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제발전과 '노동'에 대하여 - 『위로 공단』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노동자'의 눈으로 경제발전의 역사를 재조명해보자.
글 입력 2018.12.01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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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각자가 살아있음으로 역사의 증명임을 피력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오로지 노동자의 시선으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여정을 떠난다. 다큐멘터리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흔한 영상들과 마찬가지로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특별한 점은 그 과정을 각 시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노동 분야 사건들을 소개하면서 전개해나간다는 것에 있다.


다큐멘터리는 산업화 초기부터 시작한다. 그 시절의 노동자 인권 침해 수준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심각했다. 노동자를 거의 동물 취급하는 수준이었다. 인간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노동자를 다루었다. 산업화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인권 침해는 다행히 그 정도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약화되어갔다. 시대가 변할수록 직접적인 폭력이 줄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이것이 노동자를 위해서 처우가 개선된 것이라 설명하지 않는다. 절대로 이 문제는 극복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권 침해의 양상은 꾸준하고 더욱 치밀하게 발전해왔다.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무섭게도 정신을 조종하려 든다. 노동자들에게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가져라”라고 되뇌면서, 일터에서의 고통을 고통이 아니라고 세뇌하는 것이다. 문제 제기할 생각조차 막으려 하는 의도이기 때문에 노동자 인권 침해는 더욱 위험하고 악의적이게 변모해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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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는 우리나라에서의 비극적 사건들을 한창 보여주다가, 갑자기 외국의 개발도상국 노동 현장을 보여준다. 과거의 대한민국 노동 현장과 똑같이 생긴 그곳을 비추는 화면은 놀랍게도 예전 영상이 아닌, 얼마 전 촬영한 영상이었다. 과거 대한민국의 경제적 상황과 비슷한 여건을 가진 개발도상국의 현재였던 것이다. 게다가 몇 십 년 전에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겪었던 비인간적 처우는 개발도상국에서 정말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심지어 사례로 보여준 캄보디아의 유혈사태는 과거 국내에서 비인간적 처우를 자행했던 그 한국 기업이 개발도상국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공장을 차리고 적은 임금으로 고용을 하면서 발생한 비극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도 괜찮은 걸까? 그저 믿기지 않았다.

아니. 사실 믿어졌다. 나는 이전의 인권 없던 시대를 살아보진 않았지만, 이 고통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우리의 엄마, 할머니가 겪었고, 현재를 사는 나는 여전히 자본주의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있음을 느낀다. 고통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이것은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끊이지 않는 연결고리 같다. 머릿속에 많은 질문들이 떠오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은 대접받을 수 없는가? 고통을 멈출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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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장면 하나하나가 아주 충격적이고 가슴 깊이 비참했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인터뷰가 하나 있었다. 삼성 반도체 공장 여직공들의 인터뷰였다. 여직공들은 젊은 시절 그곳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을 얻었고, 유산했고,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다. 머리카락이 빠진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직공은 여성으로서의 그 참담함을 몇 년이 흐른 지금에야 다시 이야기하는데, 아직도 그리 가슴 깊이 아파했다. 그때의 비참하고 참담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게의 씁쓸한 태도로 가발을 착용했던 경험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다큐멘터리는 곧바로 가발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영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참 충격적이며 의도적인 연출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나왔던 먼지와 실밥에 파묻혀 미싱을 돌리던 수많은 시다들처럼, 가발공장에서 기계처럼 머리카락을 빨고 빗고 자르고 하는 여성들. 그녀들이 생계를 위해 필사적인 노동으로 만들어낸 가발은? 백혈병, 유산, 기형아 출산을 겪는 반도체 공장의 여성 직공들이 그녀들의 숭한 머리를 덮기 위해 쓰인다.


이 무슨 끔찍한 쳇바퀴인가? 그녀들은 이 지옥 같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정말이지 세상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다큐멘터리다. 말도 안 되는 뻔뻔한 부조리의 역사를 보면서 절망과 슬픔과 미안함을 느꼈다. 미안함을 느낀 이유는 우리 세대가 이미 자본주의에 푹 절어버려서, 한 쪽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는 생산직 노동자들과, 우리나라의 과거를 되풀이하는 가난한 나라의 외침을 의도적으로 듣기 거부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보기 좋은 겉면만을 본다. 눈부신 '경제 성장'만으로 역사를 볼 줄 알지, 소수자의 고통에 주목하지 않는다. 사회 교과서나 기사, 외교에서 쓰이는 우리나라의 '발전'은, 절대로 노동자의 역사를 고려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그 눈부신 '경제 성장'이 무엇인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수혜국 대한민국이, 원조국으로 바뀌었다는 '한강의 기적' 프라이드다.  이 자부심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제 삶 하나 바쳐 일한 노동자가 아닌, ‘구로공단’에서 ‘구로디지털단지’로 이름을 바꿀 때 동상을 세우고 손뼉을 치던 기업주들이 가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갈 뿐이다.

그 수많은 상처들을 밟고 올라선듯한 “발전”이란, 도저히 옳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럴 뿐 아니라 그 과정이 매우 비윤리적이었고 현재까지도 인권 침해가 이어진다면, 이것이 정말 그 어감 좋은 “발전”이라는 단어처럼 세상이 살기 좋아지고 있는 것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이전 시대의 노동자의 삶처럼 노골적으로 가혹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 시대가 '나아졌다'라고 말하는 것만은 하고 싶지 않다. 현시대에도 여전히 부당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부조리에 끝까지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생각한다면 현실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먼저 우리 주위의 고통부터 찾아서 공감해주자. 그들은 목소리를 부여받지 못한 존재다. 함께 귀 기울여주면, 그들에겐 전에 없던 삶의 희망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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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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