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연말이라 해보는 동기부여에 대한 의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12.2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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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2018년이 끝나간다. 12월 말, 밀려드는 약속에 참석하면서도 틈틈이 생각해본다. 내가 올해를 잘 살아왔는지, 작년보다는 좋았는지, 내년에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다이어리를 고르고, 새해 목표를 세우고,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만약 내가 학생이라면 내년 교실이나 학교 배정을 고민했을 것이고 특히 수험생이었다면 간절하게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생이라면 연락을 기다리고 있거나 내년 상반기, 혹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미 직장인이라면 올 한해도 무사히 버틴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의 커리어를 고민하고 있었겠지.


각자의 고민으로 깊어가는 이 겨울밤에,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삶은 꼭 한 편의 드라마가 ‘되어야만(have to) 할까?’

우리는 너무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들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딱 2주 전인 12월 8일, 체인지 그라운드라는 회사에서 시행하는 ‘빡독’ 프로그램이 열렸다.  무기력한 연말 증후군을 몰아내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참가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약 6시간 정도 책만 읽으며 주는 밥을 먹고 중간 중간 강연도 듣는 시간이었다.


원래 목적은 떨어진 집중력 때문에 읽기 어려웠던 두꺼운 책을 절반 이상 읽는 것이었지만 의외로 밥 타임 이후 진행하는 15분 강연이 하이라이트였다. 참가자들 중 선정된 일부가 이번 달의 주제인 ‘새해다짐’에 대해 짧게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그들의 말은 그 사람의 삶을 닮은 채 공간에 울려 퍼졌다. 내용은 동기부여 기업의 행사에 참가한 분들답게 하나같이 대단했다. 내가 집중한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니었지만.


대단한 사람은 많다. 역경 속에서도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방송에서, 책에서, 주위 사람들의 말에서 종종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그렇게 행동하면 삶이 달라질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들의 실천 방법이나 라이프 사이클을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할 수 있어!”


빡독 프로그램의 일반인 강연에서 내가 감동받았던 지점은 그가 보여준 그의 삶 자체였다. 아직 이 때의 영상이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나중에라도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과체중이었지만 몇 개월 동안의 달리기로 체력을 다지고 약 10km의 마라톤을 성공한 남성, 딸이 말한 ‘나도 엄마처럼 되는 거야?’에 작더라도 다시 일을 하기로 결심하신 어머니, 일흔이 넘는 고령임에도 과거의 영어를 살려서 자기소개를 하시고 종갓집 맏며느리 생활과 서툴러도 당당했던 미국 대학원 시절을 얘기 해주셨던 할머니를 보았다.


동기부여 방법론이, 그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환경을 가지고 있고 변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모두 다르다. 때문에 그가 나보다 얼마만큼의 노력을 더 했는지, 무엇을 더 경험했는지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내가 내 환경에서 어떤 노력을 했고 그로인해 무엇이 변화했는지 ‘차후’ 느끼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래서 체인지 그라운드를 비롯한 여러 동기부여 영상들, 책들, 강연들 모두에 물음표를 던져본다. 동기부여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질문을 하고 싶다.




01 성장의 드라마



TV 프로그램 중 오디션이 대표적인 드라마다. 역경을 거쳐 우승을 거머쥐는, 혹은 우승에 준하는 인지도를 얻은 사람들이 꿈에도 꾸지 못했던 데뷔를 하고 꿈을 이룬다. 자기 계발서도 그렇다. 어린 시절 읽었던 성공신화들은 실로 위대했다. 삼고초려를 넘어 구고초려하며 막대한 보험 계약을 따낸 사람, 시골 깡촌에서 태어나서 수많은 형제들 틈바구니에서도 죽어라 공부한 끝에 인정받는 직업군-의사, 교수, 전문기술자 등-에 들어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유명한 <데일리 카네기의 인간관계론>도 있었다.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명사들의 위인전이나 <시크릿>, <꿈꾸는 다락방> 등 한 때 유행한 책들도 있었다. 유튜브나 오프라인에서의 동기부여 강연들도 비슷하다.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쉽게 감동한다. 그리고 때로 생각한다.


“저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해내다니,

나도 할 수 있어!”


삶은 종종 드라마틱(dramatic)하다. 그런데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과 ‘그래야만 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나는 할 수 있지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가 나올 수는 있지만 드라마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극적인 엔터테인먼트로 환원시키면 곤란하다.


