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지는 별] Outro. 먼 곳에서 사랑을 보냅니다

글 입력 2018.12.19 20: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일출1.jpg
 

올해가 밝았을 때 처음 세웠던 목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평소 주는 것에 비해 받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기에, 이제부터는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해보자고 다짐했다. 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과 나의 생각과 다른 이들을 포용하는 태도도 갖추고 싶었다. 올해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목표 달성 여부를 점검해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몇몇 떠오른다. 사랑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보다 사랑받은 기억들이 무수히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올해도 역시 주는 것에 비해 받는 것이 많았다. 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일까?



'나'의 이야기


에세이를 쓰기로 한 것은 애초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툭 튀어나온 아이디어다. 원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서툴기 때문에 주관적인 생각을 형식 없이 자유롭게 풀어내는 에세이의 형식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공적인 성격이 강한 비평에 익숙했다. 글이라는 것은 최대한 보편적인 독자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글에 ‘나’라는 주어가 수도 없이 등장하는 것도 낯설고 어떤 때에는 일기를 내보이는 것 같은 조심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틀린’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신반의하다.


2016021500001_1.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글을 쓸 때 보통 개별적인 사례들을 모아 거시적인 시스템과 연관을 지으며 승화시키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그러다 보니 미시적인 개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소홀했다. 시스템을 마구 비판하면서도 그 속에서 상처를 받는 이들의 마음 깊숙한 곳을 어루만지지는 못했다. 상처를 직면하는 데서 그쳤을 뿐, 그것을 인간 대 인간의 감정으로 대하는 것까지는 미처 도달하지 못했다. 이러한 태도는 아무래도 목표했던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의 상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지 못했다. 나를 가리는 시스템에 대해서 한없이 저항적이었지만 그래서 나의 어떤 점이 가려지는지에 대해서는 무신경했다.

에세이라는 아이디어는 그렇게 떠올랐다. 시스템 말고도 시스템에 가려진 '나의 삶'을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나를 가리는 것을 하나씩 떠올렸다. 여성이기 때문에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려졌고 특정한 표정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감정이 가려졌다. 좋아하는 마음은 손가락질당했고 삶마저 전시되는 사회에서 느린 속도와 작은 크기의 삶은 정해진 규격에 부딪혔다. 나는 여러 방면에서 ‘비주류’가 되었다. 그렇게 정의되는 동안 내 삶은 어떠한 영향을 받았으며 어떻게 성장했는가? 한 줄 한 줄 적을수록 나를 가리던 얼룩은 지워졌다. 나는 생각보다 큰 사람이었고, 나를 가리던 것들을 걷어낼 권리가 있었다. 사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목표를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HS_Blog_031217_hero.jpg
 

사랑을 목표로 삼고 실천해나가는 한 해 동안 유독 사랑을 많이 느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향하던 사랑들은 항상 있었는데 내가 사랑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그제야 그것이 보였던 것이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러나 제자리서 빛나고 있던 별들이었다. 사랑은 상대의 세계를 껴안는 것이며 그만큼 나의 세계도 넓어진다. 나는 넓어진 품에서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많이 받았던, 받았을 사랑이지만 올해의 그것이 유독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누구보다 사랑하기 힘들었던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지만 그것에 의구심을 품던 이전과 달리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목표는 실패하지 않았다.

 

가려지는 별을 밝히며


에세이를 막 시작했을 때, '나를 모르기로 했다'라는 선언을 한 적이 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반갑게 맞아들이기로 한 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에세이를 마치는 지금,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여전히 예상하지 못했던 생각이 들고, 행동을 한다. 극복되지 않은 상처도 있고 지워내고 싶은 얼룩도 남아있다. 그러나 내 삶은 그렇게 완성되고 있다. 순간순간을 마침표로 완결하고 또 다른 물음표를 그리러 문장을 적는다. 답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자그마한 돌멩이가 저마다의 밝기로 반짝이는 순간이 늘어간다. 미지의 별들을 발견할수록 나의 우주는 넓어지고 있다.

나의 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밝혀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들은 또한 내가 따뜻한 시선을 간직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리라 다짐한다. 누구나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누구나 자신의 하늘에 별을 둘 수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이 소중한 공간을 함께 나누는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하늘을 간직해달라. 먼 곳에서나마 애틋한 시선으로 함께하겠다. 함께 빛을 내자. 저 가려지는 별들을 밝히며.




전문필진.jpg
 

[조현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