비 마니아들이었다. <검은 사제들> 개봉에 가장 먼저 머리 풀고 달려간 것도 엑소시즘(exorcism, 구마驅魔) 소재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장르 덕후는 자신의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소설이나 만화보다 많은 예산을 들여 제작한 영화나 드라마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일단 나는 그렇고, 취향이 마이너한 삶은 원래 그렇다.

 

머리 풀고 달려가는 마니아의 장벽을 넘지 못한 작품은 기존에 확보하리라 생각했던 관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대중에게 접근하게 된다. 특히 한국 영화산업은 1차 관객의 입소문이 꽤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작품은 흥행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창궐>이 쓴물을 들이켜야 했던 게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니아의 기대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 상황에서 대중 역시 한국 좀비물을 향한 기대를 무너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장르 마니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대중의 장르인 로맨스부터 시작해서, 판타지, 오컬트,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등 개인의 호불호는 당연하게도 세분화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파이가 작은 좀비 장르는 마니아를 찾기도 쉽지 않다. 아니 마니아까진 바라지도 않고, 가볍게 즐겨보는 장르 기호자만 곁에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언젠가 좀비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며, 2019년 1월 25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킹덤>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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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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