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뜨겁게 타올랐던 여름날, <레토> [영화]

구소련 시대 자유를 갈망했던 청춘의 노래
글 입력 2019.01.15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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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타올랐던 그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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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팬들이 감시를 피해 건물 외벽을 타고 겨우 들어갈 정도로 인기 있는 록밴드가 공연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로큰롤 공연이라면 으레 스탠딩이 기본인데, 모두가 좌석에 정자세로 앉아 있다. 한 여자가 종이에 하트를 그려서 들어 올리자, 경호원이 즉각 제지한다. 관객들은 공연을 보며 리듬을 탈 수도, 밴드에게 사랑한다고 외칠 수도 없다. 그렇다. 이곳은 1981년의 레닌그라드다.


당시 구소련은 사회주의에 반하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에 들어서, 점차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조금씩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변화의 조짐이 시작되었다. ‘레토’는 러시아어로 ‘여름’이라는 뜻이다. 영화 <레토>는 바로 그 시절 격변의 중심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청춘들의 여름날을 다룬다.




영화 <레토>와 빅토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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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는 제71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되어 상영 당시 12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아쉽게도 사운드트랙상을 받는 데 그쳤지만, 프랑스 영화 전문지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발표한 ‘올해의 영화 톱10’에 선정되었고,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우리의 황금종려상”이라며 영화를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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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한국 배우 유태오가 빅토르 최를 맡아 화제가 된 바 있다. 유태오는 러시아어를 전혀 할 줄 모름에도 불구하고 대본을 달달 외웠고, 직접 노래 부르는 모습을 찍은 오디션 영상을 보내는 열정으로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배역을 따냈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과 영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오직 배우가 되겠다는 열정으로 독일 국적도 포기한 채 한국에 들어와 10년의 긴 무명생활을 했다.


결국 <레토>로 칸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았을 뿐만 아니라 2018 제26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에서 영화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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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오가 연기한 빅토르 최는 현재까지도 러시아의 전설적인 가수로 남아있는 록그룹 ‘키노(KINO)’의 보컬이자 리더이다. 그는 1962년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구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랐다. 1982년에 키노를 결성했고, 부조리에 반항하는 저항의 아이콘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1990년 8월 15일, 28세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자유를 갈망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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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심 이야기는 19살의 빅토르 최가 인기 밴드 주파크의 보컬 마이크에게 찾아와 노래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빅토르 최와 그의 동료는 마이크의 지지에 힘입어 ‘가린과 쌍곡선’이라는 밴드를 거쳐 전설적인 그룹 ‘키노’가 된다. 소신의 음악 스타일을 고집하는 매력의 소유자 빅토르는 순식간에 마이크의 아내 나타샤의 마음을 훔친다. 마이크는 사랑하는 여자와 아끼는 친구이자 동료 사이에서 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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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토리는 이 세 인물을 중심으로 흐르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빅토르 최의 전기 영화가 아닌, 구소련 권위주의 시대에 저항한 청춘들에 관한 이야기다. 서구 음반은 해적판을 구해 필사해야 했으며, 록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까딱거릴 수도 없던 시기. 철저한 가사 검열을 받아야 공연이 허락되었고, 의지와 상관없이 아프간 침공을 위한 징집에 끌려가는 시기. 영화 속 젊음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한다.




흑백의 시대 속 형형색색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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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연출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전반적으로 흑백 연출이지만, 중간중간 MTV 스타일의 뮤직 애니메이션이 삽입되어있다. 동시에 서사 밖에 존재하는 ‘해설자’가 영화에 등장해, 방금 본 화면은 ‘모두 없던 일’이라고 설명한다. 음악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MTV 뮤직비디오가 다시 흑백 영화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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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된 음악들은 모두 그 시대 속 음악들로, 서사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보수적인 기성세대에게 외치는 자유의 소리는 토킹 헤즈의 ‘싸이코 킬러’, 풋풋한 데이트의 발랄하고 낭만적인 감정은 이기 팝의 ‘패신저’, 아끼는 동료이자 친구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양보한 날은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가 스토리 내에 자연스럽게 흐른다.


흑백 화면 속 이따금 튀어나오는 형형색색의 뮤직비디오는 어두운 시대를 벗어나려는 청춘들의 몸부림과 같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결국 ‘없던 일’이다.




여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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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 한 청년이 빔프로젝터가 비추는 스크린 속의 바다로 뛰어 들어간다. 이후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음악은 빅토르 최의 ‘여름이 끝났다’이다.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그 청년은 뜨거웠던 그 여름날로 돌아가고 싶은 감독 본인의 열망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2017년 공금 횡령 혐의로 가택 구금 조치를 받아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지 못했다. 구소련의 보수 정책과 현 푸틴 정권의 민족주의 정책이 닮아있는 것과 40년 전의 빅토르 최가 현재 영화화된 것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여름은 끝났지만, 여전히 그 뜨거운 여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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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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