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rt is Life, Life is Art : 키스 해링 展

글 입력 2019.01.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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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해링 포스터_도그.jpg


예술이 곧 삶이며 삶이 곧 예술이라 말한 키스 해링. 마치 별똥별처럼 1980년대를 뜨겁게 불사르고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 그의 작품들이 이번에 DDP를 찾아왔다. 2018년 11월 24일부터 2019년 3월 27일까지 약 4개월 간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다녀오게 되었다. 비록 미세먼지가 자욱한 날이지만 키스 해링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생각을 하니 집밖을 나서는 발걸음부터 설렐 수밖에 없었다.



 

전시 소개


이 전시는 10년간 불꽃처럼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한 젊은 작가의 연대기다. 19세기 말, 10년의 기간 동안 정신병과 싸우며 자신의 감정과 색채로 예술혼을 불살랐던 빈센트 반 고흐처럼, 키스 해링은 100년 뒤인 20세기 말, 1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에이즈라는 병마와 싸우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퍼뜨렸다.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면서, 만화 등 당시의 대중문화를 흡수했던 키스 해링은 1980년대 팝문화와 비트세대의 예술로 등장한 그래피티 아트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예술계의 악동으로 급부상한 해링은 항상 예술의 폐쇄성에 의문을 가졌다. '그들만의 예술', 이를 부수는 첫 걸음이 바로 지하철 역의 광고판에 분필로 그린 <지하철 드로잉> 시리즈였다. 경찰과 역무원의 눈을 피해 단순한 선으로 그린 ‘빛나는 아기’는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선언하는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의 시작이었다.


1980년대를 휩쓴 팝문화와 클럽 문화는 키스 해링이 품고 있던 예술에 대한 이상과 잘 부합했다. 바로 ‘대중을 위한 예술’,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이라는 이상은 이러한 장소에서 더욱 증폭되었다. 해링은 유명세를 타면서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더욱 밀어붙였다. 지하철 역의 드로잉에서 벗어나, 포스터, 음악 앨범의 커버 디자인 등을 통해서 대중들로 하여금 더욱 쉽게 자신의 예술을 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클럽을 통한 다양한 프로젝트도 이 때 등장한다.


타계하기 이틀 전까지 해링은 붓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그린 그림은 바로 ‘빛나는 아기’였다. 그에게 아기는 불멸, 영생의 아이콘이었다. “그림 속 아기는 우주로부터 받은 힘으로 수많은 빛 줄기를 뿜어내고, 무한한 에너지를 갖는다. 그래서 모든 위험들을 헤쳐나가며 쉼 없이 온 세상을 기어 다닌다. 해링이 세상을 떠난 이후, 1990년대부터 혼돈의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는 아기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링은 아기의 모습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던 것이다.”(도록 서문 중에서)


2018년 11월 24일부터 2019년 3월 17일까지 DDP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키스 해링의 초기 작품부터 에이즈 진단을 받고 타계하기 전까지 작업했던 작품들을 아우른다. 10년이라는 짧은 작업 기간 동안 페인팅, 드로잉, 조각, 앨범아트와 포스터 등 다양한 매체로 방대한 작업을 했던 키스 해링의 주요 작품 175점을 총 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선보인다. 그가 활동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 관련 영상, 콜라보레이션 상품들 또한 함께 전시된다.





아쉽게도 이번 키스 해링 전에서는 평일 11시, 13시, 15시, 17시에만 도슨트를 운영한다. 주말에는 도슨트가 운영되지 않아 오디오 가이드를 챙겨서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오디오 가이드는 현장에서 기기를 대여하는 경우, 신분증을 맡기고 3천원을 지불하면 되며 오디오 가이드 어플을 다운받는 경우 할인을 받아 2천원에 어플을 구매하여 활용할 수 있었다.


표출의 시작(The Beginning), 모든 이를 위한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예술적 환각을 통한 초월(Transcend), 메시지와 음악을 통한 발언(Message and Music), '해링 코드' 심볼과 아이콘(Symbols and Icons), '종말'이라는 디스토피아(Uncovering the Distopia), 원시 에너지와의 조화(Primeval Energy), 시작과 끝 그리고 끝의 시작(The End of the Beginning)까지 총 여덟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약 10여년 간의 키스 해링 작품을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작품 위주로 이번 키스 해링 전을 요약해보고자 한다.



Radiant Baby.jpg
 


키스 해링의 작품을 가장 근본적으로 요약하자면 결국 이 빛나는 아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이 빛나는 아기를 불멸과 영생의 아이콘으로 꼽았다. 우주로부터 힘을 받은 아기는 온몸에서 빛을 뿜어낸다. 그리고 그 속에 품은 무한한 에너지로 온 세상을 누비고 다닌다. 아기는 생명과 선, 에너지와 긍정 그 모든 것의 총체인 것이다. 해링은 이 아기에 자신을 투영했고 작품의 곳곳에 이 빛나는 아기를 그렸다. 나아가 작품에 서명을 한 후 종종 이 빛나는 아기를 함께 그려넣기까지 할 만큼 이 상징을 아꼈다.


그래서 키스 해링의 작품에서는 단독으로 빛나는 아기가 나올 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아기가 녹아들어 있었다. 몸을 엎드려 테이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채로 빛나는 아기가 디폴트지만 다른 작품 속에서 나타날 때에는 종종 서 있기도 했고, 춤추는 듯한 모션을 취하는 상태로 온 몸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 역동성, 생동감 모든 것들이 키스 해링이 원하고 바랐던 긍정의 집합체였을 것이다. 그는 이 상징을 여러 작품들에 다양하게 녹여냄으로써 뉴욕 시민들에게, 나아가 이후에 자신의 작품을 만날 모든 대중들에게 이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전시회장에서 저 앙증맞은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자연스레 미소짓게 되었던 걸 보면 말이다.



