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종말의 길, 코맥 매카시의 『로드』 [도서]

글 입력 2018.12.2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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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의 『로드』는 핵무기로 인해 종말을 맞이한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길을 떠난 부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세밀하고 진실 된 부자간의 감정, 종말과 죽음에 관한 궁극적 고찰 그리고 인간의 선악과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 등을 한 번에 담아낸 대단히  놀라운 소설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이키고 반성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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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대하여


핵무기로 인해 파괴된 세상에는 질서와 도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추위, 굶주림 그리고 사람들의 피살을 피해 떠난 부자의 눈물겨운 생존의 여정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준다. 사실 ‘세계 종말’이라는 주제는 우리가 많은 문학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주제이다. 이 작품 또 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독자로 하여금 ‘핵폭발’을 연상시킬 수 있는 힌트를 곳곳에 배치해 핵무기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세계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어둡고 차가운, 식량이 극도로 부족하고 동물이 멸종된, 가장 폭력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밖에 생존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을 제시한다. 생존을 위해 사람들은 서로를 죽여 가며 식량, 신발, 담요를 갈취하고 심지어는 인육을 먹기도 한다. 치열하고 처참한 생존의 현장을 묘사함으로서, 매카시는 규칙과 도덕, 그리고 질서가 동시에 사라진 붕괴된 세계 속에서 인류의 문명, 자유, 민주와 과학의 신화는 모두 먼지만큼 부질없는 것으로 전락한 시대의 절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양의 종말론에 대한 인식은 성경과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얘기한다. 현존하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종말을 맞이할 것이고,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것을. 노아의 방주와 심판의 날은 가장 전형적인 종말에 관한 이야기 이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발전하고, 전쟁이 계속해서 일어나며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이 발생함에 따라 현대인들은 곧 다가올 것만 같은 세계종말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 공허와 불안을 안고 살아가지만 정작 정신적인 피난처를 찾을 수 없는 곤경에 처해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사람들의 공포와 문제의식을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할 수 있는 장르라고 볼 수 있다.

매카시가 묘사한 지구의 종말은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예언 속의 세상과 닮아 있다. 타버린 땅과 수목(계 8:6), 죽은 바다 생물과 깨진 배 (계 8:9), 사람이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식수(계 8:11)......세계는 말 그대로 ‘절망’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작가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아 우리는 세계가 이 지경이 되어버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죄 많은 인간에게 내린 신의 벌은 참으로도 가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름조차 나오지 않은 부자는 마치 노아처럼 신에게 선택받은 ‘선민’과도 같다. 그들이 살아가는 도구는 방주가 아닌 총과 카트이며 부자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선과 악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아이는 선했고 베풀기를 좋아했다. 마치 천사와도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 아이는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게 도와주었다. 자신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언젠간 해변에서 피신처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만든 것 또한 아이였다. 아이는 아버지의 신과 신앙이었으며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부자의 생존 여정은 표면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고 심층적인 의미로는 정신과 영혼의 구원 및 속죄를 위한 유랑이라고 볼 수 있다.



부성애에 대하여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모성애가 아닌, 문학 작품에서 보다 홀시되는 부성애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로드』의 초반부에, 어머니는 아이를 낳기 거부한다. 아버지의 애원 속에서 겨우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생존에 대한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서 현실에 굴복한다. 끊임없이 어머니를 설득하며 자신과 아이 곁에 남아달라는 아버지의 말에도 어머니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며 자살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으로 인해, 핵무기로 파괴된 세계 속에 사는 아이의 내면세상 또한 파괴되었다. 걸어 다니는 좀비와도 같이 모든 신앙을 잃은 모습으로 ‘절망’과‘비관’을 대표하고 있는 어머니는 어쩌면 종말이 들이 닥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 즉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가장 잘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아버지는 무한한 슬픔과 고통을 안고 갈지언정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아이는 살아갈 수 있었고, 부성애의 위대함과 강인함만이 외롭고 험난한 생존의 길에서 빛을 발하고 부자를 이끌어갔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계속해서 아이에게 ‘불씨’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지독한 상황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할 마음속의 불씨는 무엇을 의미할까? 희망, 사랑 아니면 선함? 그 해답을 우리는 소설에 끝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소설에 끝 부분에서 아버지는 결국 죽게 되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아이에게 ‘불씨’를 심어 주었다. 그리고 그 불씨는 바로 아이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고통 속에서 사랑을, 악함 속에서 선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상징했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아이는 그의 격려 아래 불씨를 품고 결국에는 자신들과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 삶을 이어 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아버지의 불씨 같은 사랑은 우리가 절망뿐인 것 같은 이 소설에서 미약하지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희망에 대하여


