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점 아니면 5점, 인형의 집 호불호 원인은 [공연예술]

연극 인형의 집 호불호 원인 분석
글 입력 2018.12.01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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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극의 일인자라 불리는 헨릭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이 얼마 전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내렸다. ‘인형의 집’은 주인공 노라의 변화를 통해 사회 속에 편견처럼 박힌 여성의 역할에 반론을 제기하며 전 세계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던 작품이다. 1879년 초연 이후 여성 해방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까지도 고정된 여성의 역할을 벗어던지고 인형의 집을 떠나는 노라의 모습은 여성 해방의 대표적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얼마 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인형의 집’은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아 러시아의 대표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 황금 마스크상 수상에 빛나는 무대 디자이너 알렉산드르 쉬시킨, 국내 최정상 연기파 배우 진과 함께했다. 하지만, ‘30주년 기념 공연’, ‘헨릭 입센의 대표작’, ‘천재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 ‘연기파 배우들로만 구성한 황금 라인업’과 같이 번지르르한 소개와는 다르게 관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몇몇 언론 매체와 관객들이 ‘인형의 집’의 훌륭한 재해석과 천재적인 연출에 최고의 찬사를 쏟아내고 있는 반면, 인터파크 티켓의 평균 평점은 6.9점을 겨우 웃돌고 있으며 최하점을 준 관객들의 후기는 처참한 수준이다. 창작 초연도 아닌, 이미 작품성이 검증된 고전 연극에 이 정도의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전의 파격적인 재해석”




난해하다. 그런데 공감이 간다. 연출가들은 말한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그저 관객의 주관적인 감상만이 존재할 뿐.” 그래서 나는 내 주관적인 감상으로 과감히 말할 수 있다. 대중성이라곤 1도 없다. 몰입하는 순간 빠르게 관객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갑자기 현대무용을 하고, 갑자기 대본을 읊더니, 갑자기 이유모를 오브제들이 등장한다. 필연적이지 않은 많은 것들의 개입으로 모든 상황이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 아트인사이트, ‘[Opinion] 인형의 집’ 中 발췌



사전 정보 없이 관람했던 연극 ‘인형의 집’은 상당히 난해한 극이었다. 노라의 독백으로 평범하게 시작되는 듯했던 이 극은 독백이 끝나자마자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기괴하고 격렬한 춤을 추고, 등장인물끼리 대사를 바꿔 읽기도 하며, 양철통이나 빨간 공과 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품을 사용하며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 점은 많은 사람들의 불호 요인이기도 하지만, 고전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파격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주된 선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이 극에서 현대 무용과 오브제를 활용한 방식은 놀랍도록 새롭다. 기괴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동작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오브제의 등장은 관객들이 편하게 극을 관람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직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오브제와 동작들을 등장인물들의 감정, 극의 서사, 대사의 의미, 사회적 메시지와 같은 요소들과 끊임없이 연결 지어야 한다. 친절하고 뻔한 고전이 아닌,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인형의 집을 하나하나 발견해가는 과정은 분명 매력적이다.


이미 익숙한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을 해체하고 새로운 의미의 연결성을 찾아 헤매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고전을 바라보는 독특하고 새로운 관점을 열어 주었다는 점은 많은 관객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는 지점이다.




“불친절해도 너무 불친절하다”



이 작품의 난해함이 작품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난해한 정도가 과도하여 작품의 감상을 방해한다는 입장도 있다. 현대무용과 오브제의 사용 자체는 참신하지만, 의미를 조립하며 작품의 서사를 따라가기에는 사용 빈도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이 작품은 극의 새로운 의미와 해석에 너무 큰 비중을 둔 나머지, 관객에게 극의 감정과 서사를 전달하는 소통에 소홀하다. 번역체가 남아 있는 대사와 불친절한 스토리텔링 방식은 극을 보고 나름의 의미를 정립해야 하는 관객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지들을 제공한다. 이는 좋게 보면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둔 것이지만, 나쁘게 보면 그래서 연출가의 의도는 대체 무엇이었는지 의중을 파악할 수 없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작품의 서사와 그 속에 숨겨진 연출의 의도에 대한 소통이 작품에서 조금만 더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이 작품의 불호 요인은 비단 극 자체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유난히 중도 퇴장 관객이 많은 이유는, 사전에 극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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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티켓 예매 페이지에 공연 소개 글이다. 연출에 대한 소개가 있긴 하지만, 헨릭 입센의 명성과 고전의 텍스트 소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보인다. 포털 기사도 마찬가지이다. ‘헨릭 입센의 명성’, ‘고전 명작 인형의 집’이라는 키워드가 이 극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사전 정보이다. 하지만 실제 극은 헨릭 입센이나 고전의 텍스트와는 거리가 있다.


극 마케팅 과정에서 제공한 사전 정보를 접하고 고전의 재현을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고전을 해체하고 재조립한 이 작품이 당황스러웠을 수밖에 없다. 헨릭 입센보다는 유리 부투소프만의 새로운 연출 방식과 퍼포먼스에 대한 묘사를 늘려 관객들에게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으면 조금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극 ‘인형의 집’은 입센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훌륭하게 재탄생시켰던 작품이지만, 관객과의 소통에 소홀했던 탓에 아쉬운 결과를 남기고 막을 내렸다. 양극의 입장이 모두 유의미한 원인과 결과를 내포하고 있었던 만큼, 두 입장이 그저 흥행 실패 또는 성공의 요인으로만 치부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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