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언’이란, ‘그림자자국’과 ‘퓨쳐워커’ [도서]

불확실함을 확실함으로
글 입력 2019.01.1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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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이란, ‘그림자자국’과 ‘퓨쳐워커’

불확실함을 확실함으로

   

 

‘철학관’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사주와 팔자를 봐주기도 하고, 태어날 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갈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며, 고민이나 걱정을 덜어주기도 한다. 또한 ‘점’이라는 것을 들어보셨는가. 신의 권능을 대리하여 앞길을 보는 것이다. 타로도 몇 번 보셨을 것이다. 그리 믿진 않지만 은근히 맞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이자 궁극적인 목표는 ‘미래를 본다’ 이다. 현재와 과거는 자신이 알고 있긴 한데, 미래를 도통 모르기에 편법을 이용하여 엿본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자신의 방향을 설정하고, 다가올 것들에 대해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미래를 보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상상해보자. 당신이 미래를 보기 위하여 점집에 갔다. 거기서 미래를 점쳐봤는데 그분이 하는 말씀이

‘아......내가 진짜 미안한데 댁 인생 망한다는데?’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떤 기분이 들 것인가?

‘나의 인생은 나의 것, 내가 알아서 살게요.’

라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점집을 나가는가 하면,

‘다음 생을 기약할게요.’

라고 수긍하고 점집을 나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적 차이점도, 결국 점이 확실하지 않다는 전제에 기원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자, 이제 상황을 바꾸어보자.

 

다시 상상의 나라로 떠난다. 당신이 미래를 보기 위하여 진짜 미래를 보여주는 수정구를 가지고 있는 매우 용한 점집에 갔다. 거기서 미래를 점쳐봤는데 그분이 하는 말씀이

‘야 댁 인생 진짜 망했어! 보이지? 캬 시원하게 망했네!’

라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장담하건데 최소한 그 수정구는 박살내고 나올 것이다. 기분이 언짢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상황 같은 경우에는 미래가 확실해진 것이다. 즉,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을 하나로 좁히고, 고정시켜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방향이 그곳으로만 가게 된다. 세상이라는 무대 위의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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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자국, 이영도 저>


이는 ‘그림자자국’과 ‘퓨처워커’의 핵심이다. ‘그림자자국’에서는 한 예언자가 나온다. 그의 힘은 전지전능하여 모든 이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예언을 하지 않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예언은 폭력이자 강간이며, 약탈이기 때문이다. 돈을 내고 폭력과 약탈을 당하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갈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표현하는 예언을 더 살펴보자.

 

자신의 아들을 볼모로 잡힌 예언자는 왕비에게 자신의 아들을 만나는 대신 주기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예언을 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 왕비는 이를 수락하였고, 예언자가 예언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단상 앞에 선 예언자는, 자신의 장기인 예언을 시작한다.

 

“거기 학자님도 한 분 있군요. 스스로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당신의 그 ‘평생의 업적’은 쓰레기예요. 죽을 때까지 뭐가 잘못됐는지 고민해도 답은 못 얻을 겁니다. 그 이론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박살나기 때문에 당신 제자들은 창피해서 유고록도 안 만들어줄 겁니다.”

 

이 학자의 반응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게 된다.

 

“당신은 얼마 후에 살해당합니다. 범인은 끝내 알려지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에 나도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결혼식 피로연에서 따님께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건 관둬요. 피로연에서 한 마디 하기는커녕 따님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없으니까.”

 

자 이 중년 남성은 어떻게 됐을까? 갑자기 졸도하게 됐다.

 

다른 이의 미래를 보고 말해주는 것은, 그들의 미래를 엿보는 것이기에 강간이며, 발생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들과 희망을 뺏기에 약탈임과 동시에, 차디찬 진실을 보여주기에 폭력이다.

 

‘좋은 예언만 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하지만, 언제나 슬픈 일은 발생한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언젠가는 발생한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잊고 사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다. 미래의 자신의 죽음을 보고 태연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실패 또한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자들에게 예견된 실패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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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워커, 이영도 저>


‘퓨처워커’같은 경우에는 다른 방법으로 예언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을 점을 보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여기며, 그 예언을 행하는 것이 자신의 숙원으로 여기는 무녀로 두었다. 그녀의 경우에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친지의 미래를 보았고, 그 미래 속에서는 그날 저녁에 자신의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막지 않았다. 미래를 보았기에 정해버린 것이고, 정해졌기에 본 것이기에 그녀는 막을 수 없었다.

 

당연히 그녀는 자신의 미래 또한 보았다. 그 미래에서는 그녀의 친구와 결혼하게 되고 아이를 낳지만, 남편은 4년 뒤에 ‘디도스’라는 곳에서 페스트로 사망하게 되고, 자신은 아이를 낳다가 페스트에 걸린 상태로 지저분하게 사망하게 되며, 자신의 아이도 결국 사망하고 동생은 자살하게 된다.

 

그녀는 미래의 남편에게 고백한다. 나중에 결혼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죽을 때 울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의 이름을 미래의 아기의 이름으로 짓는다. 미래에는 그렇게 부르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래를 지키고 이행하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기에, 그녀는 ‘사람’이라고 부르기 힘든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말이 와닿는다.

 

‘행복할 수 있을까?’

 

미래를 아는 것이 행복할 수 있을까? 불행한 미래를 앞둔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허가받은 미래를 보고, 그대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여러모로 재미있는 주제이다.



[이동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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