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당신만의 특별한 사진전 [전시]

노만 파킨슨보다 너
글 입력 2018.12.02 21: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Norman Parkinson 2.jpg
 


노만 파킨슨(Norman Parkinson, 1913 - 1990)

실내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에서 사진 촬영을 한 영국 패션 사진계의 혁명가.

그는 18세에 견습생으로 사진을 싲가했고, 3년 후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얻었다. 1930년대부터 '하퍼스 비자', '보그'같은 패션매거진에서 우아한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다. 1975년부터는 영국 왕실 사진가로 임명되었으며, 오드리 햄번, 폴 매카트니, 알프레드 히치콕 등의 셀러브리티를 사진으로 남겼다.


PR_NP_Vogue 1949.jpg



그 날

핸드폰의 배터리가 없었다. 하루종일 일정으로 바쁜 하루였다. 오전부터 팀플에, 오후에는 봉사활동이 있었던 탓이다. 세심함과는 거리가 먼 나는 20% 정도 남은 배터리로 하루를 연명했다. 팀플이 끝나자마자 봉사활동을 갔고, 봉사활동이 끝나자마자 전시회를 보러 홍대 상상마당으로 향했다. 길치라서 늘 지도를 보면서가는데 그날은 지도도 보지 못해서 불안했고, 체해있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전날 지도에서 어떤 빵집에서 골목으로 들어가야한다는 것이 기억에 남아있었기때문에 그 빵집을 한번 들러서 구경한 다음에 상상마당을 찾아갈 수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었던 그 날도 사람이 너무 많아, 상상마당 1층부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무거운 노트북과 전공 책 몇 권이 들어있던 백팩때문에 사람들을 헤치고 가기가 조금 힘겨웠고 피로했다. 계단이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다 전시회를 들어갔다. 7시에 입장 마감이라 조금 서둘렀다.

상상마당의 밖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입구가 조금 좁았다. 신기하게도 지하철 역사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안대를 밀고 들어가야 했다. 가방을 맡길 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수강생들만 맡길 수 있다는 표시에 약간 실망했다. 온종일 가해진 무게로 어깨가 너무 아프고 피로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서 전시회를 제대로 관람하지 못했다는 변명이다. 더 생동감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토요일은 내가 일주일 중에 가장 지쳐있는 날이다. 전날 설계 수업이 있어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날은 밤을 꼴딱 새우고, 금요일 날에는 늘 글을 쓰거나 팀플이 있어서 그 날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에 토요일 몰아서 쉬는 편이다. 그런데 토요일에 봉사활동이 있거나 팀플이 있는 날은 일주일의 피로를 전혀 풀지 못한 상태라서 거의 기절하기 직전의 상태였다. 얼른 보고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봤던 전시라, 영감보다는 기계적으로 봤던 것 같아 아쉽다. 그러나, <스타일은 영원하다.> 전시를 생각하면 그 날의 지친 내 모습이 떠올라 글을 쓰는 것도 다소 힘들다.


갤러리 5층_1.jpg



붉은 화려함

입구에 들어가니, Preview를 작성했을 때 봤던 사진이 크게 보였고, 노만 파킨슨에 대한 설명이 붉은색 벽에 적혀 있었다.

보통의 전시 공간은 흰색의 벽을 많이 사용한다. 왜냐하면, 벽 자체가 주제가 아니라, 전시 작품이 돋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노만 파킨슨의 <스타일은 영원하다.> 전시는 붉은 바탕의 벽을 사용해, 사진마저도 붉은 벽에 붙어있었다. 막 전시회에 입장하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갤러리 5층_2.jpg
 

왜 그의 전시회는 붉은가? 입구만큼의 찬란한 붉은빛은 아니지만, 관람 동선과 사진의 액자들이 모두 붉은색을 띠고 있다. 안내판도 붉은색의 테두리와 투명한 판에 붉은 글자를 넣어서 흰색과 붉은색이 대비되어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전시회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보일 만큼 깔끔하고 명시성이 뛰어나다.


PR_NP_Vogue 1958_1.jpg
 


그러나 평범함

그 화려함의 속에 담고 있는 것은 소박한 흑백의 사진들이다. 패션 사진계의 혁명이라는 아이콘의 이면에는 흑백의 작품들이 존재했다. 그 프레임 속에는 인물들이 평범한 장소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안내 설명에서는 "자연물이나 길거리의 이정표는 마치 그의 사진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고 되어있었지만 내 생각은 반대였다. 노만 파킨슨의 유명한 색채 사진과는 다르게 흑백 사진들은 그저 평범해 보였다. 

