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The100dayproject, 나 자신에게 건네는 100일의 약속 -4주차 [문화전반]

Day 22 ~ Day 28
글 입력 2018.12.2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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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100DayProject
#100daysofpracticing

지난주 내내 종이에 연필로 소묘를 했더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연필을 잡기가 조금 지겨워졌다. 그래서 이번주는 오랜만에 컴퓨터 그림을 좀 연습해야지 하고 내심 속으로 결심하고 있었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묘하게 손이 또 종이로 간다. 내내 바이올린을 그리다가, 이번엔 뭘 그려볼까 생각하니 계속 악기 생각만 난다. 익숙해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Day 22 : 트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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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무얼 그릴까 고민하다가 트럼펫을 그려보았다. 트럼펫은 내 대학교 친구가 배우고 있는 악기이다. 나는 막학년 졸업을 앞두고 이 친구를 따라 교내 아마추어 윈드 오케스트라인 백령 윈드에 입단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태어나 처음 불어보는 금관악기를 잡고 연습해, 졸업 전 마지막 가을에는 교내 아트센터 메인홀에서 정기 연주회 무대에 올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4년의 대학생활 동안, 이 친구는 끊임없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 친구들과 함께 공유했다. 나는 이 친구 덕분에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들을 많이 했고, 그것들 대부분 지금의 나를 이루는 많은 요소들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것들이다.

나는 졸업 이후로 내 악기를 불어보기는 커녕 어디서 지나가다 본 적도 거의 없다. 유포늄이라는 특이한 악기는, 나 같은 아마추어가 개인 악기로 사기엔 비싸기도 하고, 어디서든 흔히 연주되는 악기도 아니니까. 언젠가 다시 불어보고 싶다는 마음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 친구는 다르다. 친구는 개인 악기도 준비해서 요즘도 레슨을 받고 연주도 하는 모양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멋지지 않았던 적이 없는 내 친구는, 음악을 할 때도 참 멋있다.

두 번째 트럼펫은 로터리 트럼펫이라는 악기이다. 흔히 생각하는 트럼펫과는 모양새도 조금 다르고, 연주법도 다르다. 옆으로 눕혀서 연주하며, 버튼도 호른처럼 누워있다. 저 동그란 버튼이 마음에 들어서 그려보았는데, 알고보니 밸브의 뒷면, 그러니까 관의 바닥 마개였다.



Day 23 : 트럼펫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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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오늘도 트럼펫을 그렸다. 뭔가 금관악기는 복잡한 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파이프 라인 일러스트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선 느낌을 나타내보고 싶었다. 유심히 들여다보니 악기 배울 때 흥미롭게 보았던 것들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1번 피스톤과 연결된 관, 2번 피스톤과 연결된 관. 각 관의 길이가 음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것 등등.

금관악기를 좋아한다. 어렸을 땐 나무 느낌이 좋아서 현악기를 더 좋아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라서 좋았다. 금관악기를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백령 이후다. 직접 만져보고 연주해본 악기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차가워 보이는 금속이 따뜻한 소리를 내는 것도 좋았고, 추운 날 연습실 안에서 내 숨 불어 악기를 데우는 것도 좋았다. 금속 특유의 광택이 따뜻한 빛을 낸다고 느꼈을 때, 내가 금관악기를 좋아하게 된 걸 알았다.



Day 24 : Bob Mar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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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예정에 없던 국내여행을 하게 되었다. 내가 속해 있던 백령 윈드 오케스트라의 스물다섯 번째 정기 연주회가 돌아오는 월요일 저녁이어서, 원래는 일요일인 내일 춘천에 내려가 오랜만에 옛 단원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거기에 뜬금없이 추가된 오늘의 일정은 대전 여행. 그리고 대전에서 또 뜻밖의 이유로 천안으로, 천안에서 정말 예기치 않게 내가 현재 사용중인 <라이트형제 다이어리>를 제작한 열정에 기름붓기 팀의 오프라인 공개작 <밥 말리 다이어리>를 손에 넣기까지. 오늘은 뜻밖의 일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게 참 좋았다. 때로는 충동적인 선택이 색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것. 늘 계획한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꼭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걸 배운 하루.
 

밥 말리는 영국인 군인 아버지와 자메이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의 결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밥 말리는 아버지 없이 자라야했다. 그는 자신을 기르기 위해 고되게 일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느날 이렇게 말했다.