People.jpg


그뿐만 아니라 키스 해링의 본질적인 관심사를 여러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사람 그 자체다.


키스 해링의 작품들에는 거의 항상 사람 형상이 등장한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키스 해링이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담아내고 싶어했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사람을 떠나 살 수 없다. 항상 누군가와 부대끼며 친밀한 관계를 맺고, 때로는 치고 박고 싸울 만큼 안맞는 관계도 겪고, 잘 맞다가도 서로 부딪치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 모습들을 키스 해링은 여러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를 타고 앉아 인간탑을 쌓은 듯한 모습으로 그려내기도 했고 위에 보이는 작품과 같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모습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위의 작품은 무제다. 그러나 무제라고 해서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을 담아낸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키스 해링은 본인은 작품과 대중의 매개자일 뿐 그 이후의 모든 것은 작품을 보는 이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그것이 작품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작가의 함의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작품을 볼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 모두가 작품을 이루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 각각 3미터와 4미터의 넓이와 폭으로 어마어마하게 전시장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나는 사람과 사람 사는 세상 그 자체에 가진 키스 해링의 관심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까맣고 굵은 선으로 표현된 사람들의 형상 뒤로 색색이 뒤얽힌 배경이 보인다. 세상사 온전히 평탄하게만 가는 사람이 없듯, 누구나 그 삶에서 희로애락을 느낀다. 무언가 하나로 답을 내릴 수 없는 그 모든 고저와 고락을 다양한 색의 향연으로 담아낸 키스 해링의 표현이 참으로 절묘했다.

 

Silence=Death.jpg

그런가 하면 해링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아주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전쟁과 평화, 억압, 사랑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그와 가장 직결되었던 문제인 에이즈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해온 것을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위의 작품은 침묵=죽음 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분홍색으로 그려진 삼각형 앞에 회색 선으로 사람의 형상이 여럿 겹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나왔던 사람 형상들과는 달리 이 작품의 사람들은 눈을 가리고 있거나, 귀를 막고 있거나 혹은 입을 막고 있었다. 보지 못한 척, 듣지 못한 척하며 (에이즈에 대해) 말하지 않는 정부의 움직임이 곧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초래할 것이라 경고하는 작품이다.


안전한 성생활을 강조하기도 하고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을 작품 속에 담아내기도 한 키스 해링은 게이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는 본인이 작품 속에서 역설하며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노력했던 그 에이즈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31년의 짧은 인생, 그 중에서도 10여년 간의 집약적인 작품활동이 이렇게 끝나리라는 것을 본인은 예감했던 것일까. 키스 해링이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 보니 에이즈 확진을 받기도 전부터 에이즈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과 주의를 높이고자 했던 그의 노력들이 더욱 아프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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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키스 해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사실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위에 보이는 사진은 전시 초반부에 위치한 곳이다. 사진의 중앙부부터 우측에 보이는 작품은 '꽃' 연작 시리즈인데 이는 해링의 작품활동 중 약간은 후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전시의 초반부에 이 작품을 보면서 순간 굉장히 울렁거렸다. 해링은 이 작품에서 다소 추상화된 느낌의 꽃의 형상을 활용하여 원초적인 색감과 함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여기서 느껴지는 일련의 감정들이 매우 원초적이고 불안정한 느낌으로 와닿았다.


전시의 초반부에 느꼈던 이 느낌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저 포스터에서 보이는, 귀여운 강아지 형상, 빛나는 아기 형상, 슈퍼맨처럼 나는 사람의 형상같이 귀여운 그림체만을 알고 보기엔 키스 해링의 작품들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감정과 그 불안정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서 전시 후반부에 가면 탈력감이 들 정도였다. 키스 해링의 작품활동기 중 후기의 작품들, 즉 그가 에이즈 확진을 받고 난 이후의 작품들일수록 더욱 강렬하게 묻어났다.


아마 에이즈 확진을 받은 순간부터 언제 삶이 끝날 지 알 수 없으니 마치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의 모든 에너지를 각 작품 속에 쏟아 부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큼 키스 해링이 느꼈을 그 불안함, 두려움이 작품에 반영되고 나니 그 그로테스크한 감정이 마치 빛나는 아기처럼 끊임없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몰입해서 보다 보니 그 모든 분위기와 감정, 스토리텔링들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전시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괴로웠다. 그저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강했다.


*


그렇게, 키스 해링 전은 나에게 그 어느 전시보다도 강렬한 상흔을 남겼다. 그가 보여 준 긍정의 에너지들은 너무나 고무적이었고 나에게도 즐거움으로 와닿았다. 그러나 해링이 보인 그 내면의 또 다른 성찰들은, 단순히 무거운 것이 아니라 내가 보아서는 안될, 한 사람의 무의식을 그대로 들여다 본 것과 같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키스 해링에 대해 과연 무엇이라 더 말할 수 있을까. 이건 눈으로 직접 그의 작품들을 만나지 않는 한 절대로 와닿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 생동감, 의식과 사랑, 그리고 원초적이어서 두려울 정도의 광기.

그 모든 것이 키스 해링 전에 있었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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