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Last. 마지막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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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지금와서 네가 남긴 글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정말 날 것이구나.
1.
서툴게 시작했더니 그렇게 마음을 쏟고도 마지막마저도 너는 서툴렀구나. 누가 서툴다는 말을 안 좋은 거라고 만든거니, 나는 서툰 너도 참 좋은데. 방황이 취미이긴 하나 보다. 두번째 방황을 하면서 첫번째 방황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드네. 별 생각 안들어. 나는 그런 사람인가보구나.
나는 그런 사람인가
너는 그런 사람이야
기이하게 관절을 꺽어가면서 허공에서 추락하고 날카롭게 다가오는 틀에 끼워 맞추려는 너보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너가 더 좋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아무도 몰래 퀴퀴하고 질퍽한 웅덩이에 얼굴을 박아버리는 너보다 아무 생각 없이 공기를 마시는 너가 더 좋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날카로운 칼을 들고 모난 너의 모습을 아프다고 울부짖으면서 긁어내고 잘라내는 너보다 그냥 모난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어설프게 기어 다니는 너가 더 좋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직선 위만 걸어다니려고 눈동자를 한 곳에 찔러 넣으려는 너보다 보이는대로 이곳 저곳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너가 더 좋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너는 그런 사람이야.
그런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이제야.
이제야.
2.
아마 이제 좀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건가? 라고 또 바보 같이 희망을 품었을 네게는 조금 미안한 말일까. 어쩌면 너는 겨우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벗어날 수 없는 작은 소원을 품은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겨우라는 말이 어울릴 수밖에 없는 게 너라는 생각은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유일하게도
글 속에서 마구 변하는 너를 만나 지금의 내가 있지만, 유일하게도 '겨우'라는 말을 끝내 못보낸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것만 유일하다. 나는 그런 내가 더 애정이 간다. 좋은 게 아니라, 그냥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은 늘 그래온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다.
3.
너는 정말 모났다. 삐죽삐죽, 정말 어떻게 안아줘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모가 났다. 네가 모가 난 모습이 바다 속의 성게처럼 멀리서 바라보면 순한 덩어리로 보였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하기도 한다. 너는 성게처럼 규칙적으로 모나지도 않았다. 지나치게 큰 삼각뿔과, 지나치게 여린 바늘과, 지나치게 잔인한 칼날과, 지나치게 꺾인 송곳과, 그렇게 지나치게 크고, 지나치게 작은 선단들이 너를 둘러싸고 있었다. 거울을 들고 있는 내가, 이 첫번째 글들의 끝에서 내가 겨우 말할 수 있는 나의 한마디가 그렇다. 누가 이런 모습의 덩어리를 내게 준다면, 사실 반갑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모습이 나만 마주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곤 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너는 그런 사람이다.
4.
그런 너를 안아 줄 수 있는 건 안개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모든 우연은 그렇게 늘 의미가 없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그렇게라도 너를 안아볼 수 있어서 이 글을 끝내 놓지 못했나보다.
아마 나는 너를 계속 안아주고 싶었나 보다
5.
계속 그런 상상이 든다. 이 글의 시작에 있던 네게 이 편지 같은 글을 보여주면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그리고 또 다른 시간이 지난 후의 너가 더 낡았을 이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굳게 잠겨버린 과거과 아직 열리지 않은 미래 사이에 갇힌 나는 그렇게 미련처럼 손에 상처를 내서라도 유리파편을 문에 끼워놓고 오는 사람이다. 따끔거리는 손을 품고서도 그래도 좋다고 혼자 웃어보는 사람이다.
그 때의 너는, 그 후의 나는 문들을 어떻게 열고 닫고 있을지 괜히 또 상상을 한다.
6.
지금의 나는 안개보다 더 행복한 것을 지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나보다 저 문 너머의 내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나는 알 것 같다
7.
진짜 거울을 보면서도 그 안에 맺힌 너를 안아보려고 노력하던 네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 많이 놀랐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네가 더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8.
그래도 너의 서툰 언어들은 나를 늘 방황하게 만들었다.
너무 어리고, 날 것이고, 후 불면 날아가는 먼지들처럼 어찌할 줄을 몰랐던 언어들이었다.
사과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괜히 장난처럼 고백을 남기고 싶다. 마지막이니까.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리고 아마 나도 그런 언어들을 여전히 쓰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나는 그 서툰 언어들 마저 데려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것도 나고, 나였고, 너가 있었으니까 내가 있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9.
아주 그냥 울고 웃고 난리가 났다.
나는 그런 사람인가보다.
10.
아,
1월 17일
당연하게도 특별하다는 너의 생일 날
갑자기 너도나도 의무적이든 진심이든 너의 날이라고
반짝이는 설탕을 한 줌씩 너의 주변에 흩뿌려주는 날
너는 돌연 "특별함을 버리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고백했다
아무도 모를 차분함을 맴돌며 생일이라는 하루를 보내던 너는
아무도 없는 밤 그 끝에서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아무렇지 않게 특별하다는 것을 그 시간에 버려두고 왔다.
나는 그런 네게 고맙다.
버릴 수 있었던 네가 나라서 고맙다.
아름답지만 끔찍하게 무거웠던 그것을 버릴 수 있던 네가
나라서 행복했다.
그때의 너는 가장 반짝거리고 아름다운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너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비로소 네가 내가 되었다.
비로소 너의 것을 찾았다.
그날, 특별함을 버려서 가장 소중한 날이 되었다.
나는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그 때의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11.
"내가 얼마나 솔직해져야 할까"
라고 물어보면서도 거울 앞을 벗어나지 않았던 네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낯선 질문과 생경한 두려움을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안아온 네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마지막에 네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정말 고마웠다고.
정말, 고마웠다.
나야.
0.
마지막으로 문 너머에 있을 너에게 딱 하나만 부탁할게
이 글만큼은 오롯이 그대로 올렸으면 해
마지막이라도 그대로의 나를 한번 완성하고 싶어
아마,
너에겐 미완성일 나를 이미 지나간 지금으로서 완성해 보고 싶어.
그러고 나서 종이 비행기 하나를 저 뒷편으로 날려줘
그렇게 해준다면 닫힌 문 뒤에서 나는 기뻐하고 있을게
*
지금까지 {Untangle}을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이대로 끝내기보다는,
한 번 더 찾아와
{Untangle}의 작가노트를 공개하려 합니다.
온전히 {Untangle}을 매듭짓는 시간을
이 글을 함께해주신 분들과 함께 바라보고,
이 덩어리에서 조금 더 순간의 파편들을 수집해보고자 합니다.
작가라는 이름은 여전히 부끄럽고,
그래서 작가노트라는 말은 더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아마 몇 달 더 성숙해진 모습의 제가 담았을
작가노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Untangle}이라는 이름의
서툰 흔적들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노트에서 만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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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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