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뮤지컬 <재생불량소년>, 성장극이 뻔해지는 이유

성장극에서 개연성은 이렇게 중요하다
글 입력 2019.01.0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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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뮤지컬 <재생불량소년>,
성장극이 뻔해지는 이유


재생불량소년_메인포스터.jpg
 

창작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을 보았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간호사 역할과 코치 역할을 동시에 맡은 배우의 연기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루해지는 분위기를 순간순간 뒤집었다. 병실 특유의 파랑, 보라색 조명도 좋았고 세트를 병실로도, 링으로도 활용하는 창의력도 좋았다. 공연장에 관객의 자리를 복싱 경기에서의 관객 자리처럼 3면으로 둘러서 배우들이 더욱 입체감있게 느껴졌고 구석구석에 계단, 사물함 등을 배치해서 배우들이 무대와 관객 사이를 종횡무진한 것도 좋았다.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작품에 대해서 여러 번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는데 부분부분 배우들의 연기가 기억에 남을 뿐 이 작품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생각해보면, 그것도 딱히 모르겠고, 이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면, 그것도 딱히 모르겠다.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알겠다.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서 싸워라!’ 그런데 그 메시지에 내가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 리뷰에서는 왜 나는 재생불량소년에 공감하지 못했는지 얘기해보려 한다.



성장은 실패를 극복하며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극복의 서사, 개연성이 충분한가?

[재생불량소년]은 반석의 성장담이다. 한 때는 잘나가는 청소년 복서였지만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복싱 링에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를 죽인 것은 아닌지, 죽음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사유의 과정을 거쳐 극복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단순히 무척 아프고 – 더 아프지만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 – 살고 싶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링 위에 다시 올라간다고?

승민에 대한 고민이 정말 부족하다. 물론 승민은 반석의 트라우마이므로 당장은 그에 대한 생각을 피한 채로 링 위에 올라갈 수 있겠지만 결국 반석이 링에서 내려온 이유는 승민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므로 승민은 영영 외면할 수는 없는 이슈다. 그런데 반석의 트라우마 극복 속에 승민의 분량이 무척 적다. 이렇게 진행할 이야기였다면, 삶의 의지를 별 이유 없이 잃어가는 청소년의 이야기가 나았겠다. 청소년기는 원래 무척 혼란스럽고 마구 소진되다가 다시 불타오르는, 불규칙적인 시기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는 승민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며 좌절한 반석이 성균을 만나면서 다시 응원을 얻는 이야기다. 승민은 모범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죽었고, 그의 죽음은 반석을 링 위에서 벗어나게 할 뿐 다시 불러오지는 못했다. 어떠한 힌트도 없었다. 원래 노크를 하고 찾아오는 죽음은 없지만, 승민의 죽음은 너무나 도구적으로 소모되었다. 승민의 역할이 더 클 수 있었는데 너무나 단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인물 속에서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 인물이 있다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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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담이 뻔해지는 이유

프리뷰에서 언급했듯, [재생불량소년]은 성장담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된 뮤지컬이다. 하나의 좋은 성장극이 청소년의 일생을 바꾸고, 성인의 초심을 상기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다. 하지만 [재생불량소년]이 내게 성장담으로서 효과적으로 다가오지 못한 이유는 내가 반석의 감정에 충분히 이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석이 왜 비뚤어졌는지, 어떤 포인트가 정확히 성균을 감동시킨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들쭉날쭉한 것이 청소년의 특징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그 폭이 컸다.

그리고 대체 성균은 왜 그렇게 긍정적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물론 골수가 일치하는 기증자가 기증을 취소했을 때, 그는 잠깐 슬픔을 보이지만 이내 극복하고 일어난다. 꽤 빠르게 극복한다. 대체 성균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밝은 건지, 원래 이렇게 밝은 사람이었는지 궁금하지만 극은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려하지 않는다. 성균의 대사 중에서도 ‘나도 처음엔 그랬어’라는 부분이 있다는 걸 떠올려보면 분명 성균에게도 우울하고 힘든 시기가 있었을 텐데, 그는 왜 계속 이렇게 밝고 기쁠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인공의 성장극이니까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은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그 ‘위기’에 대해서 충분한 고려가 오고 갔는지, 그래서 ‘성장’을 하게 된 계기가 진짜 반석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그래서 반석은 어떤 삶을 살게 된 것인지. 무척이나 불친절하고 다소 납득도 잘 가지 않는다.

성장담은 개연성을 잃으면서 뻔해진다. 우리는 청소년기에 성장한다. 사실, 항상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장은 엄청난 터닝포인트가 있다기 보다는 하루하루 키가 크고 살이 붙듯 서서히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성장을 극의 소재로 다루기에는 너무 무료하므로 제작자나 작가는 어떤 큰, 터닝 포인트를 잡아야하는데 이 때 관객들이 이 소재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애초에 많은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여러분은 이해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짜잔- 주인공은 성장했습니다!”라는 결말이라면, 애초에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결말을 알고 온 관객의 입장으로서는 다소 뻔하다는 느낌과 맥이 빠지는 기분을 외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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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부분들을 위주로 서술했지만 분명 좋았던 부분도 있다. 배우들의 연기, 간호사 역할의 배우가 불어넣은 활력, 의사 역할을 했던 배우의 가창력, 세트, 조명 등, 시각적 청각적 디테일이 살아있는 극이었다. 반석 역의 배우가 실제로 복싱 선수처럼 몸을 만들어 온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모든 극의 기본은 배우가 아닌 극본이다. 좋은 배우들은 그 극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멋진 성장극을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조금 더 아쉬웠다. 뻔하지 않은 성장극이라는, 거의 도달하기 힘든 목표를 만날 그 날을 상상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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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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