소설에서 아이는 계속해서 아버지와 자신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에 집착을 하는데, 이는 핵전쟁 이전, 즉 파괴되기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불 수 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하고, 정부와 질서, 법률과 무든 제약이 붕괴하면 사람들은 모두 원하던 원치 않던 악한 길에 올라설 수밖에 없다. 부자가 남쪽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그들은 두 눈으로 강도, 강간 그리고 살인 등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범죄들을 목격하게 되고 심지어는 인육을 먹는 무리들 까지 만나게 된다. 소설이라는 가상 세계를 통해  작가가 보여준 인간성의 추악함은 어떻게 보면 또 매우 현실적 이여서 우리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부자는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면서도 굳건하게 자신들만의 신조와 신앙을 지켜가며 생존한다. 부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선악이란 환경이 아닌 인간의 마음과 선택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선’을 선택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면 우리는 ‘선’해질 것이고, 우리가 ‘악’선택하고 그것을 지속하면 우리는 ‘악’해 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매카시는 또한 우리에게 선을 선택한다고 반드시 맞는 것이며 악을 선택한다고 반드시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책의 저자이면서도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답을 해주지 않는 철저한 방관자였다.

소설의 최후에서, 아이는 죽은 아버지를 떠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함께 떠나게 된다. 그렇다면 아이는 결국 살아남았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그들은 정말 아이의 생각대로 ‘좋은 사람’이었을까? 멸망한 세계는 다시 회복 될 수 있을까?......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떠올릴 수 있지만 소설은 그냥 그대로 끝나버린다. 이렇듯 매카시는 우리에게 희미한 희망의 불빛을 보여주지만 끝내 그 불빛이 지속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사실 이러한 결말은 소설 안에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반복된다. 선한 사람들이 항상 행복하게 살아가지 않고 심지어는 악한 사람들보다도 불행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익숙해질 만큼 많이 보아왔다. 소설의 결말을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매카시는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선과 악, 그리고 인간성에 관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바꾸어 나가야할까? 답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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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로드>


영화는 색감이 화려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빠른 편집으로 밝은 햇빛 아래 미소 짓는 샤를리즈 테론, 말과 교감하는 비고 모텐슨 그리고 왕성한 생명의 기운을 뽐내는 풀잎과 잔디밭 등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여준 뒤 곧바로 비고는 깨어나고 아득한 꿈속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은 사라진다. 이어 영화의 색감 또한 어둡고 차가운 회색 톤으로 바뀌게 된다. 꿈속의 세계와 달리 회색빛 현실 속의 세계는 파괴 되었으며 숲은 이미 불타 폐허가 된 도시와 함께 절망의 기운을 내뿜는다. 극소수의 사람들 많이 살아남았고 생존자 중 하나인 비고는 아들을 데리고 음식과 온기를 찾아 남쪽의 해변으로 나아간다.

어제는 너무 가까웠고 내일은 너무 아득했다. 조각난 기억은 끊임없이 비고의 머리를 헤집으며 아름다운 색감을 가진 종말 이전의 삶을 상기시켰다. 종말 이후 아내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과정 또한 계속해서 떠올랐다. 앞길은 위험이 가득했고 비고는 계속해서 절망에게 잠식 되었다. 하지만 곁에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마다 그는 자신이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상기시키며 힘을 얻었다.

죽음과 절망을 상징하는 총과 두 개의 총알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기억 속에 아내는 죽음을 택하며 총을 테이블 위에 둔 채 고통스럽게 비고를 바라본다 ; 현실 속에서 비고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절망스럽게 아이에게 총기의 사용법을 가르쳐준다 ; 길을 따라 음식을 찾아 나설 때 비고는 총으로 나쁜 사람 한명을 죽여 고비를 넘기게 된다 ; 식인무리들의 방에서 비고는 끝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절망 속에 유일한 총알 한발을 장전한 총으로 아들을 겨눈 채 눈물을 흘린다.

부자는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생존자들을 의심하며 경계해야 한다. 나머지 생존자 대부분은 좀비와 같이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모습이거나 무리를 지어 동족을 살해하며 배를 채우는 악행을 저질렀다. 비고 부자는 한 터널의 출구 근처에 있는 길가에서 처음으로 악의 무리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체계적이었으며 대량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부자는 처음엔 그저 그들이 식량과 옷가지들을 갈취해가는 줄 알았지만 다음 날 같은 무리의 일원이었던 사람들이 살해당해 뼈 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 후 비고는 아들과 길가에 있는 고급 저택에 들어가 식량을 찾기 위해 지하실로 향하게 된다. 라이터를 켜고 아들과 함께 어둠속으로 들어간 비고는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지하실의 다른 문을 열고 라이터를 비추자 이미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나체의 인간들이 아무렇게나 방안곳곳에 누워 있었다. 그들은 굶주림으로 인해 앙상한 뼈 밖에 남지 않거나 이미 신체의 일부를 잃은 상태였다. 즉, 그 지하실은 ‘식인 공장’이었으며 죽지도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은 비고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를 향한 애원은 그들을 이곳에서 나가게 해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총을 쏴서 단번에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달라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처절했다.

