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운 겨울, 따뜻한 차 한잔 같은 <요노스케 이야기> [영화]

글 입력 2018.12.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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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울이 싫다. 이유는 너무도 단순하게 추워서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 겨울은 정말이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유난스럽게 덜덜 떨리는 턱과 추위를 이겨내고자 본능적으로 한껏 움츠러드는 어깨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집을 그립게 한다. 게다가 추위를 견디려고 옷을 많이 껴입으면 몸이 어찌나 둔해지는지. 그뿐만 아니라 해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것도, 한 것도 없이 한 해를 보내줘야 하는 시기인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쓰고 나니 겨울이란 계절, 나랑 정말 안 맞는다.

 

그리고 지금, 12월이다. 본격적으로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시간. 겨울이 와서인지 왠지 울적해지는 요즘이다. 몸이 추운 건 어쩔 수 없고 마음이라도 따뜻해지자고 본 영화가 <요노스케 이야기>였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겨울처럼 삭막해진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고 위로해주는 따뜻한 영화였다.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요노스케를 추억하는 사람들



<요노스케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요노스케’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요노스케와 함께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요노스케의 이야기이다. 요노스케를 기억하는 이들은 과거 요노스케의 친구 혹은 연인이었던 사람들이다. 아, 요노스케가 첫눈에 반한 사람도 빠트리면 안 되겠다. 여하튼 이 사람들의 추억이 모여 도쿄에 갓 상경한 20대 요노스케를 담은 <요노스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1987년 도쿄에서 요노스케를 만난 이 사람들은 그 뒤로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후 문득 요노스케를 떠올린다. 누군가가 문득 떠오르는 데는 언제나 그렇듯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대학교에 갔다가, 길을 가는데 그와 비슷한 사람을 보아서, 라디오 사연을 읽다가, 그냥 그가 그리워져서 그의 생각이 난다. 그렇게 문득 떠오른 그의 생각에 그들은 추억에 잠긴다. 그들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요노스케 이야기는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다. 바로 그를 떠올리는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기억 속 그때 그 요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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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들의 추억을 빌려서, 벌써 이름만 수없이 등장한 우리의 주인공 요노스케를 만나보자. 요노스케는 이름부터 웃음을 주는 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요코미치 요노스케. 그가 자기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사람들이 실례를 무릎 쓰고 웃는 것으로 짐작해 보건대, 이 이름은 굉장히 특이하거나 촌스러운 이름인 듯하다. 이름마저 유쾌한 그는 참 순박하고 티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어리숙하고 엉뚱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밉지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웃음이 나니 그것조차 그의 매력이겠다.

 

사람들이 요노스케를 회상하며 웃는 것은 단순히 그의 이름이 웃기고 행동이 엉뚱해서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계산 없이 베푸는 그의 따뜻함 때문이리라. 그는 친구가 예상치 못한 여자 친구의 임신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친구를 찾아가 고민을 들어주고 이사하는 것도 도와준다. 여기까지는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싶겠지만, 그는 친구에게 선뜻 돈까지 빌려준다. 돈을 버는 직장인이라면 몰라도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사람이 돈을 빌려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요노스케는 순간의 고민도 없이 그렇게 한다. 나는 그다지 돈을 많이 안 쓰니 괜찮다면서.

 

우연한 계기로 친해진 다른 친구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혀도 그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경멸 혹은 당혹스러운 시선을 예상했을 친구에게 요노스케는 그저 먹고 있던 수박을 쪼개어 건네준다. 고민을 털어놓고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요노스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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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으로서의 요노스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툴지만 순수하다. 그는 그와 같이 순수한 부잣집 딸 쇼코와 풋풋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의 연애를 한 단어로 표현해보자면, 담백하다. 로맨틱 코미디처럼 마냥 달지도 않고 멜로처럼 짜지도 않다. 그래서 여느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들어지지는 않지만, 이들의 꾸밈없이 솔직한 마음이 예뻐서 자꾸만 웃음이 난다. 요노스케가 걱정할까 봐 쇼코가 다리 다친 것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을 때 요노스케는 이렇게 말한다. "걱정을 하는 게 나의 일이니 걱정시키라고" 진심이 담긴 그의 말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구의 추억에서 만나건 간에 요노스케는 꾸밈없이 밝고 따뜻하다. 요노스케의 친구는 이런 말을 한다. "녀석(요노스케)이랑 만난 것만으로도 뭔가 너보다 상당히 득 본 것 같아" 이런 평을 받는 사람을 다소 진부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하자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흘러도 그에 대한 기억은 따뜻한 차 한 잔처럼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요노스케,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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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를 만난 후로부터 세월이 지나고,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잘살아간다. 요노스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에 대한 의문은 다소 뜬금없지만,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에서 해결된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 사망한 故 이수현 씨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그 사건 당시 이수현 씨 외에도 도움을 주다 사망한 사람이 한명 더 있었다. 일본인 세키네 시로 씨인데, 그분을 모티브한 캐릭터가 바로 요노스케이다. 이제 다들 짐작했겠지만 그런 이유로 요노스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다.

 

이 영화의 특이하고도 매력적인 점은 요노스케의 죽음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주인공의 죽음이며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로운 죽음인데도 말이다. 다른 영화였다면 이 부분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무심하게도 요노스케의 죽음을 라디오로 알린다. 아무도 없는 빈방의 라디오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아마노테선 요오기역에서 일어난 인명사고 속보입니다.......

 

그 이후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요노스케가 몸을 던지고 목숨을 잃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장례식에서 슬프게 우는 요노스케의 가족, 지인의 모습과 영화를 압도하는 비극적인 배경음악도 찾아볼 수 없다. 영화는 그의 죽음에 관한 설명을 자제한다. 그럼으로써 관객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동시에 극의 밝은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관객은 영화 중간에 난데없이 주인공의 죽음을 통보받은 격이다. 이토록 불친절한 설명에도 관객들은 영화에 개연성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인공이 요노스케인 까닭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요노스케여서 친절한 설명이 없어도 그의 죽음이 이해가 간다. 요노스케였다면 그랬을 것 같다. 그의 선택이 이해 가지만 그럼에도 눈물이 고이는 것은 아까도 말했듯 그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


평범한 한 사람의 소소한 이야기로 채워진 영화였다. 잔잔했다. 그러나 지루하진 않았다. 160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동안 태평하게 웃는 요노스케를 보며 나도 걱정 없이 웃을 수 있었다. 슬픈 결말임에도 끝에 남는 것은 눈물이 아닌 미소다. 그렇기에 슬픈 결말의 영화보다는 따뜻한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그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어쩐지 그가 그리워진다.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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