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피카소와 큐비즘 :: 삶의 다면성

다면성을 담고있는 입체주의
글 입력 2019.01.20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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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ASSO & CUBISM

삶의 다면성을 나타내는 입체주의



피카소와큐비즘_포스터.jpg
 




파리시립미술관 소장 걸작선

피카소와 큐비즘

2018.12.28-2019.3.31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피카소5.jpg
 


추상 예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항상 (구체적인)

어딘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 후 현실의 모든 흔적을 지울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



때때로 미술 작품들은 그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과정보다는, 미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로 판단되곤 한다. 몇십억을 호가한 미술작품들의 가격은 으레 사람들의 눈을 끄는 기사로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감히 한 인생을 살며 만져보지도 못할 숫자들-어쩌면 그림을 창조한 작가조차도 만지지못한-몇십만 달러, 몇십억에 혼을 뺏긴 듯 들어와 도대체 어떤 그림이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나 확인하고, 그 뒤는 예술이 돈장난이라며 다분히 힐난하는 어조의 댓글을 남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로써만 표현할 수 없다. 돈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수단이며, 의미이고, 가능성을 뜻하는 이념의 시대이기에 경제적 가치는 곧 유/무형 전부의 가치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경제적 가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평가하는데도 쓰이는데, 유독 미술작품들을 평가할 때 이러한 경제적 가치평가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사회적으로 알만한 화가의 그림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높아지고, 어느 경매에 나오기만 하면 높은 가격을 기록한다.

사람들은 그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었는지, 어떤 작품이기에 희소성이 있는지보다는 작품이 가지고있는 가격에 더 큰 충격과 호기심을 느낀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흔한 예술작품의 가격>이란 이름으로 현대 미술들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실소를 터트리는 게시물들이 가득하다. 점하나 찍어놓을 뿐인, 죽죽 그을 뿐인, 물감을 엎질러놓을 뿐인 작품들에는 말그대로 억소리나는 숫자들이 붙어있다. 사람들은 예술작품에 기이함을 느끼는 자신이 무지해보일까 다만 조심히 조롱할 뿐이다.

작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무수한 지표들 중 하나인 경제적 가치가 곧 작품의 의미로써 존재하며, 작품을 비판하는 것의 이유가 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01_파블로 피카소_남자의 두상.jpg

파블로 피카소, 남자의 두상,

1912, 61x38cm, 캔버스에 유화

Pablo Picasso, Tête d'homme,

1912, 61x38cm, Huile sur toile

© 2018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에 대해 말하기 전, 경제적 가치와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입체파 예술들 또한 작품들이 지닌 거대한 경제적 가치로써 뭇 사람들에게 비판 받으며, 때때로 '해당 가격이 이해가 되지않는 난해한 그림'으로 평가되곤 한다. 이리저리 꺾여진 모습의 사람들과 살색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여러 원색들, 이리저리 둘러싼 기하학적 모양들을 보며 사람들은 난해함을 느낀다. 어떤이는 불쾌감을 느끼고, 이질감마저 느낀다. 혹은 아무런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펜의 힘을 알지 못해 온갖데로 퍼져나가는 선이 가득한 아이의 그림을 보듯 그저 그림이구나- 스치는 생각만을 가진다.

이러한 것을 느낀 이들을 그저 무지하다며, 예술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비판할 마음은 없다. 나의 미술적 견해를 앞세우며 입체파가 왜 이런 가격을 가졌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랑할 욕심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 나 또한 어떤 예술 측면을 보며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때때로 그 유명도에 의아함마저 느낀다. 예술 작품을 접하는 계기나 기회가 항상 고상하고 미려하지 않듯이, 그에 따른 감정 또한 무엇이건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예술이 예술으로써가 아니라, 그 예술을 평가하는 다른 한가지 부차적인 지표에 의해 이해된다는 추상적인 모습은 마땅히 비판받아야하며 바로 잡아야하는 일이다. 입체파 미술들이 단순히 해당 가격의 가치를 하는지로만 평가가 된다면 - 이미 사회에 넓게 퍼져있지만 - 우리는 입체파 미술이 무엇인지 결코 이해할 수없다.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떤의미를 주고 어떤 경험을 떠올리는지가 아닌 단순 가격으로만 기억에 남을 것이다. 물건이 무엇인지, 어떤 용도인지 알기도 전에 가격표를 보곤 높다는 이유만으로 좋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지, 어떠한 이유로 만들어졌는지가 물건을 판단하는 이유가 된다. 물론 가격 또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격' 만이 기준이 될 순 없다.



11_후안 그리스_책.jpg

후안 그리스, 책, 1913, 41 x 34 cm,

캔버스에 종이 콜라주 및 유화

Juan Gris, Le livre, 1913, 41 x 34 cm,

Huile et papier collé sur toile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전시회 <피카소와 큐비즘>의 큐비즘- 곧 입체주의는 서양 미술사의 최대 혁명이자 20세기 미술의 시작이라 불린다. 이전까지의 유럽회화가 르네상스 시대의 사실주의적 전통에서 머물러 있었다면, 입체주의는 이를 탈출시킨 일종의 혁명이었다. 있는 그대로-특히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단면의 사실을 담는 사실주의에서 입체주의로의 변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복합적인 화면 분할과 조합을 통해 사물 뿐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세계- 영혼의 세계까지 표현 가능한 영역으로 그림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적 모사를 과감히 파괴한 입체파 화가들의 획기적인 표현은 추상미술의 탄생 뿐 아니라, 20세기 다양한 창작의 시대를 여는 모토가 되었다. 현대 미술의 모험의 시대는 입체파 화가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체주의가 의미를 지닌 이유는 이에 있다. 삶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다면성을 담아냈고, 무엇인가를 본다는 사실 안에 숨겨진 수많은 의미와 감정, 영혼을 그려냈다. 우리는 한가지 물건을 볼 때 조차도 어떠한 감정이나 생각이나 느낌을 지닌다.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인간은 사고라는 논리 속에서 수많은 작용을 거쳐 끝내 경험을 만들어내고, 그 경험은 인간을 개별화 된 개인으로 만든다.

그렇기에 다면화된 내면을 담아낸 입체주의는 단순히 기하학적으로 일그러진 그림이라 평할 수 없다. 무언가를 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나 경험을 모두 다각도로 담아내었으며, 무엇을 바라봤다는 작가의 시점에서 더욱 심화해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까지를 담아낸 예술이다. 당연한 원근법이나 모습을 무시함으로써 작가가 무엇을 중시해서 바라보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심화해 보여준다.


There is no abstract art.

You must always start with something.

Afterward you can remove all traces of reality.

Pablo Picasso



우리의 삶은 평면적이지 않다. 네모난 화면에 담겨있는 듯 보이는 인생도 사실은 정육면체의 각기 다른 면을 가지고 있는 큐브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는 증오가 숨어있을 수 있고, 행복을 느낌은 우울함에 대한 처절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삶은 입체적이기에 단순한 단면으로 판단할 수 없고, 우리는 항상 뒤틀리고 파괴된 후 재조립 된 감정과 경험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여러 단면으로 쪼개진 유리에 빛이 침투했을 때 어느 쪽으로 나갈지 예상치 못하는 것 처럼, 삶은 어렵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우리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그 여러 단면들을 모두 이해하고 감내해야한다. 어느 하나의 측면으로 다른 무엇들을 잘라낼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에서 시작해, 그 모든 측면을 이해하고 그제서야 현실을 마주해 지워버릴 수 있다.

당신이, 내가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전을 바라볼 때 결코 추상적일 수 없는 이유이다.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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