하지만 부자와 같이 인간성을 잃지 않은 생존자들도 아직 있었다. 자신이 90세라고 주장하는 한 노인은 비고의 아들을 보자 아이가 천사라고 착각한다. 그는 이미 인간을 믿지 않는 경지에 다다랐고 인간성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폐허에서 활로 비고를 공격한 남녀 또한 동류에 대한 믿음을 잃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비고를 공격한 것이다. 해변에서 만난 흑인은 부자의 모든 것을 훔쳐 갔지만 비고의 아들만은 해치지 않았고 결국엔 비고에게 반격 당했지만 그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매서운 바람 속에서 울기만 했다.

영화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결국에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부자의 사랑이라는 하나의 감정선은 영화를 감동적으로 만들었고 비고가 한 말 중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 깊었던 말은 "아들의 말이 신의 언어가 아니라면 신은 단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이다.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아들을 향한 비고의 사랑은 무척이나 강인했고 비고가 끊임없는 절망과 고난 속에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견뎌내 아들을 지키는 힘을 만들어 주었다.

엔딩 부분에서 그는 해변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쉰다. 그는 원래 아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아들 또한 함께 이 절망의 세상 속에서 벗어나자고 말하려 했지만 정작 정말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자 마음을 바꿔 아들이 계속 살아나갈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에서 우리는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단 부자지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희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고가 계속해서 지켜온 것은 그의 아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선을 지향하는 본성과 희망이다. 즉, 그는 그의 아들을 선한 인간성의 상징이라고 여겨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90세의 노인은 아이를 천사라고 착각했고 주인공이 가진 총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외에 타인을 해치는 용도로는 단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는 것이다. 아이의 단순해 보이는 유치한 질문은 극단적인 상황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어떻게 보면 '철없다고'느껴질 수도 있는 질문들이었지만 우리가 철없다고 느끼는 그 이질감이 바로 우리들의 인간성의 타락함을 강조시킨다.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를 희망적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인 비고 또한 죽는 순간까지 완전히 절망하지 않았고 옳은 선택을 해 아이를 살게 만들었다. 엔딩 부분에 등장하는 남녀는 비고의 아들에게 그들이 계속해서 아이를 따라왔고 걱정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장면으로 우리는 그들 또한 마음속에 불씨를 품은, 진정한 의미의 '동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계속해서 희망과 함께 살아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는 한, 이 세상에 진정한 종말은 없기 때문이다.

비고 모텐슨의 연기력 또한 아주 인상 깊었는데 나는 영화의 수많은 장면 중 유독 한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부자는 며칠간 음식을 찾지 못해 굶주린 상태였다. 비고는 절망 직전까지 갔고 바로 그때 그는 낡은 피아노 한 대를 찾게 된다. 부인과 함께 피아노를 치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순간적으로 떠올랐고 비고 모텐슨은 완벽한 연기력으로 한 남자의 무너짐과 처절한 슬픔을 표현해냈다. 그의 눈물로 가득한 두 눈을 나는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긴 영화를 한 줄로 정리해보자면, 더 로드는 12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묵직하지만 답답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무거운 주제를 잘 표현해 냈고 개인적으로는 원작 소설을 충실하게 잘 재현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무대를 극한의 상황 속에 설치하는 것을 통해 『로드』는 독자가 소설 이야기 속에 내포된 풍부한 주제와 생각거리를 끊임없이 고민 할 수 있게 한다. 인간성의 악함과 약함, 그리고 인간사회의 위선과 가식을 비판한 매카시는 우리가 차가운 절망의 현실 속에서도 선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소설 속에 세계를 닮은 듯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 하나의 연결된 스토리 라인이 아닌 한 조각 한 조각 조합해나가는 전개 방식, 마치 생존자의 일기를 보는 것과도 같은 독특한 이야기 구조 등 여러 가지 장치로 매카시는 종말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절제된 스타일로 풀어나가 사람들의 감정을 최대치로 이끌어냈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까끌거리는 모래를 먹은 듯 어딘가 답답하고 개운치 않았다. 하지만 그 느낌이 전혀 싫지 않고 오히려 조금 벅차왔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텁텁한 모래 바람이 휘몰아 친 후 모래 언덕에 남게 되는 물결무늬처럼, 이 책은 나의 마음속에 잔잔한 흔적을 남겼다.


[한선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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