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돈키호테>, 난생 처음 본 발레

지난 주말, 난생 처음 발레라는 것을 보았다.
글 입력 2018.11.2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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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ktoria Tereshkina in Don Quixote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4).JPG

 


<돈키호테>, 난생 처음 본 발레



지난 주말, 난생 처음 발레라는 것을 보았다.


보게 된 계기는 대단하지 않았다. 그 날의 운세가 날 건드린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새로운 만남이 주어지는 예감이랍니다!’ 그 날의 운세는 닫혀있던 감각을 열 수 있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고, ‘돈키호테’의 기회는 그렇게 찾아왔다. 클래식 발레, 마린스키 발레단, 오케스트라, 사실 그 이름들은 스위치가 되지 못했다. (결과와 달리.) 시작이 대단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당일 공연 관람에 대한 부담감은 컸다. 발레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접한다는 것은 설렘을 주지만 동시에 알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 발레 공연이 그러했다. 클래식도 모르는데 클래식 발레라니. 긴 러닝타임에, 가서 졸다가 민폐를 끼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괜한 걱정’이란 말이 있다. 공연이 딱 그랬다. 모든 걸 이해하거나, 어려운 동작에 감탄하며 브라보를 외치거나 하진 못했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발레는, 평소 내가 자주 보러다니는 공연들(뮤지컬, 연극)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대에서의, 객석에서의 룰도 달랐고 그 다름이 나쁘지 않았다. 아, 이렇구나- 깨닫는 재미도 있었다. 극장이라는 현장에서 익힐 수 있는 재미였다.



Don Quixote by Natasha Razina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6).JPG
 


발레를 만난 것 자체도 훌륭한 경험이었다. 다른 장르의 춤과는 차별화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커다랗지만 정교한 동작들이 모여 만든 군무들, 곱고 가는 손길 발길로 땋아낸, 그야말로 ‘기술’이라고 부를만한 몸짓들. 어려운 동작이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아’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경이롭다’는 말을 입 안에 꾹 담고 있을 때면, 내 대신 이 곳 저 곳에서 ‘브라보!’라는 감탄사를 무대를 향해 날렸다.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큰 규모의 무대에서, 돋보이는 디테일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저 두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발뒤꿈치를 붙이고 있는 무용수들이 그러했다. 사소한 장면, 작은 순간에서 그들이 긴장을 놓지 않고 연기하고 있음을, 춤추고 있음을 느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위에, 그들은 발레로만 모든 것을 전달해내야 했다. 그러한 사정까지 알리듯, 무대 위 모든 것은 섬세했다. 미미한 눈길, 소소한 표정까지. 무용수들은 이만큼의 공연을 위해, 이만큼의 실력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둥근 발레화 속 그들의 발이 궁금해졌다. 무대 위에서 걷는 것조차 편하지 못할 그들의 노력이 나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과장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보이기 위해, 함께 보러간 S가 남긴 리뷰를 일부 덧붙여본다. 함께 문화를 향유하고 기꺼이 감상을 나눠준 S에게 감사하다.)



뮤지컬을 볼 때에 비해 객석의 규모와 무대의 규모가 실감되었는데, 거대한 객석 앞에 무대가 놓인 느낌이라 눈앞에 인형놀이를 하는 상자가 하나 놓인 느낌이었다. 뚜껑을 열면 아름답게 세공된 작은 인형들이 나와서 춤추는 보석함을 열어둔 듯했다. 동화책의 한 페이지 위에서 움직이는 작은 설탕 인형들을 보듯 무대 위의 공간은 현실감이 없었다. 무용수들이 도저히 사람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의 몸짓의 결이 달랐다.


공연을 보면서 '와'보다는 '헉' 종류의 감탄사를 더 많이 내뱉었던 것 같다. 놀라움에 눈이 절로 커지며 숨을 들이켜게 되는 동작 하나하나를 그들은 사뿐히 해냈다. 도무지 나와 같은 물성을 지닌 사람같지 않았다. 저들이 살랑이는 깃털이라면 나는 나무토막이었다. 그러니까 저들에 비하면 나는 한없이 고체에 가까웠다. 무용수들은 마디와 관절이 없는 사람처럼 쭉 펴지거나 완전히 휘어지는 동작들을 공연 내내 해냈다. 자연스러운 사람의 신체가 아닌 만들어진 신체의 동작들이 비현실로 나를 끌고 갔다.



Elena Yevseyeva in Don Qixote_by Natasha Razina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jpg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러시아 발레’에 대해 찾아보았다. 러시아에서는 이러한 발레 공연이 매우 자주 이루어지고, 심지어 발레 공연장도 매우 많다고 한다. 장벽이 높은 우리나라와 달리 러시아는 발레가 ‘친숙’해보였다. 러시아의 유럽화를 위해 황실에서 적극 장려하다보니 유명해졌다고 한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이러한 러시아 발레의 역사 속에서 무려 235년의 전통을 가진 곳이었다. 그런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을, 마찬가지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에서 만나다니. 돈키호테의 스토리에 더 큰 기대를 품고 있던, 그저 새로운 장르를 알아보고 싶다던 무모한 도전은 엄청난 행운에 대한 감사함으로 돌아왔다.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선율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내 귀를 간질였다. 대담하고도 부드럽던 그 음악들. 스페인 특유의 정열적인 춤 위에 웅장한 하모니가 얹어질 때의 화려함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오랜만에 공연을 보다 소름이 돋았다. 그 선율에 얹어지는 무용수들의 박수소리, 부채 부딪히는 소리, 탬버린까지도 기분 좋았다. 난생 처음 만난 발레는, 조금 과한 표현으로 ‘황홀했다’. 말 그대로 발레에 대한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여길 정도였다. 새로운 도전은 두려움을 줬지만 설레는 경험을 남겼다.



Philipp Stepin & Elena Yevseyeva in Don Quixote by Valentin Baranovsky ⓒ State Academic Mariinsky Theatre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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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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