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썬샤인의 전사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
글 입력 2018.1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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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윤현민 / 출처 극단 달나라동백꽃
 


"이제,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1 연극을 보다.



우선 '연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연극은 깊은 역사 지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스크린을 통해 전시 상황이나, 사건의 경위를 알려주는 지도 등이 활용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가의 연출력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연극을 즐겨 보는 편인데, CKL 스테이지는 극장 구조가 굉장히 독특했다. 무대를 두고 앞뒤로 관객석이 있어 관객들이 무대 위의 배우들의 연기를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배우들의 뒷모습만 보이기도 하고, 정면만 보이기도 했는데, 배우들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표정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추측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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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윤현민 / 출처 극단 달나라동백꽃




#2 독특한 연출



연출이 다소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다. 시대적 배경을 알아차릴 때 즈음, 또 다른 시대로 흘러가고, 그 시대에 적응해 인물들의 몰입할 때 즈음 또 다른 시대로 흘러간다. 또한 연극 중간중간 봄이, 아내와의 대화는 이러한 복잡하고 답답한 느낌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이 연출이 단순하게 혼돈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사건이 연속적으로 흘러가며 정체된 시간 없이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이어져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한 소설가 한승우가 극중 인물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동시에 극을 서술하는 역할도 하는데, 이것 또한 독특한 전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인물들과 대화를 통해 과거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느 시대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떠돌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3 연극에 대한 해석



내가 연극을 본 날만 이벤트로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연극이 끝나고 30여 분간 '관객들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이런 기회가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했고, 배우와 직접 소통하며 극중 인물을 어떻게 느끼고 해석했는지가 궁금해서 기꺼이 참여했다.


굳센 의지로 도배되어있던 시자가 벙어리가 되는 부분에서 나를 포함해 많은 관객들이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연출님께서는 그 장면에 대해 말하시길 시자를 무너뜨린 그 '무엇'에 대해 관객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하는 불친절한 장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명쾌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꿈꾸는 이상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었을 때, 무엇이 나를 좌절하게끔, 무너지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아마 더 나아질 수 없다는 현실에 순응하게 될 때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연극이 끝날 때 즈음 되어 선호, 명이, 순이, 막이, 시자 등이 모두 함께 나와 똑또똑 똑똑 소리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도 눈물이 났다. 그 시대의 아픔을 가지고 힘겹게 과거를 살아온 사람들이 결국엔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그리고 그 사람들로 인해 현재를 이룰 수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연극은 두세 번쯤 보아야 확실히 이해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되뇌느라, 연극에 등장하는 소품들의 의미를 헤아리느라 많은 부분을 놓쳤을 터이다. 또한 수첩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기도 하고, 장면 장면마다 연출님의 의도에 따라 관객들의 주관적으로 해석하길 바라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 연출님의 모든 의도를 헤아리기에 한 번의 감상은 조금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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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윤현민 / 출처 극단 달나라동백꽃




#4 연극이 끝나고



앞에도 말했지만, 연극이 끝날 때쯤부터 이유 모를 눈물이 났다. 이 눈물은 영화 '너의 이름은.'을 봤을 때도 똑같이 났던 눈물인데, 내용을 100퍼센트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가슴 벅차오르는 느낌,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다. 솔직히 관객들이 바로 맞은편에 있어서 훌쩍거리고 눈물을 닦는 모습이 부끄러워 대놓고 울진 못했다. 그래서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다. 눈물이 났던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뺨이 눈물에 젖어서 그런지, 시간이 늦어 더 추워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연극을 보고 나오니 바람이 더 차게 느껴졌다. 현재를 위해 달려온 과거의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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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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