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ith Haring
키스 해링에 대한 단상

▲ Keith Haring / Retrospect 회상(1989)
Silkscreen on paper / 117x280cm
강렬하고 힘 있는 선과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는 원색의 색감. 신나게 율동을 추고 있는 듯 보이는 귀여운 캐릭터들. 그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귀엽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저 귀여운 그림들이 왜 유명한 거지, 라는 생각이 들던 중 팝아트와 관련된 전시회에서 몇 차례의 그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다. 짧게나마 그의 생애와 예술을 만나고 나니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귀여운 그림들은 단순한 낙서가 아닌 하나의 온전한 예술로서 의미를 갖고 있었다.
한 때 미술을 전공하고 여전히 미술에 대한 얕은 관심을 갖고 있는 나에겐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다. 입체파, 야수파, 인상파와 같은 어려운 미술 사조에 갇혀 저급문화로 비춰지는 것들을 무시하는 실례를 범하면 안 된다던가, 이전에 썼던 글에 등장한 미스터 브레인 워시처럼 의미 없이 작품(제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을 생산해내는 것들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짧고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곁에 각자의 의미를 담아 존재하는 작품들은 모두 예술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답지 않게 철학적인 이야기라 나의 생각이 맞다 틀리다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도 거만하게 느껴지는 듯하지만, 아무튼 키스 해링의 작품은 내가 생각하는 예술에 딱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술은 결코 소수의 특정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 말하던 그는 밝고 귀여운 그림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동시에 에이즈 예방, 동성애자 인권, 인종 차별, 마약, 전쟁, 폭력, 환경보호와 같은 사회적 이슈와 그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앤디 워홀은 가벼운 주제를 무겁고 심각하게 표현한 반면, 키스 해링은 정 반대로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밝게 그려낸다.’
- 요코 오노

예술의 폐쇄성에 의문을 가진 그는 지하철 광고판에 그림을 그리는 <지하철 드로잉>시리즈를 시작하며 예술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후에 포스터, 음악, 앨범의 커버 디자인을 통해 대중에게 한 발 더 다가섰고, 뉴욕과 도쿄의 팝 숍을 열며 소수의 컬렉터들이 작품을 사던 과거의 관습을 뒤집어 누구나 그의 작품을 즐기고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88년 에이즈에 걸려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그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예술을 통해 세상에 내보였다.
우리의 삶이 예술에 한걸음 가까워 질 수 있게 해준 그는 ‘예술은 삶, 삶은 곧 예술이다.’라 말한다. 귀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예술을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녹아들게 한,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못한 그에게 삶은 예술 그 자체였을 테다.
키스해링 展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Art is Life. Life is A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