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원치 않는 고통, 재생불량소년 [공연]

원하는 것, 그러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19.01.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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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불량소년, 처음에는 그 이름이 탐탁지 않았다. 무슨 자격으로 불량을 규정하고, 그 불량을 재생시키려 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연극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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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는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는 반석이와, 3년째 백혈병을 앓고 치료를 받는 성균이가 무균실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무대는 병실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고, 복싱장이 가끔 등장해 무대 아래에 놓인 링이 올라오기도 했다. 무대 왼편에 있는 사물함과 복싱기구도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이런 인테리어들에 불빛을 비추는 것으로 알려주었던 점이 친절하게 느껴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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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불량성 빈혈, 성균이의 말대로 백혈병은 다들 잘 알고 있어 놀랄만한 병인데, 재생불량성 빈혈은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나도 연극에서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질병을 처음 들어봤다.

사람의 몸이 공장이라고 한다면, 백혈병은 불량품을 생산해내는 병이고 재생불량성 빈혈은 공장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둘 다 골수이식으로 완치할 수 있지만 골수가 맞을 확률이 매우 낮다.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는 토끼나 말의 혈청을 이식받거나, 운동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백혈병과 재생불량성 빈혈 둘 다 피가 멈추지 않는 질병이기에, 피가 따를 수밖에 없는 복싱을 더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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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이가 과거를 회상할 때, 아니면 그냥 잠을 자다가도 종종 '하나, 둘, 셋'이라고 숫자를 세는 소리가 반복된다. 병실 커튼 뒤에 친구가 서 있는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만큼 운동선수인 그에게 병이란 것은 아주 큰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운동선수는 아니고 그저 일반인이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못하면 얼마나 몸이 근질거리는지 안다. 수술하고 나서 의사가, 가족들이 운동하지 말라고 했을 상황에서도 나는 그들의 눈을 피해서 운동을 하곤 했다. 그러고 땀을 흘리면 씻으면 안 되는데도 몸에서 땀 냄새가 진동을 해서 씻어야만 했다.

난 그저 취미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인데도 그 정도였는데 복싱 선수였던 그는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의 돈벌이가 될 수단, 그의 평생을 건 꿈이 망가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친구에게 지고 싶지 않아 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반석이라서 더욱 그 상처가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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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픔을 보여주는 드라마나 연극에서 늘 아쉬웠던 것은 절망적인 상황은 그럴듯하게 강조가 되나, 당사자의 고통을 자세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생 불량소년>에서도 주사를 맞을 때의 반석이의 고통을 비명을 지르고 우는 것으로 보여주지만, 그 장면 하나뿐이었고 나머지 장면은 거의 반석이가 우울해 하거나 성균이가 지나치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환자들의 고통을 연극 저편으로 떠넘긴다는 점은 몹시 안타까웠다.

극이 병실이라는 배경을 하고 있지만 밝은 분위기를 가져가려고 그런 밝은 캐릭터를 넣었다거나, 반석이가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려고 또는 성공적인 재활과 복싱장으로의 귀환을 위한 장치인 것은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극에서 재생불량성 빈혈과 백혈병에 관해 설명에서만 그치고 그들 개개인의 아픔과 고통, 괴로움과 고립감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부족했던 것 같아 무척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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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성균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무척 들었었기 때문에 그의 아픔을 다루는 비율이 너무 낮지 않았나 생각했다. 성균이가 병실을 빠져나가면 어떤 걸 하고 싶은지에서 라면 노래를 넣어서 사람들의 웃음을 사는 대신에, 성균이가 3년 동안 병이 치료되고 재발하는 과정을 거쳤던 그 부정적인 이야기도 넣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아주 잠시, 성균이가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싶다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다 하는 장면은 나왔으나 그 비중이 너무 작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연극이 꽤 우울한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붕 떠 있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고 퍼포먼스가 굉장했는데도 부족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지막에 반석이는 재활에 성공해도, 성균이는 무균실 생활을 계속한다는 점도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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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반적인 뮤지컬과는 다르게, 자체적으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노래를 그다지 잘 알지 못해서 이미 있는 노래에 개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재생불량성 빈혈이 어떤 병인지 소개를 하는 노래와 라면을 먹고 싶어서 파 송송 끓여 먹는 그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다.

이전까지 보았던 뮤지컬들이 명곡을 그대로 부르거나, 유명한 노래에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재생 불량소년>은 뮤지컬이란 장르를 제대로 활용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극에서 설명하기엔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거나 따분해질 수 있는 '병에 대한 설명'을 노래로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런 시도를 한 것이 굉장해 보였다.

배우들이 처음 등장할 때는 카리스마가 넘치게 복싱 안무를 중간중간 넣고, 표정도 굉장히 굳세었지만, 연극 중간중간에는 무척 귀여운 점들이 많이 보였다. 일인다역을 맡으신 복싱 코치 겸 간호사분이 완전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고, 성균이와의 호흡이 정말 재밌었다. 성균이와 반석이가 같이 황도를 뜯어먹는 모습도 너무 다정하고 보기 좋았다. 전반적으로 미적으로 균형이 잡힌 무대였기에 보는 재미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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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 선택을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의지를 갖고 있다고 선택을 할 수 있는 영역인가?

누군가는 선택한다는 것은, 그 행위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한없이 우울해질 수 있는 주제였지만, 생각보다 많이 웃었다. 또 생각보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여전히 '불량'이란 단어를 소년에게 붙인 것은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다는 말로는 이해할 수 없었고, '아웃스포큰'이라는 공연제작사가 바람직한 청소년을 주제로 하는 공연들을 추구하고 있어서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었던 공연이었다. 결국은 아픔도, 질병도 이겨내고 자기가 바라는 꿈을 향해 쫓는 그런 이상적인 소년을 만들려는 것만 같아서 나는 불편했다.

아니, 사실은 원치 않는 고통을 겪는 자들 앞에 서 있기에, 원하는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짜증 나서 불편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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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불량소년
-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


일자 : 2018.12.23(일) ~ 2019.01.20(일)

시간
평일 20시
토 15시/19시
일, 공휴일 14시/18시

*
월, 1/1 공연 없음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주최/주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웃스포큰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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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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