전봇대에 매달려 그네를 타는 아이들. 행군하는 군인을 놀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 그들의 얼굴은 사진 속에 담겼지만, 카메라를 쳐다보는 것 같지는 않은 그런 자연스러움이 보였다. 그저 어디에나 있는, 누군가의 평범한 얼굴을 엿본 것만 같았다. 그게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스트리트 포토가 아니었을까.


갤러리 5층_4.jpg


 
색깔을 가진다는 것

또 하나의 포인트는 사진이 흑백에서 점점 컬러를 띈다는 것이다. 흑백과 컬러 사진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따른 기술력의 진보인 것인지, 그의 사진에 대한 생각의 변화인지 궁금했다.

컬러 사진에 대해 찾아보니,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이 컬러사진에 대한 이론을 연구해서 1861년에 합성 컬러사진을 선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1935년 레오폴드 마네스와 레오폴드 고도스키가 실용적인 총천연색 정지 사진을 개발해 특허를 냈고, 그 컬러사진이 60년간 산업표준이 되었다고 한다.

노만 파킨슨이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게, 18세니까 1930년 즈음이고 3년 후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냈으니 점점 컬러사진으로 바뀌는 건 기술력의 진보에 의한 변화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어떤 과도기의 시대에 산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매력이 있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아마 새로 나온 컬러 사진에 엄청나게 흥분을 했을 것이다. 마치 터치폰, 폴더폰만 쓰고 알을 사용해서 인터넷에 접속을 겨우 했던 우리가 스마트폰 무료 와이파이로 어디에서나 인터넷에 접속해서 소통하게 되는 변화와 맞먹는 충격이 아니었을까.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컬러 사진이 가능했던 우리들과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스마트폰이 존재할 새로운 아기들은 아마 그 충격을 절대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로 인해서 아마 사람들은 기술력이 진보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를 실제로 배울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서 미래로 새로운 시대로, 누군가는 절대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미래를 열어내는 사람들의 힘은 얼마나 강한가. 빼어난 재능일지, 미친듯한 노력일지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런 세계를 가져왔다는 것.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그런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


갤러리 5층_3.jpg
 


불편함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극심한 피로를 느꼈던 부분이다. 첫째는 조명의 문제였다. 전시공간은 조명의 역할도 크다. 너무 빛이 많이 들어오면 작품에 손상을 주기도 하며, 너무 빛이 없으면 작품을 관람하는데 곤란해진다.


KakaoTalk_20181201_233008505.jpg
 

상상마당 5층이 늘 이렇게 조명이 작품에 직접 쏘아지는지, 전시회마다 바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번 전시는 내 눈높이로 조명의 빛이 반사되어 위아래로 전시된 부분의 위쪽 사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빛이 작품에 그대로 들어가서 내 눈높이로 들어와서 내가 빛을 보는 건지 사진을 보는 건지 몰라 저 멀리서 다시 관람을 해야 해서 안타까웠다.

두 번째로는, "내가 노만 파킨슨의 사진전을 보는 건지, 홍대 놀러 온 사람들의 사진전을 보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카메라 셔터 소리 속에서 전시회를 관람해야 했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는 건지 마는 건지는 내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내 앞에서 사진을 10장 정도 번갈아가며 찍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작품 앞에서 사진을 10장 찍고 그랬다. 덕분에 사람들의 인공적인 웃음을 많이 관람했다.


PR_Vogue Aug 1957 Cover_2.jpg
 

특히 색감이 예쁜 사진 앞에 있을수록 더 많은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타인이 전시회를 보지 못할 곤란함을 앞에 서서 보이는데도 꿋꿋이 셀카를 찍고, 상대방을 찍어주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엉망이었다.

일상에서는 쉽게 겪지 못할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사진기를 켜고, 그 순간 속에 있는 자신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한다. 여행을 가서나,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할 때나 사진을 찍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 사진을 돌아보며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 경험은 절대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전시회의 진정한 목적은 '자신의 패션쇼'가 아니라, 작가의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전시회를 누리는 방식이 점점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할 수 있다. 전시회 그 자체에서 얻는 지식이나 감정의 변화보다는, 그 전시회를 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애정을 즐기고 있다. 그러고는 집에 가서 SNS 계정에 올릴 것이다. 가득 찬 청춘을 즐기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끼면서.


