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독서는 '착한 일'이 아니다

올바른 독서 문화 형성을 위하여 : 독자가 바라는 독서 생태계
글 입력 2018.11.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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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두가 인정하는 책벌레였다. 어렸을 때는 새벽 세 시까지 어머니께 책을 읽어달라 졸랐었고 학교에 다닐 때는 다들 문제집을 풀던 아침 자습 때에 나 혼자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그렇게 읽다 보니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주로 소설과 시였다. 나의 내밀한 감정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게 조금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겐 숨겼지만, 꽤 오랜 기간 창작을 해 왔다.


그런데 이런 나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책 읽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내게 책은 일상적인 존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는 게 휴식이 아닌 의무로 여겨졌다. 다들 그렇듯이 내 전공 과목을 보충하기 위해 전문 서적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았고 소설과 시를 읽는 건 쓸데없는 일만 같았다. 더군다나 내가 입시를 치룰 때 소설과 시를 읽었다는 사실을 서류에 적기 위해 예전과 달리 그 책들을 읽기 싫을 때도 읽어야만 했었는데, 그 기억이 남아서 인지 그조차 읽기가 꺼려졌다. 대학에 가면 전보다 시간이 많아지고 자유로워지니까 읽으려고 책을 많이 사 뒀는데, 오히려 전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웃기게도 나는 이러한 내 변화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과연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나는 지금껏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칭찬하셨고 나 자신도 남들이 싫어하는 독서를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던 것 같다. 죄책감에 나는 다시 전처럼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생겼고, 그것은 내가 책에게 전과 같은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완전히 나와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사람들은 성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 오면서 독서를 ‘착한 일’ 내지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 정도로 여기게 된다. 독서를 장려하고 독서하지 않으면 혼나는 학교에서 사람들은 읽기 싫어도 책을 읽어야 하는 독서 교육을 받아 왔고 중, 고등학교에 올라서면서는 그 내용을 분석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독서가 그렇게 느껴지면 안 된다. 지금까지의 독서 교육은 잘못되어 왔다.


누구나 책을 접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가 자연스럽게 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책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당장 내일만 해도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소식들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고 SNS를 통해 급하게 확인만 하기에도 그 변화를 따라가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활자를 읽고 곱씹기는커녕 밥알을 씹기에도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에 일상적인 죄책감을 느낀다. 지금까지 그렇게 교육을 받아 왔기에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다. 단편 독서 모임이 인기가 많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짧게라도 책을 읽음으로서 성취감을 얻고, 죄책감을 더는 현대인들에게 단편독서모임은 일종의 면죄부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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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판저널의 좌담회 기록을 보면서 나는 내 죄책감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독서는 개인의 역량을 강화시키고 시선을 확장시킴으로써 세계를 더 잘 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우선적으로 휴식의 수단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독서 정책은 모두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책에서 흥미를 찾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강제로라도 책을 읽게 만드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독서가 ‘착한 일’이라며 독서에서 흥미를 갖지 못하는 이들, 혹은 독서보다 다른 일들을 더 우선시하는 이들에게 억지로 책을 권하는 것은 마치 종교인들이 이 좋은 걸 나만 알 수 없다며 비종교인들에게 자신의 교리를 들이 미는 것과 다름없다. 바람직한 독서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책에 관심이 있지만 여유가 없는 사람, 혹은 책과 소통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언제라도 독서를 즐기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독서는 단순히 착한 일이 되어선 안 된다.


진정으로 책을 읽고 싶어서 시간을 빼서 읽고, 그를 통해 마음의 휴식을 얻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안식처로서 기능해야, 우리 사회에서 원하는 ‘모범적인 독서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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