"우릴 버린 아버지는 참 나쁜 사람이에요. 그렇죠?"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냐.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단다. 그 나름의 훌륭한 사람이었어."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테레사 수녀, 성인들을 스치듯 지나쳤을 거라는 표현을 들은 적 있다. 나는 저렇게 나를 지나쳐간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Day 25 : 춘천의 한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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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약속대로 춘천에서 2015년에 함께 연주회를 했던 백령 윈드 오케스트라 친구들을 만났다. 이제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회로 설계를 하고 있는 클라리넷 오빠의 차를 타고 2클라, 1플룻, 1유포늄이 춘천에서 처음으로 이행한 일정은 춘천 외곽에 위치한 스튜디오 카페에서 먹고 마시고 사진찍고 놀기. 친한 과후배의 가족이 운영하는 곳인데, 1층에서는 사진을 찍고 2층에서는 카페를 운영한다. 정성들인 인테리어 덕분에 모든 공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정성이 들어간 음료와 디저트에 몸도 마음도 행복해지는 시간이었다. 너무 정신없이 놀다보니 그림 그릴 시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숙소에 들어와 새벽까지 놀다가, 잠들기 전 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뒤적이며 그린 그림.

너무 오랜만에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는 여전히 대학교 4학년 그 때 그대로인 것 같은데,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일년에 두세 번이 채 안 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Day 26 : 백령 윈드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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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추억 중 하나, 백령 윈드 오케스트라. 대망의 정기 연주회 날이었다. 원래는 늘 11월 말에 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 2주나 뒤로 미루어졌을까. 그래도 아르바이트 쉬는 날인 월요일이 공연이라 마음 편히 보러 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마추어들의 연주지만, 내가 사랑하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이라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멋있고 대견하고 아름다웠던 오늘의 공연. 오랜만에 내 첫 연주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저 좋았다. 반가운 얼굴들을 근 3년 동안 가장 많이 만났다는 사실도 좋았다.



Day 27 : 체력 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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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마지막 일정으로 남은 멤버들과 점심을 먹은 뒤 2시간 동안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르바이트에 출근했다. 정신없이 마감하고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돌아오니 마음은 행복해도 몸은 쓰러질 것 같다. 도저히 그림을 못 그릴 것 같은 손을 들어 장난 같은 낙서를 끄적여보았다.

오늘은 왠지 시도때도 없이 울컥해서 집중을 잘 못했다. 친구들과 점심 먹은 게 불과 조금 전이었는데, 정신없이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게 묘하게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기숙사 통금시간 되도록 함께 있던 사람들과 하루, 한나절 어울리기 위해 서로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것. 시계를 보며 돌아갈 시간을 살펴야 하는 것. 한때는 함께 있는 시간이 현실이던 우리가 각자의 현실을 살고 있다는 것들이 무척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내가 그 지나간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건지, 방금 보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심경을 털어놓았더니, 사장님께서 마감청소를 하는 동안 라라랜드 사운드 트랙을 틀어주셨다. 세바스찬의 말처럼 미래에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현실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 아닐까. 각자의 꿈을 위해 살다가, 한 번쯤 이렇게 모여 꿈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Day 28 : 내 생애 첫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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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도전 시작 이후 처음으로 하루를 건너뛰었다. 이유를 말하자면 피곤했기 때문이다. 100일 프로젝트 본부에서는 하루쯤 쉬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하루를 쉬면 내가 계속해서 쉴 이유를 찾을 것 같아서 조금은 의식적으로 하루라도 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막상 쉬어보니 솔직히 좋다.

2015년 정기 연주회가 끝나고 단원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그려보았다. 사실 이 사진에는 큰 비밀이 하나 있는데, 가장 중요한 멤버인 내 친구 둘이 옷 갈아 입는다고 큰 단체사진에 불참하는 참사가 있었다. 뒤늦게 남은 사람들이랑 찍기는 했는데 어딘가 아쉬운 상황에, 포토샵 능력자였던 친구가 본인 포함 불참자 두 명을 합성으로 단체 사진에 넣은 것이다. 사진으로 봐도 감쪽같은데, 이렇게 그려 놓고 보니 더 감쪽같다.

언젠가 이 사진에 함께한 사람들과
다시 모여 연주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28일차를 지나며


처음 도전을 시작할 때는 뭘 그려야 하는지 자체가 매일 고민이었다. 내 연습을 위한 그림임에도, 어딘가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통일성 있는 주제를 골라야 할 것 같고,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날들이 늘어서인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바뀌어서인지, 그림을 대하는 마음도 바뀐 것 같다. 아침 일찍 그릴 땐 뭘 그릴지 한동안 생각해야 했는데, 잠들기 전 그림을 그리려고 앉으면 자연스레 아무거나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게 된다. 정말 자유 주제에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든다.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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