갤러리 4층_1.jpg


같은 자리에서 다른 목적을 갖고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쯤 되면 전시회의, 어떤 공간의 본질이 무엇인가가 헷갈린다. 그들이 다른 목적을 갖고 그 자리를 즐기는 것을 비난할 수는 있는가. 왜냐하면, 그들 역시 전시회에 해당하는 값만큼을 냈고, 사진 촬영이 금지라는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 비난할만한 명목은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보이는 끝없는 사랑을 비난할 수는 있는가. 자신의 일과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일기를 쓰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들은 그저 사랑스러운 청춘을 즐기는, 아름다운 배경 앞에 서 있는 자신을 '일기'하는 것일 뿐인데. 그게 다만 아날로그적인 나와는 조금 다를 뿐.

분명히 불편했다. 앞에 있는 작품을 볼 수도 없을 만큼 작품에 딱 달라붙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5층에서 4층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계단의 양쪽에 서서 사진을 배경으로 한 명이 서 있고 두 명이 끝에서 셔터를 눌러대니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들이 전시회를 와서 어떻게 즐기고 어떤 기록을 남기는가는 자유지만, 적어도 전시회를 즐기겠다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삶을 즐기는 방식이 변하더라도 아날로그적인, 정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최소한 앞으로 전시회를 갈 사람들은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법도 아니고 규칙도 아니지만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갤러리 4층_아트샵.jpg
 


특이한 점은 아트샵이 전시회의 끝 부분에 있었다. 보통 전시회장과 입구, 아트샵이 명확한 공간으로 구분된다는 점에서 상상마당의 4, 5층은 아트샵마저도 전시회의 일부라는 느낌을 주었다. 전시회의 포인트 색상의 붉은색과 아치형 창문처럼 생긴 모양을 반복 배치해서 통일감을 주었다. 보통은 들여다보지 않을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괜히 들여다보게 했다.


Norman Parkinson 3.jpg



사진, 가장 인위적인 예술 행위

노만 파킨슨의 <스타일은 영원하다.> 전시회였지만 나는 어쩐지 그의 사진보다는 다른 것에 더욱 마음을 빼앗겼다. 전시회의 본질이라든지, 평범함의 특별함이라든지, 전시 공간의 부적절성이라든지. 그런 점에서 노만 파킨슨의 작품을 순수하게 관람하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쉽긴 하다.

불편한 전시였고, 아마 다시는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 핫플레이스 전시회를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불편함 속에서 일상적인 것과 특별한 것을 찾았다.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아도 저마다 다른 것을 느끼며, 다른 행동을 하곤 한다. 전시회를 보고 나서도 다른 행동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살 것이다. 전시회는 그렇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묶어준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공간에 모아두면 당연히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게 정말 당연한 걸까, 하는 많은 고민이 든다. 나는 그때 불편하다고 소리를 쳐야 했었나. 하지만 그랬다면 나는 적어도 5번은 소리를 쳐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웃고 있는 그들의 사진은 아마 노만 파킨슨의 사진 속에서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사진이란, 보여주는 것이란 얼마나 믿을 수 없는가. 사진처럼 현실적인 예술은 없겠지만 그만큼 비현실적인 예술 작품도 또 없을 것이다.

내가 평범하다고 했던 그 흑백 사진도 어쩌면 노만 파킨슨이 구조를 짜내고 억지로 웃는 아이들을 만든 그런 가상의 평범함일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스트리트 포토를 추구하며, 모델들을 거리로 끌어냈지만, 그 과정은 역시 자연스러움과는 또 거리가 멀다. 그는 인공적인 자연스러움을 담았다. 어쩜녀 그것은 실내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보다도 더욱더 인위적이며 작위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인위성에 틀을 깼다며 박수를 친다. 사진이라는 기술 속에 자연스러운 인간미를 담았다고 칭송을 한다. 모든 전봇대가, 모든 풍경이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는 감상을 내어놓는다. 그것은 당연한 말이었다. 그가 그 장소를 선택해서 사진에 담기로 한 것이므로.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예술 작품이자, 가장 사실적인 작품 속에 작가의 생각만을 담는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현실 그대로를 어떻게 하면 가장 인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를 알게 된 전시회였다. '사진'이라는 장르에 대한 내 생각을 깬 가장 파격적인 사진작가로 기억에 남을 노만 파킨슨의 전시회. <스타일은 영원하다.>였다.
 

*


스타일은 영원하다
- Timeless Style -


일자 : 2018.09.22(토) ~ 2019.01.31(목)

시간
일~목 11:00~19:00 (18:00 입장마감)
금~토 11:00~20:00 (19:00 입장마감)

장소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4F, 5F

티켓가격
성인: 8,000원
초중고 학생/경로우대(65세이상): 3,000원
미취학 아동: 2,000원
패션 전공 대학생·대학원생/단체: 4,000원
유아(36개월미만)/장애인: 무료

주최/주관
KT&G 상상마당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웹전단.jpg
 

실무진 이름표.jpg
 

[박지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