우리가 보는 방송, 책, 강연은 그 사람의 삶의 편집이다. 재미없고 지루한 부분은 잘려나가고 이야기의 서사, 기승전결을 맞춘 일부분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삶과 당신의 삶은 그렇지 않다. 일상은 지루하고 공부는 지겹고 일은 힘들고 관계는 어렵다. 이 부분이 삶의 다수고 드라마도 없다. 만약 저런 이야기를 나의 것으로 맞추고자 한다면 생기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


자꾸만 불안해지고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 같고, 내가 어디쯤 왔고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내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강박적으로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나의 잘못인가? 성장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내가 의지가 약하고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이라?




02 성장하는 삶



성장의 드라마는 의심이 들지만 성장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변화하고자 노력하는 것과 그것이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나부터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의 힘을 느꼈다. 성격적인 편협함과 부족한 인식은 지속적인 반성과 주위의 피드백을 거치며 조금은 달라졌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세상도 도전과 만남으로 넓어지고 있고 사람에게 마음 주는 것도 연습을 통해 가능해졌다.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가만히 있을 때, 삶이 나빠질 확률은 95% 정도는 된다. 내가 가만히 있기를 원해도 내 내면은 가만히 있지 않고 외부의 자극-사람들과의 만남, 세상의 변화-에 의해 계속 움직인다. 여기에 안 변하겠다고 발버둥치고 버텨봤자 나중에 그 반동은 스스로가 고스란히 뒤집어 쓸 뿐이다.


즉 나는 ‘성장’이라는 한 단어에 담긴 무수한 생각들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랑은 믿지만 사랑의 드라마는 ‘드라마’로 볼 수 있듯, ‘성장’에 대해서도 맹목적인 믿음 대신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 삶이 드라마 같지 않다고 해서, 모두가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데 내가 할 수 없다고 해서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03 드라마와 삶



나는 동기부여 콘텐츠-그것이 강연이든 책이든 뭐든-를 보면 더 약해지는 기분이 든다. 저렇게 강렬하게, 열성적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짜임새 있고 관리하고 정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이 약하게 느껴지고 무력해진다. 하루하루의 철저한 시간 관리를 못하는 삶, 삶을 불태워서 반드시 좋은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가?


물론 누구도 가치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과 개인에게 은근히 그런 생각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은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근대는 염세주의에 그렇게 관대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았다. 19세기 초부터 서양의 서점들은 자수성가한 영웅들의 자서전이나 아직 자수성가하지 못한 사람들을 겨냥한 조언집, 인격을 일괄적으로 개조할 수 있고 금세 엄청난 부와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훈담으로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또 의도와는 달리 그들을 슬프게 했다.


(앤서니) 로빈스의 모범을 따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로빈스도 말하듯이 ‘우리 모두가 꿈을 성취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면 말이다.


능력과 세속적 지위 사이에 신뢰할만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늘어나면서 돈에도 새로운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지능과 능력만을 기초로 위엄 있고 보수 많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이제 부가 품성의 온당한 지표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부자는 단지 더 부유할 뿐 아니라, 더 낫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는 성장하지 못한 개인을 탓하고 개인의 자질과 품성과 인격을 의심한다.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해 분투하고 성장의 드라마는 이런 불안을 저격한다. 분명 개천에서 용 나는 사람이 있으니 너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너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너의 용기나 창의력, 지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니까 학원을 다니며 끊임없이 배우고 인턴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직무 능력을 입사 전부터 미리 쌓고 너가 내성적이든 말든 사람들과 쾌활하게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시작과 끝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말과 성장하라는 압력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순간적으로 그럴듯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조차도 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러지 못한 내 자신을 원망하고 싶지 않다. 한 때는 저 말에 위로 받고 저 말에 의지하여 노력한 적도 많았었다. 이후 오랫동안 허무함이 몰려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연말을 맞이해 동기부여와 성장에 대해 의심해보고 다시 한 번 이런 삶이 나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되돌아보았다. 이대로 새로운 희망에 부푼 채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역시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알았다! 그래서 뭐?”


‘우리 모두가 꿈을 성취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면 알고 바뀌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겠지만 민주적이지 못한 성과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부족하다. 사회가 강요하는 성장과 혁신의 드라마는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만 하기  때문에 믿는다. 성장이 ‘드라마’라는 생각이 내가 처음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른 누군가도 분명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거라도 매달려서 시험을 준비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경험’이라는 것을 쌓고 면접을 보고 지금의 불안정한 직장 외의 다른 길을 찾아보며 내일의 희망을 찾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이 성공을 향한다고 믿었던 길을 오늘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걷고 있다. 길고 길게 글을 쓴 나도 새해가 되면 토익 갱신을 준비하고 요즘 세상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약간의 저항으로, 맹목적인 믿음을 버리고 자신의 이성과 사람들에게 기대어 위태롭게라도 서 있을 뿐.


이 글이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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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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